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밥상이 사라진 빈 집

밥상이 사라진 빈 집

소설가 김주영씨의 <빈집>은 “한 집에 살면서도 아버지 직업이 뭔지, 아들이 밖에서 뭘 하는지 모르는 집”이야기 이다. “가족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서로 괴리돼 있는 집” 그 집이 빈 집이다. 이런 빈 집은 “집은 있지만 사랑이 배제됐고 가족의 응집력이 사라진 곳”이다. 그래서 사람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그곳은 ‘빈 집’과 마찬가지이다. 요즘의 가족은 그저 밥도 따로먹으면서 같은 집에서 잠만 자는 하숙집으로 전락한 가정이 너무 많다.

빈 집, 오늘 우리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가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빈 집을 사람 사는 집, 사람냄새 나는 집, 사랑의 향기가 가득한 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밥상이 있어야 한다. 소설 <빈집>에서도 아버지는 노름꾼으로 가정을 내팽개친 사람으로 나타난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밥상에 없다. 소설가 김정현씨가 쓴 소설 <아버지의 눈물>에서도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에게 소외당하고 있다. 그 가정의 밥상에 아버지가 없다. 이런 소설들은 오늘날 우리나라 가정의 보편적인 모습을 닮고 있다.

잃어버린 밥상 시대

여러분의 가정은 밥상이 사라진 빈 집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권위는 실추되고 가족의 의미마저 희석 되어버렸다. 밥상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자리도 가정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있다.

과거 대가족시대는 모든 가족들이 밥상을 둘러싸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래서 윗어른을 섬길 줄도 알았고 형제자매와의 나눔과 베풂을 알고 또 가족에게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웃까지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가정 안에 ‘핵’이 들어와 핵가족화가 되면서부터 가장 먼저 밥상이 피폭 되었다. 가족들 역시 아빠 따로, 나 따로, 엄마 따로 식의 식사문화가 되다보니 밥상 위 나눔의 즐거움도 모르고 어른도 섬길 줄 모른다. 이 영향으로 사회는 이기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아주 살벌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내게 득이 되지 않으면 부모도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결국은 아름다운 가정 공동체가 모여 아름다운 사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가정의 역할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초 고령화, 초 저출산, 핵 가족 사회로 인해 나의 말을 들어주고 알아줄 밥상을 잃어버렸다.

가정은 부모와 자식이 모여 사는 곳이다

가족은 속상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고, 상대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서로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시편 128:3 ‘네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말씀처럼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이야 말로 행복의 절정이라고 할수있다. 아울러 부부의 사랑은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을 향한 사랑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놀아주고 해야 아이들은 자라서도 부모의 상에 둘러앉게 된다. 부모들이 바쁘다고 놀아주지 못하면 아이들도 장성하여 부모와 함께 밥상에 앉을 일은 없다. 감람나무와 같은 자녀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담소하는 복을 누리기를 축복한다.

복된 자리 밥상

가정은 아버지의 권위에 의해 다스려지는 인간 공동체였다. 그래서 가족의 구심점은 밥상이었다. 밥상은 매일 가족과 잡담을 나누고, 소식을 주고받고,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를 놀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다가 부모의 신앙 가치관이 전수되는 곳이다. 손님들이 환영을

받는 곳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도하는 곳이다. 식사를 하며 화해를 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가족을 통해 듣는 곳이다. 결국 빵 조각을 나누며 서로 축복하니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되었다. 아버지여! 가정의 밥상에서 참 교회의 모습을 보라. 인류 역사를 뒤바꿀 신의 밥상이 되기까지!!

“빈 집은 빈 교회보다 더 위험하다.”

시편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탐스런 포도나무 같고, 네 밥상에 빙 둘러앉은 네 자녀들은 어린 올리브나무 같도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