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_img
Home 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여성 (1),  “언약의 동반자”

[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여성 (1),  “언약의 동반자”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
Photo by John-Mark Smith on Pexels.com

여성 (1),  “언약의 동반자”

“아테네인들은 노예와 여성이 의학을 배우는 것을 금지했다. 아그노디스라는 처녀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머리를 자르고 남장을 하고 헤로필루스라는 사람 밑에서 수학했다. 그녀가 의학을 배우고 나서 산모가 진통 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그 산모에게 갔다. 산모는 그녀를 남자로 착각하여 자신을 맡기지 않자, 아그노디스는 옷을 벗어 자신이 여자임을 보여주고 그 산모를 치료했다.” 기원전 4세기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당시 아테네 사회가 여성의 의사 활동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고대 로마에서도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42년, 로마 내전 당시 제2차 삼두정치는 군사 작전을 위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세 지도자들은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1,400명에게 특별세를 부과하려 했습니다. 당시 여성은 정치적 발언권이나 투표권이 없었기에, 유명한 웅변가의 딸인 호르텐시아는 여성들을 이끌고 포럼으로 나가 항의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들이 시작하거나 이끌지도 않은 전쟁 비용을 여성들이 부담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삼두정치 지도자들은 그녀의 공개적인 저항에 격분했지만, 결국 과세 대상 여성의 수를 줄였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수많은 사회 구조 안에서 여성의 인권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형평성을 잃어왔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동일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법과 제도와 관습과 인식의 장벽 앞에서 반복적으로 불리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특히 성서의 맥락에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번역의 역사를 거치며 본래의 역동성을 잃고 평면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부수적 존재라고 해석해 왔지만, 성경의 언어들이 담고 있는 본래의 뉘앙스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류 창조의 기록은 언어적 유희를 통해 남녀의 관계를 정의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향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이쉬)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이샤)라 부르리라”고 고백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이쉬”와 “이샤”는 발음과 형태 면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작용을 합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근본적으로 같은 본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성을 남성의 신체 일부에서 취했다는 서사는 종속이 아닌, 남성이 혼자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으며 자신과 동등한 존재와의 결합을 통해서만 온전한 인류를 이룰 수 있다는 상호 의존성을 강조합니다. 

   여성의 역할을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단어는 “돕는 배필”입니다. 이 단어는 오랫동안 오해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돕는 자”라는 표현이 현대 사회에서는 주연을 보조하는 조연이나 하급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서 언어학적으로 돕는자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에제르”는 결코 열등한 존재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에서 “에제르”는 총 21회 사용되는데, 그 중에서 여성을 가리키는 2회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인 16회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데 쓰입니다. 시편 기자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에제르)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노래할 때, 그 도움은 결코 보조적인 기능이 아닙니다. 

   에제르는 죽음의 위기나 전쟁의 패배에서 건져내는 강력한 구조자나 필수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즉, 여성은 남성의 부족함을 뒤에서 보완하는 보조자가 아니라, 인류라는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일으켜 세우고 함께 사명을 완수해 나가는 강력한 구원적 동반자입니다. 돕는 자를 수식하는 “배필”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케네그도”는 “그와 마주 보고 서 있는” 혹은 “그에게 상응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수직적 위계 관계가 아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수평적 평등 관계임을 확증합니다. 

   신약 성경의 헬라어 세계로 넘어오면 여성을 뜻하는 “귀네”는 당시 유대 사회의 가부장적 통념을 깨뜨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은 의도적으로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창세기의 표현을 의도적으로 인용합니다. 이는 죄로 인해 깨어졌던 남녀의 위계 질서를 종식시키고, 창조 본연의 모습인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돌아가야 함을 선포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특히 로마서 16장에서 수많은 여성의 이름을 나열하며 그들을 “쉬네르고이,” 즉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서 바울의 편지를 로마까지 운반했던 뵈뵈,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신의 목까지 내놓았던 브리스가, 그리고 사도들에게 중히 여겨졌던 유니아와 같은 인물들은 사역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 확장의 최전선에서 사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주역들이었으며, 구약의 에제르가 가졌던 역동적인 힘을 신약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해 냈던 중심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소식을 전하게 하셨던 것처럼, 여성은 명실상부한 언약의 동반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여성을 언약의 동반자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단수가 아닌 “남자나 여자”라는 복수적 존재로 만드셨음을 명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고립된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와 연대 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성이 홀로 있는 것을 보시고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라고 하신 하나님의 진단은,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과 대등한 타자를 만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성의 존재는 남성에게 결여된 하나님의 속성을 보완해 주는 필수적인 거울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름받은 주체적인 동반자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