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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목적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목적

포도원 비유(막 12:1-12)를 통해 공개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심각한 모욕을 받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결심(막 3:6)을 더욱 굳건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며 예수님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폭동을 두려워하여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체포할 수 없었습니다(막 12:12).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목적으로 예수님의 말에 트집을 잡기 위해서 고도의 수사학적 훈련을 받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에 몇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고도의 신학 교육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전통’을 복합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헤롯 당원들은 로마의 지원을 받는 헤롯 가문을 지지하는 정치적 엘리트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국제 사회의 통용어로 사용이 되었던 헬라어에 능숙한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수사학(Rhetoric)에 능숙한 교육을 받은 자들로서 정교하게 설계된 수사학적 덫(snarl)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집단은 서로 상반되는 종교적,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로마 정권에 반대하는 반면, 헤롯 당원들은 로마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헤롯 가문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서로의 정체성이 다른 적대적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함께 동맹(alliance)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막 3:6).

(막 12:13) 그리고 그들이 그(예수)의 말을 트집 잡기 위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을 그(예수)에게 보냈습니다. (14) 그리고 그들이 와서 그(예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진실한 분이시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고, 오히려 진리 위에서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칠까요? 바치지 않을까요? (15) 그러나 그(예수)가 그들의 위선을 보시고 난 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나를 시험하느냐? 내가 보도록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라.” (16) 그러자 그들이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에 [새겨져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그(예수)에게 대답했습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들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돌려드리라].” 그러자 그들이 그(예수)에 관하여 크게 놀라고 있었습니다. (Translated by YG Kim)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 의해 보냄을 받은 이유는 예수님의 말(logos: word)을 트집 잡기 위함입니다. 말을 ‘트집 잡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헬라어 동사 ‘아그류오’(agreuo)는 신약 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이 되는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로 본래 사냥이나 어업에서 짐승이나 물고기를 ‘올무’나 ‘그물’로 잡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 동사를 사용해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마치 사냥꾼과 어부들처럼 덫이나 그물을 놓아 예수님을 말의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선생님’(didaskalos: teacher)이라고 부르면서 접근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모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금 논쟁에 앞서 예수님을 부르는 가식적인 호칭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고대 수사학의 방법 가운데에서 ‘인시누아티오’(insinuation: the Subtle Approach)라고 불리는 기법을 사용해서 예수님께 접근합니다. ‘인시누아티오’라는 기법은 고전 수사학에서 상대에게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이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회적 설득 방법입니다(David M. Young & Michael Stricklandd, The Rhetoric of Jesus in the Gospel of Mark, Fortress Press, 2017, p. 83).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특징은 ‘진실한’(alethes: truthful) 분이십니다. 마가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예수님의 참된 신분을 증언하는 역설적 아이러니(paradoxical irony)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두 번째 특징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께서 무책임한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이나 압력 또는 상대방의 사회적 지위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이유를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겉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진리 위에서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시기 때문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사무엘상 16:7절을 간접적으로 인용한 표현으로 예수님은 사람의 겉 모습이나 키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진리 위에서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길”(the way of God)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명하신 순종과 의로운 삶의 길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에서 이 ‘길’은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뛰어 넘어, 예수님께서 몸소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자 제자들이 따라야 할 고난과 섬김의 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수사학적 질문을 통해 예수님의 말에 트집을 잡으려는 주제는 ‘세금’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당시 로마의 속국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로마에 ‘인두세’(poll tax)를 납부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세금이 ‘켄손’(kenson)입니다. 이 세금은 유대인들에게 단순한 세액 부담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거룩한 땅이 로마 황제의 지배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굴욕의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이 세금은 황제를 신격화하는 초상이 새겨진 로마 동전으로만 납부해야 했기에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숭배적 요소가 포함된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막 12:14)라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예수님의 대답에 올무를 설치해서 치명적인 결과를 유도하는 내용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바치라”라고 대답을 하시면,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 고통받으며 메시아의 해방을 갈망하던 유대 민중들로부터 ‘변절자’(apostate)로 낙인 찍혀 그들의 지지를 완전히 잃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바치지 말라”라고 대답을 하시면, 예수님은 로마 당국으로부터 ‘선동가’(instigator) 또는 ‘반역자’(traitor)로 고발당하여 로마법에 의해 처형될 근거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위선’(hypokrisis: hypocrisy)을 보시고 난 후에 “왜 나를 시험하느냐?”라고 반문하시면서 ‘데나리온’(denarius) 하나를 가져와서 자신이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시험하다’(peirazo: to test)라는 동사는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용한 동일한 동사로(막 1:13),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의 적대 행위 배후에 사탄의 영향력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데나리온’은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에 ‘인두세’를 징수할 때 사용한 은화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예수님의 반문에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동전에 새겨진 두 가지 핵심 요소를 언급하시는데 바로 ‘형상’(eikon: portrait)과 ‘글’(epigraphe: inscription)입니다. 예수님 당시 통용되던 ‘데나리온’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AD 14-37년 재위)의 초상과 “TI[BERIVS] CAESAR DIVI AVG[VSTI] F[ILIUS] AVGVSTVS”(티베리우스 가이사,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아우구스투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PONTIF MAXIM”(대제사장)이라는 칭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유대교의 전통에 따르면 형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 숭배에 해당이 되어서(출 20:4) 금지되었고, 황제를 신의 아들이나 대제사장으로 칭송하는 것은 신성모독적(blasphemous)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에게 “이것에 [새겨져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질문하셨고, 그들은 “가이사의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막 12: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들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세금을 바치는(didomi: to pay) 행위에 관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는데, 예수님께서는 부채를 갚는 행위로 ‘되돌려주다’(apodidomi: to give back)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답변을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답변은 로마 화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로마가 제공하는 경제 체제와 혜택을 누리는 이들에게 그에 따른 사회적 의무를 세금으로 이행하는 것이 마땅한 부채 상환임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부채 상환의 개념으로 허용하셨지만, ‘데나리온’의 형상과 글귀에서 주장하는 로마 황제의 신격화와 우상 숭배는 전적으로 배격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라고 답변하십니다. 동전은 가이사의 것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가이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표현입니다.

