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신성한 공동체”
고대인들은 식사와 업무와 성례적 음식을 위한 용도로 사용된 네 다리의 물건을 “트라페자”라 불렀습니다. “식탁”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의 어원은 호메로스가 음식 시중드는 네 소녀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발견됩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아름다운 보라색 양탄자로 의자들을 덮고 그 아래에는 삼베를 깔았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의자들 앞에 은색 식탁들 (트라페자)을 차리고 그 위에 금 바구니들을 놓았습니다. 세 번째 소녀는 그릇에 담긴 달콤하고 꿀 같은 포도주를 금잔으로 날랐습니다. 네 번째 소녀는 물을 길어 와서 밑에 불이 타는 큰 가마솥에 부으면 물은 곧 따뜻해졌습니다. 식탁은 식사를 위해 땅에 놓는 깔개였습니다. 음식을 먹도록 제작된 이 도구는 곧 식사로 이해되었습니다.
식탁의 형태, 특히 높이는 주로 식사하는 자세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트라페자는 일반적으로 땅에 놓는 매트였지만 부유한 계층에서는 의자 높이의 네 받침이 있는 식탁을 사용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고대 도시인들은 식탁을 석회암으로 깎아 만들어 식사 뿐만 아니라 기대는 용도로 이용했습니다. 점차 이 단어는 “기대다”는 뜻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식사할 때도 “앉다”고 하지 않고 “기대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장인(匠人)이나 상공인에게 가장 친숙한 탁자는 물건을 올려 놓는 가구였습니다. 상인들은 물건들은 바닦에 진열할지라도 동전은 언제나 탁자 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트라페자를 사용하는 사람인 “트라페지타이,” 즉 환전상인 또는 은행가로 불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라페자는 “은행”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단어를 불충성한 자에게 “네가 내 돈을 은행에 넣어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할 때 사용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식탁은 제사의 용도로 사용하는 도구였습니다. 에스겔이 설명하는 성전의 일부는 식탁에 관한 것입니다.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쪽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쪽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쪽에 상이 넷이 있고 저쪽에 상이 넷이 있어 상이 모두 여덟 개라 그 위에서 희생제물을 잡았더라.” 솔로몬이 성전의 기구들을 만들 때도 금으로 제사 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사장은 이 상 위에 진설병을 놓았습니다. 헬라 문화에서 이 상을 “하나님의 식탁”이라 불렀습니다.
이와 같은 고대인들의 일상이 담긴 “식탁”은 원시 교회 신앙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식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여러 측면에서 보여 줍니다. 첫째, 식탁은 예수님의 생명 나눔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식사하러 가시거나, 식사 중이거나, 식사 후 돌아오시는 중이라고 표현할 만큼,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에서 음식을 나눴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다”라고 비난까지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식탁에서 음식 나눔을 집착하셨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음식이 인간의 육체를 살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인간을 영생케 하는 생명의 떡임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식은 곧 생명이며 음식 나누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둘째, 식탁은 신성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세금 징수원인 레위를 초대하여 식사할 때, 그의 집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서로 기대어 앉아서 음식을 나눴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당시 당국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고 지적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천시당하던 계층의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함으로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님의 행위는 구약 시대의 화해와 회복의 방식과 상통합니다. 상실되었던 인권과 사회 권리 회복을 위한 공동 식사는 구약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의 손자 므비보세를 발견했을 때 다윗은 그를 식사에 초대해,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속했던 모든 땅과 소유물을 손자에게 돌려줍니다. 천한 죄인들과 식탁 교제를 하신 예수님의 행위는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과 화해하시는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슴을 알리신 것입니다.
셋째, 식탁은 섬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며,” 유월절 만찬에서 빵은 자신의 몸이며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빵을 나눠 먹고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 만찬을 통하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식탁을 자신을 내어 주는 적극적인 섬김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곧이어 신성한 공동체에서 큰 사람이 누군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질문합니다.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그를 시중드는 사람 가운데서 누가 더 큰 사람이냐?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니냐?” 예수님은 이 질문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고 답합니다.
넷째, 식탁은 예배의 일환입니다. 원시 교회의 예배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떡을 떼고 잔을 마시는 성례를 포괄하는 잔치였습니다.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빵을 떼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날마다 개인 가정에서 식탁을 중심으로 모여 이뤄졌습니다. 예배의 요소들이 제단의 예식으로 변화되던 A.D. 3세기에는, 성찬식 식탁은 거룩한 성전의 한 자리에 계속 놓여 더욱 존중시 되었습니다. 비록 성찬 식탁은 예배를 위해 특별히 구별되었지만 일반 식탁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탁은 먹는 것과 관계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다 선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가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이 하나님의 질서를 훼손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하든 교회의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않아야 합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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