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 (3), “포함된 요소들”
유대인들에게 소테리아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일 때, 구원받는 대상은 이스라엘과 그의 백성입니다. 소테리아는 이스라엘은 외적인 다양한 위험으로부터 하나님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요세푸스의 『고대 유대사』에 “당신은 모든 악한 사고로부터 그들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의 계명을 지키는 이 무리를 구원하사 그들이 해를 받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범죄한 자의 형벌을 받지 않게 하시며. . .”라는 모세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받은 히브리민족을 전쟁이나 전염병이나 자연의 재해로부터 구원하신다는 것을 일관성 있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 (히브리 민족)을 그러한 불행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관련되어 있으며 그들 모두가 멸망할 수 있는 재앙은 결코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유대인의 경전인 타나크 (Tanakh)에 앗시리아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헤립은 유다 백성을 항복시키기 위해 큰 소리로 하나님과 유다 왕 히스기야를 비방합니다.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앗시리아 왕에게서 구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에게 속지 말고 그의 꾐게 빠지지 마라. 너희 신이 어떻게 내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겠느냐?” 이 소리를 들은 히스기야 왕과 이사야가 하늘을 향해 기도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천사를 앗시리아 진영으로 보내셔서 군인들을 모조리 죽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종교 개혁전의 교회, 소위 로마가톨릭은 교황의 면죄로써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해방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은 교황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이미 죽어 연옥에 있는 영혼들도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이 연보궤에 돈을 넣는 순간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구원의 한 요소는 연보였습니다.
유대교와 로마 캐톨릭의 구원을 이루는 요소들과 기독교의 구원 요소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구원을 가져오는 요소를 명확하게 소개합니다.
첫째, 소테리아는 “회개”를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회개로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로 기록합니다. “회개”가 구원의 시작점인 것을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도 바울은 근심과 회개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하는 슬픔은 우리로 회개를 일으켜서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둘째, 소테리아는 “믿음”을 포함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을 이루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역사적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되는 것과, 구원은 사람의 행위의 대가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자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 믿음은 신앙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겠다는 의지와 희망이 포함됩니다.
셋째, 소테리아는 “인내”를 포함합니다. 소테리아를 발견할 사람은 끝까지 견디는 사람인 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 이름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외부의 위협과 반대에 뿐만 아니라 내부의 갈등과 낙담에도 위축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구원의 믿음은 험난한 바다에서 구명대를 꼭 붙잡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거듭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고 강조합니다.
넷째, 소테리아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포함합니다. (살후 2.10).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는 사탄의 힘을 빌어서 큰 능력을 보일 것입니다. 많은 거짓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것은 물론, 진리를 사랑하고 따르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꾀를 사용할 것입니다. 많약 이들이 진리를 따랐ㄷ면 구원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에 눈을 감는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구원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결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곧 있을 구원을 볼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 소테리아는 때때로 “두려움”을 포함합니다.베드로는 가정에서 믿지 않는 남편이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수 있는데, 그들이 아내들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려움은 단지 무서워하는 차원이 아닌 건강한 두려움으로,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앞에 부끄럼 없는 삶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조언합니다. 이 두려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찾도록 이끕니다.
여섯째, 소테리아는 항상 “은혜”를 포함합니다. 구원은 언제나 은혜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이라”고 구원은 오직 은혜로 된 것임을 말씀합니다. 자신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두려워 떨면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구원을 주십니다. 이 구원은 우리의 선행이나 어떤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대하심으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일곱째, 소테리아는 “그리스도의 지속적인 사역”을 포함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완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도 여전히 사람들을 위해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신다는 것은 신약 성경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