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그네 (1), 의지하는 사람들
이 땅에 거주하고 생활하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희랍어 낱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단어들로는 “제노스,” “파레피데모스,” 그리고 “파로이코스”입니다. 이 낱말들은 모두 기독교인을 한 장소에 영구 거주하지 않는 이방인, 나그네, 그리고 순례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노스”에 관해서 살펴봅니다.
제노스가 부정적 의미를 갖는 배경은 근본적으로 원시 국가에서 자국을 침입한 적을 표현하는 단어였기 때문입니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제노스는 “낯선 사람” 또는 “이국인”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국가의 “시민”인 “폴리테스,” 그 땅의 “거주자”인 “에피코리오스,” 그리고 국가의 “토착민”인 “엔데모스”와 대조됩니다. 제노스는 심지어 “나그네” 혹은 “난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집트 나일강 가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에는 한 남자가 “내가 제노스, 즉 나그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받았다”고 쓴 내용이 있습니다. 다른 파피루스에도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편지를 쓰면서 다음과 같이 제노스를 언급합니다. “내가 집을 떠났다고 해서 나에 대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장소를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노스가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나그네 된 자신의 고달픈 처지에 관해서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낯선 땅에서 제노스가 되는 것보다는 자기 집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같은 클럽 회원들이 함께 모여 공동 식사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앉은 사람들은 “순데이프노이”인 동일한 도시에 거주하는 회원과 외부인인 “제노스” 회원로 나뉘었습니다. 클럽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제노스들에게 예의와 인내심이 필요했습니다. 외국 군대에서 복무하는 용병도 외부 사람인 제노스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이국에서 차별 대우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대 스파르타인들은 자국 시민이 아닌 제노스, 즉 나그네를 본능적으로 야만인으로 여겼습니다. 제노스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자국민과 반대되는사람들로 차별과 멸시와 억압의 대상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나그네 되어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 들어 온 이방인을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도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종교에서 가장 아름답고 최고의 정의로운 제우스 신의 또 다른 칭호는 제우스 크세니오스였습니다. 이는 “나그네의 신 제우스”라는 뜻으로 나그네들은 제우스의 보호를 받을 만큼 존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들의 처지는 언제나 비참함 그 자체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 중반에 쓰여졌다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는 나그네에 관해서 이런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살고 죽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외국 땅에 거주하면서 가난하게 되면 경멸을 면치 못하고, 비록 부자가 된다고 해도 그들이 마치 어떤 악행을 저질러서 이룬 것으로 의심을 받아 결국 추방을 당하게 된다.”
『시라크의 지혜』는 초기 교회 성도들이 애독하는 책이었습니다. 삶의 깊은 지혜와 신앙 생활의 옳은 지침을 제시하는 이 책에는 나그네의 처지에 대한 유명하고도 애절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무로 된 가난한 너의 지붕 밑에 사는 것이 나그네 되어 남의 집에 진수성찬을 받는 것보다 낫다. 풍부하든 비천하든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 식객으로 비난을 듣지 않으리라.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는 나그네의 삶은 불행한 삶이다. 네가 어디에 머물든 입을 열지 못한다. 너는 속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에 네가 따르는 술에 대한 감사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씁쓸한 말만 듣게 된다. ‘낯선 사람아, 이리 와. 식탁을 차려. 뭐 준비했어? 먹을 것을 좀 줘. 나그네야, 이제 떠나. 중요한 사람을 위해서 자리를 비워. 내 동생이 머물러야 해. 그를 위해 집이 필요하단 말이야.’ 나그네로서 당하는 비난과 빚쟁이에게 당하는 모욕은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참기가 힘든 일이다.”
고대 사회에서 나그네는 외부에서 온 사람으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부당한 대우와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낯선 적대적 환경에서 늘 불안하며, 힘겨우며, 두려움과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나그네라는 사실은 그 자체가 편안함과 거리가 있습니다. 더더욱 이 땅에서 극진한 대우을 받으며 인기 있는 삶은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삶은 나그네였다고 밝힙니다. 그 삶은 주렸고, 먹을 것이 없었으며, 목말랐고, 헐벗었으며, 병들었고, 옥에 갇힌 상태로 묘사합니다. 누가는 그리스도인을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비유하면서 나그네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손이 남의 땅에서 나그네로 지낼 것이다. 그곳 백성이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종으로 삼을 것이며, 네 자손을 학대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조국 고향 예루살렘에 일어난 큰 핍박을 피해 소아시아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을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위어스비는 이 사람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흩어진 나그네에 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은 그들은 극심한 고통과 핍박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비기독교인들에게 고난을 받고 심한 욕설을 들었다. 베드로는 그들이 받는 고난은 반드시 영광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편지를 썼다.” 거절과 부당한 대우는 나그네의 길에서 만나는 자연스런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그 여정의 끝에는 영광이 기다립니다. 그 여정에 우리가 익혀야 하는 삶의 태도에 관해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과 함께 이런 조언을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 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