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김치남 목사의 하나님의 교육명령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며' 바벨론의 강가에서 부르는 이민자의 노래

[칼럼: 하나님의 교육명령]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며’ 바벨론의 강가에서 부르는 이민자의 노래

바벨론의 강가에서 부르는 이민자의 노래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운동이라기보다 잊어버린 것을 다시 기억한 운동이었다. “복음으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은혜로 돌아가자.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자.”  교회가 오랜 세월 동안 덧붙여 온 것들을 걷어 내고(Re-Form), 처음 주어진 복음의 중심을 다시 기억하자는 외침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혁명이기 전에 기억의 회복이었다.

  나는 이 종교개혁의 계절에 이상하게도 루터가 아니라 바벨론 강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전은 무너졌고, 나라는 사라졌고, 그들은 낯선 땅으로 끌려왔다. 

  시편 137편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들은 울었다. 그러나 울음보다 더 중요한 말이 하나 있다. ‘기억했다.’ 그들은 시온을 기억했다. 예루살렘을 기억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했다. 

  바벨론은 그들의 땅을 빼앗을 수 있었다. 성전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왕을 끌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빼앗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기억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모든 신앙 공동체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인지 모른다. 

무엇을 기억하는가

  무엇을 다음 세대에게 기억하게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이민교회는 특별한 자리에 서 있다. 이민자는 두 세계 사이를 산다. 몸은 새로운 나라에서 살지만 기억은 자주 떠나온 땅으로 돌아간다. 부모 세대는 한국말로 기도하고, 자녀 세대는 영어로 꿈꾼다. 부모에게 한국은 기억의 고향이고 캐나다는 삶의 현장이다. 그러나 자녀에게는 캐나다가 삶의 고향이고 한국은 부모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고향이다. 그래서 이민교회에는 언제나 질문이 따라다닌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한국어인가. 문화인가. 음식인가. 예배 형식인가. 전통인가… 그러나 종교개혁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돌려놓는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언어는 바뀔 수 있다. 예배 형식도 바뀔 수 있다. 교회의 문화도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복음은 달라질 수 없다. 말씀은 사라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이라는 고백은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질 수 없다.

  언어와 문화는 믿음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릇이 내용보다 중요해지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한국어를 지키면서 복음을 잃을 수도 있고,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복음을 충실히 전할 수 있다. 반대로 영어를 사용한다고 자동으로 다음 세대가 신앙을 이어받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언어가 아니다. 무엇을 기억하게 하느냐이다.

  종교개혁은 라틴어 안에 갇혀 있던 말씀을 사람들의 언어로 돌려주었다.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듣고, 이해하고, 고백할 수 있게 하려 했다. 이 점에서 종교개혁은 놀랍도록 세대전수의 운동이었다. 복음을 성직자의 언어에 가두지 않고 가정의 언어로 가져오는 일이었다. 성경을 강단 위에만 두지 않고 부모와 자녀의 손에 돌려주는 일이었다. 그래서 종교개혁과 신명기 6장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집으로 가야 한다. 식탁으로 가야 한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상의 네 때를 통과해야 한다. 이민교회의 미래 역시 여기에서 갈릴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500년 전의 행사가 아니다. 오늘 모든 가정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말씀을 다시 펼치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복음을 다시 들려주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교회가 프로그램보다 말씀을 앞세우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가정과 교회가 서로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하여 한 세대의 믿음을 다음 세대로 건네는 것이 종교개혁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이스라엘은 땅을 잃었지만 기억을 잃지 않았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여러 제도와 전통 속에서 다시 복음을 기억하려 했다. 그리고 오늘 이민교회는 두 언어와 두 문화 사이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받고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우리가 다시 들어야 할 말은 어쩌면 이것인지 모른다.

“다시 말씀으로”

그리고 이민교회에는 한 문장을 더 붙여야 한다.

“다시 집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언어가 달라져도, 문화가 달라져도, 세대가 달라져도, 그 이름만은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종교개혁의 정신이며, 이민교회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야 할 가장 오래된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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