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영적 악행자들”
“이단”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명사는 “하이레시스”입니다. 동사형은 “선택하다,” “자신을 위하여 취하다,” “강하게 분리하다,” 혹은 “당을 짓다”는 “하이레오마이”입니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이단 (하이레시스)이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행위나 입장,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삶의 방향과 목적을 나타내는 삶의 형태 등을 가리켰습니다. 이후에는 특정한 철학적 가르침이나 그 가르침을 따르는 학파를 지칭하는 말로 발전했습니다.
“하이레시스 (이단자) 일반적인 사회 관습과 부와 명예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노골적으로 거부하였다. 이로 인해 그들은 당대 대중과 기득권층으로부터 극심한 조롱과 비난과 사회적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도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정신적 자유와 자급자족을 지키려 노력했다.” 이 글은 인생은 개와 같다고 주장한 고대 견유학파 (犬儒學派, Cynics) 철학자들의 삶을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종교, 문화, 예절 등 인간 사회의 모든 관습을 거절했습니다. 대신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사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인생은 개처럼 사는 편이 좋다”며, 남루한 옷을 걸치고 구걸하며 노숙자처럼 생활했습니다.
플라톤은 자신의 친구 파이드로스와 대화하면서 하이레시스 (이단자)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는 이상적인 삶이란 육신의 방종에 빠지지 않고 고결한 정신적 교감과 철학적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상태라고 언급합니다. “그들의 삶은 이전 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조화로워지며,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향 (하이레시스) 안에서 영혼의 절제와 질서를 찾게 된다.” 플라톤에 따르면 하이레시스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영혼의 날개가 돋아날 준비를 마치게 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을 때 어둠이나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빛으로 가득한 참된 실재의 세계로 당당하게 날아오를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언급한 이단자는 외적인 삶의 모습은 견유파와 다르지만, 자기 스스로 이상적인 삶을 선택한다는 내면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철학의 세계에 이단자를 뜻하는 하이레시스는 특정한 철학적 학파를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그들에게 학파란 단순히 어떤 이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학파에 속한다는 것은 특정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특정한 관점을 공유하며, 때로는 그 관점에 따라 생활 방식까지 선택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대의 이단자란 오늘날의 “이단”처럼 종교적 의미보다는 어떤 입장을 선택하고 그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을 묘사하는 분류의 언어였습니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는 이단자들의 활동과 그들이 사회에 끼친 악영향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갈릴리 사람 유다가 주도한 새로운 분파 (독자적 사상 집단으로 묘사됨)가 로마 제국의 호적 조사와 세금 부과에 극렬히 반발하며 무장 투쟁을 선동했다고 기록합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님이시요 통치자이시다”라는 명분 아래 타협 없는 극단적 노선을 고집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선동과 극단적인 사상은 유대 사회 전체를 로마와의 피할 수 없는 전면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내부 분파가 주도한 폭력과 광기는 결국 예루살렘 성전의 완전한 파괴와 민족의 참혹한 학살, 그리고 대규모 디아스포라(포로 이주)라는 역사적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요세푸스는 이단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듯 그들의 소행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완전히 포위하고 조여오는 극도로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성 안의 이단자들 (시몬의 무리, 요한의 무리, 엘레아자르의 열심당 등)은 서로를 향한 배신과 권력 다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외부 적과 싸우기보다 성전 내부에서 서로를 숙청하고, 시민들이 비축해 둔 식량 창고를 불태우며 잔인한 내전을 벌였습니다. 이로 인해 성 안에서는 칼에 의한 죽음보다 극심한 기아와 질병으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시민과 가족들이 비참하게 아사하는 등, 공동체의 결속이 완전히 무너지고 가정과 사회가 내부로부터 붕괴되었습니다.
요세푸스의 주장에 의하면 이들 (하이레시스)은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독점했다고 주장하면서 배타적 태도로 타협을 거부하고 내부 폭력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정당화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분열과 광기로 인해 자멸을 초래했습니다.
이단에 관한 고대 그리스어의 일반적인 용법을 물려받은 신약성경은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과 관련해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 (하이레시스)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이단자들의 목적은 교회를 시기하고 위협하며 말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키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들을 열거하면서 분쟁, 시기, 분열 등과 함께 이단자들을 언급합니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 (하이레시스)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사도 바울은 이단자들은 항상 논쟁을 시도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고 교회의 유익이 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해로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시도하는 것에 관해서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며, 이단은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 파멸적인 가르침을 몰래 끌어들일 것을 경고합니다. 그들이 공동체의 신앙과 가르침을 훼손하고 분열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과 같은 믿음을 따라 자신의 참된 아들이 되었다는 디도에게 이단에 대한 엄한 경계를 조언합니다. “이단자는 한두 번 경고해 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그와 관계를 끊으라!” 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이단은 교회의 진리 기반을 흔들고 공동체를 깨뜨려 사적인 파벌을 만드는 그릇된 가르침과 집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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