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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소망 ①,  “그 알맹이”

소망 ①,  “그 알맹이”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프로타고라스를 만나,  사람은 현재의 삶에서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희망할 수도 있고 반대로 무서워할 수도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은 육체의 삶과 무관하게 기뻐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타고라스는 단호하게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발생한 사건들과 현재 직면한 삶은 우리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는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미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언제나 송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는 “바로 그렇다”고 답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또 질문합니다. “정의롭고, 경건하며, 선한 사람들은 분명히 신들의 친구인가요?” 종교 생활하는 사람들만 소망을 갖느냐는 질문입니다. 그는 “분명히 그렇다”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부정하고 철저하게 나쁜 사람들은 그와 반대인가요?”라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그는 “물론 그렇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방금 대화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들 속에는 수많은 소망들로 가득 찼잖아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는 “예, 확실히 그렇다”고 답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누구나 수많은 소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 째는  인간의 삶은 현재의 삶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예측으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절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소망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비록 소망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지만, 신을 의지하는 종교인들에게 소망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를 회상하고 또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두려움으로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소망으로 볼 것인가는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주관적인 관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에 따라 삶을 두려워할 수 있고, 혹은 생기 있는 소망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한 개인의 삶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과 바라는 방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인간의 기대와 소망은 자기자신의 투영의 결과입니다. 삶의 자원이 전능하신 하나님인 사람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소망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소망은 기독교 신앙의 3대 기둥 중의 하나입니다.  온전한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믿음과 사랑과 더불어 소망 위에 세워집니다. 소망은 기독인의 독자적인 미덕으로 비기독교인에게는 불가능한 세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직면하는  삶의 모든 문제들을 소망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은 죽음까지도 평온과 함께 소망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면 갖게 되는 여러 소망의 요소들을 언급합니다. 첫째,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사상은 신약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이어집니다. 바울은 이 소망에 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잠자고 있기 때문에, 다시 깨어나는 소망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는 소망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으나, 죄 때문에 그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 하나의 성품, 하나님의 임재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절망과 좌절을 극복하는 힘입니다.영어 성경 TEV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합니다”를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는 것이다”라고 번역합니다.

   셋째, 새로운 시대의 소망입니다. 성령님께서 자격을 주셔서 성령의 지배 아래 사역하는 소망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며 사역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그러니 성령의 사역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라고 언급한후 “이러한 소망이 우리에게 있기에 우리는 매우 담대합니다”라고 말합니다.우리에게는 환경을 초월해서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소망을 갖는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넷째, 의에 대한 소망입니다. 성경에서 “의 righteousness” 혹은 “칭의 justification”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신앙 생활을 도덕과 윤리적 차원에서 하게 되면 내면에 자유함이 없고 오히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속으로 인도하며, 그곳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어린아이와 아버지의 친밀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갖게 됩니다.   

   다섯째, 구원의 소망입니다. 이것은 두 측면을 의미합니다. 우선은 이 세상에서 안전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안전은 위험과 문제로부터 그리스도인은 완전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위기로부터 절대적인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또 다른 구원은 장차 도래할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안전에 대한 확신입니다.  지구의 종말 때에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되는 소망입니다.

   여섯째, 영생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고 말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영원은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항상 강조합니다. 영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의 종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께서 나눠 주시는 풍성한 삶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일곱째,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입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그리스도가 승리의 왕으로 재림하심을 언급합니다.  재림은 오늘날 유행하는 교리는 아니지만, 그것은 역사는 어딘가로 가고 있으며, 역사는 매듭 없는 실이 아니며, 무의미하고 단절된 사건들의 우연한 집합이 아니라  완성된다는 위대한 진리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덟째, 하늘에 쌓아 둔 소망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준비된 것들이 있습니다.그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썩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쇠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고,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희망과 꿈의 성취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의 사람들입니다.

이남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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