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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 그런뜻이었구나] 예배 (1), “경건과 존엄의 일”

unrecognizable spectators during night show in hall
Photo by Caleb Oquendo on Pexels.com

예배 (1), “경건과 존엄의 일”

예배를 뜻하는 영어 단어 “워십worship”은 고대 영어 “높은 존경,” “가치 있는 상태,” “존엄,” “탁월성,” 그리고 “명예”를 뜻하는 중세 영어 “워트쉽worthship”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배는 가치 있고 존엄성 있는 것들에 당연히 부여되거나 마땅히 주어져야 할 인정과 경의와 존경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이 낱말이 기독교에서 사용될 때는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헌신과 봉사와 경외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교회 건물은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기독교 단체나 회중이 따르는 다양한 예배 형태는 거룩한 예배 행위입니다.  

   예배는 그 형식 안에 있는 찬양, 기도, 설교와 같은 모든 구성 요소를 포함합니다. 예배 형식과 관련된 요소는 다양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언급될 수 있는 고전 단어들도 매우 많고 다양합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단어는 다음에 소개하는 다섯 개입니다. 이 단어들은 예배의 본질적인 뜻을 밝혀줍니다. 

   첫째, 예배는 “무릎을 꿇다”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신을 숭배하는 태도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하는 몸짓은 표현했습니다. 이 몸짓을 표현하는 단어는 “고누”입니다. 노예가 주인 앞에 고누를 함으로 자신의 목숨과 생활의 전 권한이 주인에게 속해 있슴을 고백했습니다. 성경에서 “무릎을 굽히는 것”이나 “무릎을 꿇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동작을 넘어서 예배자의 내면적 태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제스처입니다. 이사야는 인간의 삶에 공의를 행하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심을 언급하며, 모든 인간은 여호와께 무릎 꿇을 것을 예언합니다. 고누는 굴복과 겸손 그리고 경의를 나타내는 마음 속의 태도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신약에서 고누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예수님께 대한 간구,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 앞에 모든 무릎이 꿇게 될 공적인 선포와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몸짓인 예배는 경외와 전적인 순복을 의미합니다.

   둘째, 예배는 “입을 맞추다”입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땅에 입을 맞춤으로 땅의 신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이는 곧 몸을 굽히거나 엎드리는 행위를 포함했습니다.  이 행위를 희랍어로 “프로스쿠네오”라고 했습니다. 페르시아에서는 공경을 표현하기 위해 사회적 지위가 대등하면 서로 입술에 입술을 맞추고, 조금 낮으면 뺨에, 훨씬 낮으면 상대방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 신하들에게 이 프로스쿠네오 관습을 도입하려 했을 때, 철학자 칼리스테네스와 같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경의는 오직 신에게만 유보되어야 하며, 왕에게 행하는 것은 왕을 신격화하는 것이라며 저항했습니다.

   공경과 경외의 표시인 육체적 입맞춤의 주된 의미는 순종과 숭배를 의미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에 제사를 드리러 갈 때, 그는 종들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 오리라”고 말합니다. 이곳에 예배하다는 의미로 프로스쿠네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근본 의미는 아브라함이 보여준 것처럼 순종하는 행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이 단어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며 그 앞에 엎드리는 제자들과 사람들의 행위를 묘사할 때 집중적으로 사용됩니다. 예배 장소에 관한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참된 예배는 내적인 행위임을 말씀합니다.

   셋째, 예배는 “섬기다”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을 숭배하는 례와 관련된 행위도 예배로 이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제사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제사를 집례하는 일들이 예배였습니다. 이 때 사용된 단어는 “라트레이아”입니다. 원래는 일의 “품삯”이나 국가를 위해 하는 충성스런 봉사를 뜻했던 이 단어는 보상에 관계 없이 섬김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제사장이 성소에서의 행하는 “제의적 섬김”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섬김은 마음과 성품을 다한 결단이나 헌신의 행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섬김은 예식의 테두리 안에 제한되지 않고 신앙인의 삶 전체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라트레이아는 인간 삶의 모든 현장으로 확장됩니다. 기도의 직무, 복음 전파의 사역, 그리고 신자의 거룩한 삶입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 (라트레이아)”를 강조하며, 제의적 한계를 넘어선 전인적 헌신을 역설합니다. 

   넷째, 예배는 “공무 수행”입니다. 예배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는 “예전 Liturgy”으로 번역되는 “레이투르기아”입니다. 이 낱말은 근본적으로 부유한 시민이 자신의 비용으로 도시나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혹은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공적 봉사”를 뜻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낱말은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수행하는 공적인 직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전례 행위는 하나님께 자신들을 바치는 제사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낱말은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과 관련된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심으로 주님의 대제사장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 교회에 예물을 가져 올 때, 그는 공무수행 (레이투르기아) 중이었습니다. 그는 제례 행위의 대리자로 그리고 공동체의 사업 대표자로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면서까지 헌신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나 복음 전파 사역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여 사역의 희생적이고 제사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다섯째, 예배는 “동의하다”입니다. 법정이나 상업적 상황에서 “시인하다” 혹은 “동의하다”는 뜻의 희랍어 “호몰로기아”는 성경에서는 예배의 가장 포괄적인 열쇠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인정하고 선포하는 행위는 예배와 찬양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라고 찬양합니다. 

   신약에서 호몰로기아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입술로 고백하고 증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호몰로기아)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호몰로기아)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는 예배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고백, 찬양, 그리고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 (설교)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결국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한 신자의 응답이자 공적인 시인입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