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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성령 (6) 순전한 미덕 (Mere Virtue)의 공급자

성령 (6) 순전한 미덕 (Mere Virtue)의 공급자

공정하고 예의 바르며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미덕의 마음과 태도는 일찍부터 인류가 추구하는 인간 성품의 가치였습니다. 서방 사회는 예로부터 이 소중한 가치의 목록을 규정하여 학교 교육으로 시행했습니다. 주전 2세기 그리스 사람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와 사회를 건립하기 위해 지도자는 네 가지 형태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만약 우리 국가가 바른 기초 위에 세워진다면, 말 그대로 훌륭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하게 지혜롭고, 용감하며, 절제력 있고, 또한 정의로운 사람이 요청됩니다.” 그는 이상적인 시민의 특징에 관해 “절제, 용기, 영혼의 고상함”을 나열한 후에, “미덕의 모든 부분과 관련하여 우리는 천박한 사람과 참된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삶을 헌신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에 기반을 둔 정치와 대중 연설 그리고 법정의 미덕을 부덕과 비교하여 제시했습니다. “미덕의 구성 요소는 정의, 용기, 절제, 장엄함, 아량, 관대함, 온화함, 실용적이고 사색적인 지혜입니다. 정의는 법에 따라 각 사람에게 자신의 의무를 부여하는 미덕이며, 불의는 정의에 반대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요구합니다. 용기는 사람들이 위험 속에서 법의 지시에 따라 복종하여 행하는 고귀한 미덕이지만, 그 반대는 겁쟁이입니다. 절제는 미덕이고, 그 반대는 방종입니다. 관대함은 미덕이고, 그 반대는 탐욕입니다. 아량은 미덕고, 그 반대는 소심함입니다. 숭고함은 미덕이고, 그 반대는 옹졸함과 비열입니다. 실천적 지혜는 이성의 미덕입니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미덕에 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미덕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애매하며, 미덕의 규정을 단지 성품 그 자체로 이해하면 실제 나타난 악도 미덕으로 수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용기 자체가 미덕이라면 여인을 겁탈하는 용기도 미덕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량을 베풀었는데, 상대가 그 아량을이용해서 살인을 범하게 되면 이 아량은 미덕의 반대입니다. 비록 그가  미덕의 종류를 “용기, 절제, 관대함, 숭고함, 영혼의 고결함, 친절”로 제한 했지만, 행위가 발생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는 우리는 항상 틀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미덕과 악덕(virtue and vice)의 목록은 헬라 사회 전반에 여러 의도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기독교인의 구별된 미덕과 악덕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신앙인의 미덕이 일반사람들과 차별화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욕망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에 방종한 스타일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신자들의 삶에 함께 하셔서 그들의 일상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은 새로운 미덕을 형성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이루시는 미덕을 “성령의 열매”로 표현했습니다. 새로운 미덕을 열매로 표현한 이유는 이 요소들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성령의 공급으로 나타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사람 에게 내어주심으로 나타난 미덕은 인간의 감정과 행위의 범주를 뛰어 넘는 신성한 특징이 있습니다. 열매로 비유된 이 미덕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 미덕은 성령이 공급하는 것으로 인간의 그 무엇도 섞이지 않은 순전한 미덕 (Mere Virtue)입니다. 바울은 성령이 공급하는 아홉 가지 미덕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사랑입니다. 희랍어로 “아가페”인 이 사랑은 죄인들을 위해 자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상대방을 살리기 위한 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불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과 유사성이 전혀 없습니다. 

   두번째는 기쁨입니다. 기쁨을 뜻하는 희랍어 “카라”는 환경이 좋아서가 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적일 때 기뻐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바울은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라고  썼습니다.

   세번째는 화평입니다. 희랍어 “에이레네”는 외부의 성취를 통해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평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평화는 “야훼의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긴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네번째는 오래참음입니다. 인내는 진노할 인간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고 오히려 관용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 미덕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며 용납하게 합니다.

   다섯째는 자비입니다. 죄인들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태도와 행위가 자비입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내려오던 가산을 탕진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을 환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여섯째는 양선입니다. 한국말로 “친절,” “선행,” 혹은 “양선”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아가도스”는 존재하는 선 (善 good)의 최상위의 단계이며 모든 선한 것들의 원천입니다. 악한자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선하게 대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아가도스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일곱째는 충성입니다. “성실” 혹은 “충성”으로 번역되는 희랍어 “피스티스”는 역사를 통해 보여 주셨던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충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여 쓰실 때  기준이 되는 성품입니다.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덟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로 번역되는 희랍어 “프라우스”는 “힘” 혹은 “능력”의 뜻이 있지만, “통제된 힘” 혹은 “절제된 능력”을 뜻합니다. 주인의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길들여진 야생 말도 “프라우스”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아홉째는 절제입니다.  “절제”로 번역되는 희랍어 “인크라테이아”는 엄하게 훈련 받아 나타나는 자아지배력을 의미합니다. 운동선수가 메달을 따기 위해 규율에 맞게 훈련하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고대 헬라 사회에서 절제는 미덕을 이루는 근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이 공급하는 자양분으로 순전한 미덕인 열매를 맺습니다. 이 열매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적인 성령의 후원으로 가능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맞추기만 하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과일을 뜻하는 라틴어 “푸루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혹은 “기쁨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성령의 목적은 이웃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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