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와 관련된 세 가지 가르침
마가복음 11:12-25절의 샌드위치 구조(A-B- A´) 안에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사건(막 11:12-14)은 ‘모든 민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막 11:17c)이라고 불릴 성전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강도의 소굴’ (막 11:17d)이 되어버린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자적 상징 행위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홀로 들어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이스라엘로 상징되어지는 무화과나무가 저주 받아 말라 죽은 사건과 어떠한 상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마가의 샌드위치 구조 안에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와 성전의 상관 관계 속에서 마가복음 11:20-25절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 베다니 외곽지역에서 밤을 보내고 다시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를 보았을 때 그 무화과나무는 뿌리로부터 말라 죽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무화과나무와 관련해서 믿음과 기도 그리고 용서라는 세 가지 주제로 말씀하십니다.
(막 11:20) 그리고 그들이 이른 아침에 지나가다가 뿌리로부터 말라버린 그 무화과 나무를 보았습니다. (21) 그리고 베드로가 그것(전날 일)이 기억나서 말하였습니다. “랍비여, 보소서! 당신이 저주한 그 무화과나무가 말랐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에게 ‘들려져라 그리고 바다로 던져져라’라고 말하고, 그의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말한 것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것이 [그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24) 이러한 이유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이 기도하며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받았다고 믿으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25) 그리고 너희들이 기도하고자 서 있을 때마다, 누군가에 관하여 어떠한 [원망]을 가지고 있다면 용서하라. 그 결과 하늘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께서도 너희들의 허물들을 용서하실 것이다.” (Translated by YG Kim)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른 아침(proi: in the early morning)에 다시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 예수님께서 전날 저주하신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ek rhizon: from the roots) 말라 죽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잎부터 시들어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뿌리로부터 말라 생명력이 완전히 끊겼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 모습에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막 13:2)라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록 당시 제자들은 무화과나무와 예루살렘 성전의 연관성을 즉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마가는 자신의 독자들이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라 죽은 사건에 담긴 상징적 의미를 깨닫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외적으로는 여전히 화려한 건물들(무화과나무의 잎사귀)이 존재하지만, 영적 생명력의 근원인 뿌리가 이미 죽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열두 명의 제자들 중 베드로가 전날 무화과나무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마가복음에서 이번이 처음인데, 이 기억을 통해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부르고 있는데(막 9:5; 11:21),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막 8:29)라고 고백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호칭한 이유는 단순한 존경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라는 신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라는 호칭 대신 ‘랍비’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놀라움을 표현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과 기도 그리고 용서라는 세 가지 주제로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로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b)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번역된 “에크에테 피스틴 테우”(echete pistin theou)을 직역해 보면,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표현하는 소유격 ‘테우’(theou)가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지는 목적어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법 용어를 ‘목적격 소유격’(Objective Genitive)이라고 부릅니다(Daniel B. Wallace, Greek Grammar Beyond the Basics, Zondervan, 1996, pp. 116-119).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전날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놀라워하는 베드로의 반응에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답변하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기적적인 사건을 교육의 기회로 삼아, 제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할 때 자신과 같은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형식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전 체제의 종말과 새로운 신앙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예루살렘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신앙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두 번째로 자연스럽게 ‘기도’의 주제로 넘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라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는 화법으로 시작하여서 ‘기도’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이 ‘산’(oros: mountain)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로 시작됩니다(막 11:23). 학자들은 “이 산”이 성전 산(Temple mountain)으로 불리는 ‘시온 산’(Mount Zion)이거나 ‘감람 산’(Mount of Olives)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먼저 이 산이 ‘시온 산’으로 해석해 보면, 이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는 것은 부패한 예루살렘 성전 체제의 완전한 파괴와 종식을 의미합니다(Joel Marcus, Mark 8-16, The Anchor Yale Bible 27a, pp. 785-86). 또 다른 해석은 “이 산”이 시온 산이 아니라 ‘감람 산’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예수님께서 현재 계셨던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며, 스가랴 14장 4절에서 종말의 날에 감람산이 갈라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과 연결해서 설명합니다(William L. Lane, The Gospel of Mark, Grand Rapids, 1974, pp. 409-10). 이러한 두 가지 주장 가운데에서 본문의 문맥으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산’은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감람 산’이라기 보다 ‘시온 산’일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또한, 유대 랍비 문학에서 산이 옮겨진다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를 극복하는 것에 관한 관용적 비유(Hyperbole)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핵심은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관한 전적인 신뢰는 산을 옮길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마음이 내부적으로 갈라지는 의심(diakrisis: doubt)하는 행동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진다는 믿음과 신뢰의 표현입니다(막 11:23).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너희들이 기도하며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받았다고 믿으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막 11:24)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기도는 산이 들려 바다에 던져지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도하며 구하는 모든 것”이라는 일반적 상황으로 확장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 가운데에서 깊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받은 것으로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간구하는 기도는 미래에 이루어질 성취가 아니라, 이미 응답된 사실로 간주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기도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강력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관한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드려졌던 물리적 기도 처소가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모습을 책망하시면서, 제자들이 드리는 믿음의 기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임을 강조하십니다. 더 이상 타락한 성전 중심의 제사 제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도의 조건으로서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도자에게 요구하시는 책임은 자신에게 잘못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향한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기도자의 수직적 관계가 기도자와 타인과의 수평적 관계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십니다. 형제에 대한 원망이나 원한을 품은 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는 길을 스스로 막는 장애물(obstacle)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허물(paraptoma: transgression)을 용서 받는 공로적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가 스스로 마땅히 보여주어야 하는 믿음의 행동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로부터 벗어난 죄로서 ‘하마르티아’ (hamartia: sin)를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로서 ‘파라프토마’를 언급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의 가르침은 기도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대적하는 자를 용서하는 모습을 통하여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마가복음 11장 21-25절은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 받은 사건과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이 결합된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뿌리째 마른 무화과나무를 통해 성전 붕괴를 예언적으로 보여주고 계시고, 동시에 이를 통하여 믿음과 기도 그리고 용서라는 주제를 통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함께 나누기>
-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는 잎이 아니라 뿌리로부터 말라 죽었습니다. 그 의미를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해서 설명해 보십시오.
- 베드로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제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산”은 어느 산입니까? ‘시온 산’입니까? ‘감람 산’입니까?
- 예수님 당시에 산이 옮겨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도 가운데 우리는 의심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믿음의 기도는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예수님께서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 기도자에게 요구하시는 행동은 ‘용서’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기도가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우리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상달되는 길을 막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허물을 용서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



![[칼럼:교회를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깨달아라](https://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conversation1006-324x16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