유대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하심: 오병이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성육신(Incarnation) 하셔서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영적 양식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육체적인 양식까지 제공해 주셔서 참된 목자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에서 시작된 오병이어의 기적과 반대로 제자들의 무능력함도 동시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의 어부’(막 1:17)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하여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과(막 3:15; 6:7), 병자들을 고치는 능력을(막 6:13)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연과 귀신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 모인 무리들의 식사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막 6: 35) 그리고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그(예수)의 제자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 장소는 외딴 곳이고,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36) 그들을 보내시어, 주변의 시장이나 마을에 가서 그들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구입해서 먹게 하십시오.” (37) 그러자 그(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하여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자 그들이 그(예수)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치의 빵을 구입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란 [말씀입니까]?”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실패한 제자도(failed discipleship)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4:13; 7:18),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의미를 반복적으로 깨닫지 못합니다(4:40–41; 6:37, 52; 8:4, 17–21).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직접 가르쳐 주셨지만(4:11–20; 7:17; 9:28, 33; 10:10), 예수님의 수난 예고 이후에도 제자들은 그 의미를 오해하였고(8:32; 9:5–6; 9:32; 10:35–38),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 제자 베드로를 사탄(Satan)으로까지 지칭하십니다(8:33).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한 명인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였고(14:10–11; 44–45),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온 군사들 앞에서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며(14:50),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당하였을 때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14:66–72).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앞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주권(Lordship)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있는 무리들의 식사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열 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주변의 시장이나 마을에 가서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지만(막 6:3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막 6:37b)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깨닫고 믿음으로 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답변을 세속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서 자신들과 함께 있는 큰 무리들을 먹이기 위해서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들어간다고 예수님께 대답합니다(막 6:37d). 예수님 당시의 유대 공동체 안에서 한 데나리온의 값어치가 노동자 하루의 품삯(마 20:2, 13)인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이 모두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한 사람이 이 백일 동안 일한 값어치의 빵을 구입해야 합니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만나에 대해 불평하고, 고기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고(민 11:18-20), 모세는 현실적으로 육십 만의 보행자들에게 어떻게 한 달 동안 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의심하는 반응과 유사합니다(민 11:22-23).
목자 없는 양들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하심이 제자들의 불신 가운데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조력자로 삼는 질문을 통하여 기적을 베푸십니다.
(막 6:38)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얼마의 빵을 가지고 있느냐? 가서 확인해 보아라.” 그들이 확인한 후에 말하였습니다.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39)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푸른 풀밭 위에 무리별로 기대어 있게 하라” (40) 그리고 사람들은 무리 지어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기대어 앉았습니다. (41) 그리고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하늘을 올려 보시면서 찬양하셨습니다. 그리고 빵을 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이 그들(무리) 앞에 갖다 놓도록 주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를 모두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태와 누가 그리고 요한과 달리 마가는 6:38절에서 “너희들이 얼마의 빵을 가지고 있느냐? 가서 확인해 보아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고, 제자들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6:38c).
마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가운데에서 숫자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숫자 ‘다섯’을 통하여 ‘모세 오경’(Pentateuch)이나 시편의 ‘오권’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와, 큰 무리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이 열 두 광주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열 두 지파’와 같은 상징적인 의미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들만 오천 명이 먹었던 사건이 유대인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미 마가는 자신들의 공동체에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서 등장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해서 선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푸른 풀밭 위에 백 명씩 오십 명씩 무리별로 나누어 앉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고 의심과 걱정 가운데에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을 위해서 다윗을 목자로 세우셔서 큰 무리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자들과 유대인 무리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겔 34:13) … 이스라엘 산들과 골짜기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일 것이다. (14) 내가 좋은 꼴로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초장을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둘 것이다. 그들이 거기 좋은 초장에 누우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을 것이다. (바른 성경)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하여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축복(benedication) 하셨습니다(막 6:41a).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복하셨다는 표현을 마태 마가 누가는 유로게오(eulogeo: to praise)로 표현하고 있고, 요한은 유카리스테오 (eucharisteo: to be thankful)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의 의미가 미묘하게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마태 마가 누가는 찬양의 의미에 집중해서 표현하고 있고, 요한은 은혜에 집중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표현에서 예수님께서 축복을 하셨다는 대상은 분명하지 않지만 헬라어 동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함축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시작되어진 기적은 빵을 쪼개어 지속적으로 나누어 주는 행동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조금 어려운 헬라어 문법적인 이야기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는 장면에서 사용된 동사 ‘디도미’(didomi: to give)는 ‘미완료 과거’(imperfect) 시제로 사용되어서 예수님께서 빵을 떼는 행동이 단번에 끝난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행동(ongoing action)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에 무리가 충분히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적이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이러한 문법적인 특징을 통하여 나타내고 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었고 남은 음식들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참여한 자들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남자들만 오천 명입니다.
(막 6:42)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먹었고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43) 그리고 그들이 빵의 조각들과 물고기들을 거두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채웠습니다.] (44) 그리고 빵을 먹은 사람들이 남자들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마가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들만 숫자를 세었을 때 오천명이 먹은 사건과,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이 먹은 사건(막 8:1-10)을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두 가지 유사한 기적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기록하면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유대인들의 지역에 베풀어진 기적으로 기록하고 있고, 칠병이어의 사건을 이방인들의 지역에서 베풀어진 기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가의 신학적 성향(theological tendency) 가운데에서 마가는 그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난 후에 음식을 담아 놓은 ‘바구니’라는 표현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바구니’라고 번역할 수 있는 ‘코피노스’(kopinos: basket)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칠병이어의 기적에서는 이방인 공동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광주리’라고 번역할 수 있는 ‘스푸리스’(spyris: hamper)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두 단어의 차이점은 ‘코피노스’는 유대인들이 점심과 같은 다양한 음식을 보관하는데 사용하는 단어이고, ‘스푸리스’는 ‘코피노스’보다 훨씬 더 큰 바구니로 보다 더 넓은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도행전 9:23-2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행 9:20) 사울(Saul: 바울의 유대식 이름)을 죽이려고 했을 때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으로 달아 내렸는데, 이 때 사용되는 단어가 ‘스푸리스’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이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베풀어 주신 사건입니다.
<함께 나누기>
- 마가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의 실패한 제자도의 모습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숨김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의 지식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있지는 않습니까? 함께 나누어 보십시오.
-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기록되어 있는 숫자들의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 오병이어의 기적과 에스겔서 34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까?
- 예수님께서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축복 기도를 하셨는데,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유로게오’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유카리스테오’의 의미와 비교해서 설명해 보십시오.
-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는 모습을 헬라어 문법에서 ‘미완료 과거’ 시제로 표현합니다. ‘미완료 과거’ 시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에서 ‘코피노스’와 ‘스푸리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이러한 단어의 차이점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깨닫을 수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