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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진노의 대상을 위한 사랑, “화목”  (2)

진노의 대상을 위한 사랑, “화목”  (2)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모세를 반역합니다. 이 네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이백 오십 명을 모아서 모세를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모세를 대항합니다. “왜 너는 스스로 높여서 모든 백성들 위에 군림하느냐!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우리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상한 모세는 “이제 당신들은 이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한 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셔서 하신 일임을 알게 될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땅이 갈라져서 이 반역자들을 삼키게 되면 그들의 반역은 모세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것이다고 알립니다. 모세의 말이 끝나자 마자 땅이 입을 벌리듯 갈라져 반역자들을 삼켰습니다. 다음날 사람들이 모세를 향해 “당신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소”라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내가 이 백성을 순식간에 없애 버릴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백성들 사이에 염병이 시작되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그 때 모세는 아론에게 속히 백성들 가운데 가서 죄를 씻는 예식을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아론이 죄 씻는 예식을 행할 때 염병이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와 함께 그들을 벌하셨습니다. 그래서 진노와 형벌을 면하고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제물을 드리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흠이 없는 소나 양 또는 염소를 하나님 앞에 가져와 가축의 머리에 안수한 후에 죽여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물은 죄 범한 사람을 대신하여 죽음으로 죄인의 죄를 없애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드려진 희생 제물이 그 죄를 없애고, 그 결과 하나님과 죄인이 화목하게 되는 원리는 성경 전체에 흐리는 질서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희생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는 개념을 “알라스세인”이라 했습니다. 우리말 “화목”으로 번역되는 이 낱말의 근본적 의미는 “교환을 위해 주다,” “교환을 위해 받다” 혹은 “동등한 가치로 바꾸다”입니다.일반 사회에서 물건을 서로 교환할 때나 물건을 돈으로 바꿀 때,  그리고 적대적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할 때 “화목”이 사용되었습니다.서로 원수지간이었던 사람들이 화목에 필요한 것을 상호 교환함으로 친밀한 우정이 형성되었습니다. 1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에 불효자 아들이 “나에게 화해해 주세요”라고 어머니에게 쓴 기록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고, 자신을 아들로 다시 받아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 경우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자백할 뿐만 아니라 용서에 필요한 배상을 제공하고, 그리고 용서를 요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에 아들은 피해자인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자식이 제공한 모든 것을 어머니가 기꺼이 받아들일 때만 화해가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타난 화해는 상호 교환과 수용을 통해 이뤄졌던 일반 사회의 화목과 다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뤄지는 화해의 주도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원리를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이 글에 따르면 하나님과 인간은 그 관계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깨지고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죄인에게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성경은 화목을 이루는 유일한 주도 권 자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이런 적대자의 신분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주도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셔서 화목의 길을 오픈하셨습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과 적대적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과 원수 관계로 그분의 진노 아래 심판을 받는 반역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에 관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표현합니다.하나님의 진노는 자제심의 상실로 인한 불합리한 감정의 폭발과 같은 못된 성질의 격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관해서 제임스 오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피조물의 배은망덕과 반역과 고의적인 불순종과 또는 천박함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함과 존귀와 그의 의와 사랑이 위협받을 때, 하나님의 것들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이 곧 진노다.”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이 진노에서 제외될 자는 아무도 없으며 인간은 스스로 이 진노를 피할  그 어떤 방책도 없습니다.

   화목은 심판의 대상인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아”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죄로 인한 저주에서 영원히 벗어났습니다. 우리의 죄 값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화목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비용은 계산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갚으신 이유는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본성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사도 요한도 동일한 원리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화목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영원히 찬양할 으뜸가는 주제입니다. 레만은 화목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이 화목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진노의 대상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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