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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남자 (2), “여자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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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2), “여자의 머리”

진정한 남자다움에 관하여 언급할 때, 고든 맥도날드는 모든 남자는 자신의 영혼 속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남자는 호르몬이나 해부학상의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자란 하나의 사고 체계이고, 존재방식이며, 또한 기능적 역할입니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남자의 역할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히 여자와 대비하여 남자의 이 문제는 더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은 여자와 남자의 성적 정체성과 그에 따른 역할에 관하여 내버려 두지 않고 오히려 소상히 알려줍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자신들의 본질과 책임성을 수행하여 인류 창조 때의 모습인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잃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의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의 말씀은 가장 신성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세우는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이 말씀은 여성 인권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절 당하고, 가부장적 권위주의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처럼 오해를 가져 오는 이유는 “머리”가 의미하는 뜻을 단순히 지배 구조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됨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통치와 희생적인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머리”로 번역되는 희랍어 “케팔레”의 뜻은 “권위” 혹은 “근원”입니다. 플라톤은 사회의 지도자나 통치자를 몸의 케팔레 (머리)로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신성한 혁명을 일으키는 둘 이 있다. 그 둘은 몸과 머리로 묶여 있다. 머리는 가장 신성한 부분이며 몸 안의 모든 부분을 다스린다. 머리는 몸보다 더 존엄하기 때문에 그 안에 전체 기관을 위한 생각을 두었다. 자연스럽게 머리가 주도적인 부분이 되도록 정했다.” 몸이 정상적이고 바르게 기능하도록 머리가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이 지도자는 솔선수범하여 사회를 이끌어 가는 통치자입니다.      

   머리에 관한 이런 사상은 고대 세계에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의 역할에 대한 지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합당한 국가 통치 형태를 언급하면서 “가정의 통치는 군주제다. 왜냐하면 모든 가정은 하나의 머리 아래 있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AD 4세기의 지성적인 시인 그레고리우스는 한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아버지를 “아내와 세 자녀의 머리”로 표현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의 삶을 기록한 플루타르코스는 『신랑 신부에게 주는 조언』에서 “덕스러운 가정에서는 모든 활동이 부부의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머리의 지도력과 선호가 드러난다”고 쓰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는 아내도 자신의 생각을 가진 인격체이지만, 가정에서 남편의 지도력을 더 강조했습니다. 가사 노동을 노예가 전담하던 시대에는 남편을 가정의 머리로 간주하는 가부장적 통치가 보편적인 사회 규범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사용되는 케팔레, 즉 머리는 고대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것처럼 통치자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아내가 자발적으로 남편의 머리 됨과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 됨의 독특한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라고 언급합니다. 바울은 뒤에서 남편들에게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복종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아내의 복종을 언급하는 이 말씀은 남편이 아내의 “주”라는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는 그분께 복종하는 관계에서 유래해야 합니다. 성경은 여권주의자나 남성 우월주의자의 견해 어느 쪽에도 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관계는 상호 복종을 포함합니다. 아내의 복종을 언급하기 전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의 개인적인 욕구들을 아래에 두고,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아내가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복종을 입증할 수 있는 하나의 길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머리를 뜻하는 케팔레는 결정적인 근원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원리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에 생명과 성장을 공급하는 “근원”임을 밝힌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곳에서 바울의 관심사는 누가 누구에게 권위를 갖는 위계질서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쪽이 다른 쪽을 더 보호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남자의 머리됨은 아내의 보호자로서의 남편의 역할을 언급한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유익을 위해 생존과 안녕의 자원을 제공하는 위치에 있다는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성경적 머리됨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삶의 근거를 마련하고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선언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는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가정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로운 연합을 보여주는 성례적 모델로 세우라는 부름이다. 남편의 머리 됨은 권위라는 골조 위에 희생적 사랑이라는 살을 붙이는 과정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영혼을 구원하는 자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돌봄을 가정 안에서 가시적으로 재현하는 대리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입니다. 권위가 사랑을 잃으면 폭력이 되고, 사랑이 질서를 잃으면 방종이 됩니다. 바울은 남편들에게 그리스도의 통치 방식을 따르라고 명함으로써, 권위와 사랑이 공존하는 고귀한 질서를 제시합니다. 가정 안에서 머리 됨의 가치가 회복될 때, 비로소 부부 관계는 서로를 억압하는 굴레가 아닌, 서로의 성숙을 돕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의 구주적 사랑을 본받아 머리의 역할을 다할 때, 아내의 복종은 억지로 굴복하는 비참함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반응하는 교회의 기쁨과 같은 자발적 헌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