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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스승, “어린 시절의 개인교사”

스승, “어린 시절의 개인교사”

그리스 로마 사회는 어린이 교육을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자라나는 이아들이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그들을 그르치고 지도하며 양육하는 과정은 징계와 강압도 동반되었습니다. 성년이 되기까지 아이들은 집 안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을 희랍어로 “파이다고고스”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을 옳바르게 가르치는 주체가 누군지를 밝히기 위해서 파이다고고스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만명이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여러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스승으로 번역한 희랍어는 파이다고고스입니다. 만명은 셀 수 없이 많다는 은유적 표현입니다. 바울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신앙을 바르게 가르치는 참 아버지는 매우 소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스승이라고 번역된 이 낱말을 영어 성경들은 다양하게 번역합니다. 이 낱말을  KJV는 “강사”로,  NIV는 “안내자”로,  NRSV는 “가정 교사”로, NCV는 “선생”으로, Wycliffe는 “전문가”로, Young는 “어린이 지휘자”로 번역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낱말을 사용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율법은 초등교사이며, 이 단어는 두 번이나 “초등교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성경학자 모패트는 이 단어를 “우리를 훈련하는 안내자”로 번역하고, RSV는 “관리자”로 번역합니다. 이러한 번역들 중 어느 것도 이 단어의 뜻을 완전히 만족스럽게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용되었던 파이다고고스가 오늘날 우리 교육 시스템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능이 없는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사용하는 파이다고고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단어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이 단어의 사용례를 살펴 봐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일곱 살까지 소년들의 교육은 거의 전적으로 어머니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가정에는 파이다고고스가 있어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린 아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머니와 유모 그리고 아버지와 가정교사 (파이다고고스)는 아이들의 아주  어린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들을 가르치고 훈계한다. 아이가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들은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최선으로 가르치고 감동을 준다. 그들은 아이에게 이것은 옳고 저것은 불의하며, 하나는 고귀하고 하나는 저속하며, 하나는 거룩하고 다른 것은 더럽고,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만약에 아이가 순종하며 그대로 두지만, 불순종하게 되면 아이들을 구부러지고 뒤틀린 나무토막처럼 여겨서 위협과 체벌로 그들을 곧게 만든다. 이런 교육 후에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졌고, 학교의 교사들은 더 혹독하게 그들을 가르쳤다”   

   파이다고고스는 그리스 사회에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교사라는 단어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삶을 관리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맡아 하는 사람으로 소년이 18세가 될 때까지 그 일을 했습니다. 그의 매일의 임무는 소년과 학교에 동행하여 그가 학교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고, 소년의 책과 거문고를 들어 주고, 학교에서 그의 행동을 관찰하며, 거리에서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그 소년에게 도덕과 예절과 품행을 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소년이 거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정숙하게 걸어다니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는 소년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그들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는 소년에게 식탁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옷을 우아하게 입는 법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는 소년에게 좋은 매너, 좋은 행실, 즐거운 삶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파이다고고스는 이론적이지 않고 실용적인 삶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이론을 가르치는 교사와 차이점입니다. 파이다고고스의 목표는 영혼을 향상시키고 지적인 삶이 아닌 선한 삶으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자주 파이다고고스는 가장 불만족스러운 인물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영웅전의 저자 플르타르크는 능률이 없는 사람을 향해 “그는 너무 늙고 허약했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에 너무 자주 배제되는 파이다고고스다”고 불평했습니다. 장군이며 정치가였던 고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노예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그는 이제 파이다고고스다!”  이 낱말은 사회적을 위해 기여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끝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리시스와 메넥세노스가 대화 하는 중에 그들의 파이다고고스들이 그들을 집으로 데려 가기 위해 왔습니다. 대화가 아직 한창 진행 중이어서 그 두 젊은이들을 집에 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이다고고스들이 갑자기 그들의 대화를 방해합니다. 그들은 사악한 유령처럼 다가와 “시간이 늦어졌으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처음에는 대화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파이다고고스들을 몰아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야만적인 사투리로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며 계속해서 소년들을 불러냅니다. 그들의 모습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덕이나 문화에 대한 어떤 배움도 없는 상스럽고 술 취한 노예들과 같았습니다.   스승으로 번역되는 파이다고고스의 존재 목적과 기능은 독립적으로 어린 아이를 책임지고 돌보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돌봄과 지도를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어린이가 청년으로 넘어가게 되면, 그들에게 파이다고고스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파이다고고스는 그들에게 부적절하며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서 파이다고고스의 기본 원칙은 이제 율법이 아니라 성경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여 바로잡게 하고 의로 훈련시키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완전한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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