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경건 (1) "인간의 도리 (道理)”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경건 (1) “인간의 도리 (道理)” 

경건 (1) “인간의 도리 (道理)” 

인간 관계에서 경험되는 미덕에 관한 최상의 표현은 그리스 고전 『 Memorabilia 소크라테스 회상』에 타나납니다. 이 작품의 저자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스승에게 바치는 마지막 찬사를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미덕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미덕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최상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분이다. 너무 신앙적이어서 그는 신들로부터 조언을 듣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공정해서 그는 어떤 사람에게라도 매우 작은 해도 입히지 않았고,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유익을 주었다. 너무 자제력이 강해서 그는 더 나은 삶의 과정을 선택하기 위해 쾌락을 주는 인생길은 선택하지 않았다. 너무 현명해서 그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판단에 오류가 없어 다른 사람의 조언이 필요 없었고 단지 자신의 지식만을 의존했다. 더 좋은 것과 그릇된 것을 정의하고 설명하데 능숙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오류를 깨달아 미덕과 관대함을 따르도록 권고하는 것에도 능숙했다. 그때 그는 나에게 진정으로 선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모든 것처럼 보였다.” 

   신들의 조언을 자기 삶의 지침으로 삼아 선을 추구하고 모든 사람들을 관대히 대하는 소크라테스의 성품과 삶은 고대 희랍인들의 사상 속에 최상의 미덕이었습니다. 이런 미덕의 정신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경건”으로 번역되는 “유세베이아”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경건,” “신앙,” 그리고 “예배 행위”로 번역되는 이 낱말의 형용사 형태는 “유세베스” 인데 “독실한,” “신앙적인,” 그리고 “신앙심이 두터운”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들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희랍어는 “떼오세베이아”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이 낱말의 형용사 형태인 “떼오세베스”는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단어들은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것들로 인간을 초월한 상황이나 장엄하고 신성한 대상 앞에서 사람의 영혼에 경험되는 경외심입니다. 이 경외심은 그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합당한 숭배 형태와 능동적인 순종의 삶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으로 번역되는 유세베이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한 것들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엇하나 제거하지 않는 자세, 헛된 것에 타락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삶 속에 하나님께서 차지해야 할 자리를 제공하는 인간의 자세입니다. 

   유세베이아의 정신이 널리 퍼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이제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자세로 발전됩니다. 로마 사회에서 유세베이아는 대부분 신들을 숭배하는 표준으로 사용되었지만, 사회 질서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세베이아는 상대방을 위한 자세, 즉 남편을 위한 아내의 자세, 주인을 위한 종의 자세, 황제에 대한 군단의 자세, 그리고 국가 실무를 위한 황제 자신의 자세를 표현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유세베이아를 자신들의 말인 “피에타스”로 번역하여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피에타스는 선함, 명예, 정직, 의무에 대한 헌신의 정신이었습니다. 역사가였던 윌리엄 워드 파울러는 피에타스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피에타스로 알려진 사람의 자질은 시련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욕망과 이기적인 안일함의 유혹을 능가하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던 아이네이아스의 피에타스는 신에게 뜻 뿐만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들, 그리고 그의 백성에 대한 본능적인 의무감이었다. 그리고 이 의무는 죽음 앞에서도 결코 그를 떠나지 않았다.” 피에타스로 사용된 유세베이아는 로마 사회에서 가장 높고 숭고한 삶의 자세로 여겨졌습니다. 유세베이아는 본질적으로 신앙이었으며, 신들을 숭배할 때 보여지는 경외감과 관련되었으며, 또한 신들이 설립하고 다스리는 인간 질서에 대한 개개인의 자세였습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세베이아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 경외심, 숭배심, 예배 및 순종의 태도를 의미했습니다. 소위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에 쓰여진 마카비서에는 유세베이아의 정신이 깊게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1세기 작품인 마카비 4서는 하나님의 법을 사랑했던 저자가 극심한 환난을 직면하고 있었을 때 기록했습니다. 그에게 삶을 위한 단 하나의 필요는 열정이 지배하는 것이고, 열정에 지배되는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배와 순종이 유세베이아라고 믿었던 그는 다음과 같이 그 질서를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분별 있는 이성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하여 경건 (유세베이아)에 순종하는 이 사람 (오직 이 사람)은 능히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느니라. 이 사람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느리라. 그러므로 그들의 이성이 약하기 때문에 감정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일 때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 온전한 철학의 법칙으로 철학자로 살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덕을 위하여 모든 고난을 참는 것이 복된 줄을 아는 자가 경건함으로 감정을 이기지 못하겠느냐? 오직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감정을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마카비에게 하나님의 법은 철학이었고, 이 철학이 사람을 경건의 길로 인도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은 크든지 작든지 중한 일이니, 범하는 자는 어느 것이나 하나님의 법을 멸시함이니라. 너희는 우리의 철학을 비합리적인 것처럼 비웃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절제를 가르쳐 모든 쾌락과 욕망을 제어하고 담대함을 훈련시켜 모든 고난을 기꺼이 견디게 한다. 그것은 우리를 공의로 교훈하여 모든 일에 공정하게 행하게 하고 경건을 가르쳐 홀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게 한다.”  

   한 인간에게 최상의 미덕은 경건함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경건하게 세웁니다.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언급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경건에 이드로록 자신을 훈련하라고 조언합니다. 이 말씀은 현재형으로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매일 연습하라”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도 동일한 언급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 (유세베이아)을, 경건 (유세베이아)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충고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도리이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유익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남규 목사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