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 “방종에서 사랑으로”
“자유의 첫 번째 표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노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두 번째 표지는 ‘지배받지 않는 것, 가급적이면 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거나, 지배받더라도 번갈아 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것’이다.” 타인의 방해 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 그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를 자유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고대 민주사회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폭군과 외세의 억압에서 벗어난 정치적 해방을 자유라고 정의합니다. “아테네인들은 폭군의 지배 아래 있을 때는 이웃 도시들보다 전쟁에서 특별히 우수하지 못했으나, 폭군으로부터 해방되자 단연 으뜸이 되었다. 이는 압제 아래 있을 때 그들은 주인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나, 자유로워지자 각자가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열정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로마의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법의 지배 없는 자유는 방종이며, 왕이나 폭군의 개인적 지배 아래 있는 신분상 노예와 다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참된 자유란 아무런 정욕이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며, 오직 법에만 종속되는 것이다. 법의 종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유롭기 위함이다.”
“자유”로 번역되는고대 그리스어와 관련된 어휘들은 명사형 “엘레우테리아 freedom, liberty,” 형용사형 “엘레우테로스 free,” 그리고 “해방시키다”라는 동사형 “엘레우테로오 to set free, deliver, release”가 있습니다. 이 단어들은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서 이 단어들은 노예와 대조되는 “자유인”을 의미했습니다. 자유인은 대개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부는 돈으로 자유를 샀습니다. 나중에 이 단어는 폭군이나 외부의 적들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낱말들은 사상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사회 질서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생각할 자유가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의 핵심은 정치적 해방이나 사회적 자율성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사로잡고 있는 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 지도자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며, 예수님을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더 깊은 노예 상태를 지적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욕망과 죄의 힘에 끌려갈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자유를 얻는 길에 관해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사용된 “자유롭게 하다”는 동사형 “엘로우테로오”는 단순히 기분을 해방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속박된 상태에서 풀어 주어 자유로운 신분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쟁취하는 자기 선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해방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결국 자유란 죄의 압제에 억눌린 영혼이 복음을 수용함으로 얻게 되는 해방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자유의 개념을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더니,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이 말씀 속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의 역설이 담겨있습니다. 죄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하나님께는 매인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누구에게 속하느냐가 자유의 본질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에게 매이면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면 비로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라”고 권면합니다. 자유를 방종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권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선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말씀합니다. 자유를 얻은 사람은 자기 욕망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종이 됩니다. 이러한 자유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장차 하나님의 자녀들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선언합니다. 자유는 단순히 감옥 문이 열리는 사건이 아닙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설 수 있게 되는 사건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자유는 죄책에서 벗어나는 자유이며,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자유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권리나 인권 회복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본질을 거듭나게 하는 참된 자유입니다. 존 번연은 신앙 때문에 오랜 세월 감옥에 갇혔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육체의 욕망을 마음껏 따라가는 방종이 아니라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임을 강조합니다.
참된 자유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죄가 나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데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을 떠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 자유의 절정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슬이 끊어진 사람은 아무 곳으로나 달려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황이 아니라 방향을 갖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남규 목사


![[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기쁨 (3) 우리의 문화유산 pink pencil on open bible page and pink](https://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pexels-photo-272337-1-324x160.jpeg)
![[칼럼: 아!그런뜻이었구나] “기독교 메시지,” 로고스 (2)](https://christiantimes.ca/wp-content/uploads/churchmain-324x16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