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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칼럼 김영남 목사의 책향 (22) 돈, 탐욕의 우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칼럼: 책향] (22) 돈, 탐욕의 우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책향(22) 돈, 탐욕의 우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돈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터전 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을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는 돈의 거대한 힘 앞에 경탄하면서도 비릿한 씁쓸함을 느끼는 양가감정을 경험한다. 생존을 결정짓는 척도이자, 때로는 인간의 가치마저 매겨버리는 절대적인 권력으로 군림하는 돈 앞에서 기독교인들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 모순된 상황 속에서 도대체 어떤 재물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손성찬 목사의 저서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는 이러한 치열한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향해 뼈아프고도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먼저 돈에 대한 왜곡된 전제를 새롭게 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 많으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번영주의’나, 반대로 돈 자체를 속된 것으로 여기는 ‘금욕주의’ 사이에서 갈등해 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논쟁, 곧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셨다.  “돈 자체는 결코 ‘거룩한 것이냐, 속된 것이냐’로 구분할 수 없다. 사용되는 자리와 용도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저자는 그래서  ‘돈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도구를 사용하는 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성경은 돈과 인간의 진정한 주권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명확히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돈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위임받은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주인으로 여기고 주어진 도구를 삶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돈은 인간을 망치는 우상, 즉 ‘맘몬(Mammon)’이 되고 만다.

청지기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고 써야 하는가? 저자는 수입에서 ‘근로 소득’과 ‘자본 소득’을 구분한다. 근로 소득의 핵심은 ‘신실함(충성)’이다. 청지기는 단지 밥벌이라는 생존 수단을 넘어, 일터로 부르신 진정한 주인을 향한 신실함으로 노동에 임해야 한다. 한편,’자본 소득’을 추구할 때 덕목은 ‘분별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양분 삼거나 생명을 억압하는 기업에 자본을 투입하는 것은 투기일 뿐이다. 나의 이익을 넘어, 내 자본이 흘러가는 곳이 타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력’까지 고려하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투자 방식이다.

또한  ‘지출’도 성경의 원리를 따르기 바란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자신의 대문 앞에 버려진 나사로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한 채 오직 자신의 사치와 허영을 위해서 돈을 소비했다. 나만을 위해 부를 축적하고 소비하는 것은 결국 맘몬의 노예가 된 자의 정체성을 드러낼 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이기적인 축재에 매몰되지 말고, 그 돈을 타인을 살리고 은혜를 베푸는 데 기꺼이 사용하라는 명령이다. “재물이 그 손에 들려 있는데도,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돈을 들고 있으면서 사랑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오해이다. 설마 가족에게도, 애인에게도 그렇게 말할 것인가?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너에게 쓸 돈은 없어!’ 절대 그런 사람은 없다. 절대 그런 사랑은 없다.”. 기꺼이 재정적 손실을 감수하며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 곧 맘몬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이러한 재물관은 개인의 삶을 넘어 교회 공동체의 사명과 경제 제도로도 확장되어야 한다. 십일조와 헌금의 본질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통로다. 타락한 세상에서 고통받는 약자들을 돌보고 사회적 부조리를 회복시키는 ‘회복적 정의’의 실현, 곧  ‘희년(Jubilee)’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각자의 지갑 앞에서 정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적인 언어들을 남발하면서도, 삶의 실질적인 경제적 결단의 순간에는 철저히 맘몬의 논리에 무릎 꿇고 있지는 않은가? 소비를 통해 텅 빈 내면을 과시하려 하고,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 채 자신만을 위하는 길에 매몰되어 있다면, 우리는 율법의 형식만 쫓던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돈을 그저 도구로 보고 활용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묵직한 선언이 물신주의에 깊이 잠식된 교회와 성도들의 굳은 심령을 일깨우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