이 의미를 고신 대학교 석좌 교수로 계신 손봉호 교수님은 2019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에 기고한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형상이 있지만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그러므로 돈은 황제의 것일지 모르지만 황제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온 우주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고, 따라서 데나리온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냐 정치권력이냐의 대비는 없어지고 하나님이 전체요 정치권력은 그 전체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 된다.”(https://cemk.org/14409)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의 말에 트집을 잡기 위해서 ‘인두세’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의 ‘형상과 글귀가 있는 것이 그 소유주에게 속한다’는 대전제 아래에서 데나리온 동전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도의 수사학적 논증을 펼치셨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크게 놀랐는데, 마가는 그들이 놀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놀라움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싸우마조’(thaumazo: to wonder)를 사용하지 않고, ‘에크싸우마조’(ekthaumazo: to be greatly amazed)를 사용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한 놀라움을 크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동사 또한 신약 성경에서 한번 사용이 되는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정치적,·종교적 올무에 빠뜨리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세금 관련 질문에 수사학적 지혜로 답변하시면서, 국가에 대한 상대적인 시민적 의무를 인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절대적 주권을 선포하셨습니다.

<함께 나누기>

  1.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집단입니다. 이들의 종교적, 정치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두 집단이 함께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마가복음 12장 13절에서 사용된 말을 ‘트집 잡다’라는 헬라어 동사 ‘아그류오’의 본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동사가 예수님께 적용되었을 그 의미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1.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사용하는 수사학적인 방법인 ‘인시누아티오’에 관해 설명해 보십시오.
  1.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정의한 예수님의 두 가지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또한 그들이 예수님을 이 두 가지 정체성으로 설명한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 (막 12:14)
  1. 1세기 유대인들이 로마에 납부하고 있었던 세금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이 세금이 유대인들에게 굴욕의 상징이 되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1.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Yes’와 ‘No’로 답변했을 때 예상되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1. 1세기 로마 동전 ‘데나리온’에 관해 설명해 보십시오. 인터넷에서 ‘데나리온’을 검색해서 그 모양을 살펴보면서 설명해 보십시오.
  1.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들은 가이사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라고 말씀하신 내용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라는 의미를 손봉호 교수님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복음에 빚진 자 김윤규 목사 (토론토 쉴만한물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