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내가 누군지 알아? 

[칼럼:세상돋보기]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 

사람은 자신의 말에 무게감이 없고,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을 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이다. 그 속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여기서는 왕이야! 그런데 네가 뭔데 감히 왕의 권위에 도전이야!’ 사실 이 말을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여기서 왕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너 때문에 왕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거든, 난 여기서는 왕노릇하고 싶어!’ 라는 말이기도 하다. 일종의 ‘열등감의 그림자’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실제로는 왕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인 경우에는, ‘내가 누군지 알아’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이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종종 다른 것으로부터 권위와 힘을 빌려오려고 한다. 그 때 하는 말이 다른 권위있는 사람이나 기관을 끌어오는 것이다. ‘너 우리 형이 누군지 알아?’ ‘여기 시장이 내 친구야’ ‘내가 구청장과 잘 아는 사이야’ ‘나 경찰에 빽 있어’ 이런 말을 할 때는 당당하고 확신있게 큰소리치며 말한다. 

요즈음 코로나가 풀리면서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항공사에는 종종 좌석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상당수가 국토교통부 고위 공무원과의 연줄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국토교통부가 항공사 관리 감독 업무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법이 정한 개인의 한계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은 달콤한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권위있는 존재와의 관계를 들이대는 것이다.

성도에게도 이런 유혹이 찾아온다. 자신을 크고 거룩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인 것처럼,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거짓 영적 권위를 동원하려 한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만으로 충분하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확언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로 충분하다. 저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하며 자신을 부풀리고 과시하려하는 시대풍조 가운데,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진솔한 나 자신을 드러내려면 나의 무엇을 드러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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