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가지 서로_하라 (성경적 관계론)
현대 서구 사회와 도시 문화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파편화로 치닫고 있다. 신앙생활조차 ‘나와 하나님의 수직적 관계’ 혹은 ‘나의 내면적 위로’로 환원되기 일쑤다. 주일 예배에 참석해 군중 속에 섞여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빠져나가는 오늘날, ‘형제자매와의 인격적 관계 맺기’는 번거롭고 위험한 모험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신약성경에 무수히 반복되는 ‘서로’라는 어구에 주목하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관계망 속으로 편입되는 것’임을 역설한다. 책은 총 31개의 장을 통해, 추상적인 사랑의 담론을 일상의 구체적인 행동 매뉴얼로 번역해낸다. 각 장은 본문 설명(Exposition), 구체적 일상 예시(Illustration), 3) 자기점검 및 실천을 위한 적용 질문(Application)이라는 실용적인 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롬 12장,14~15장을 통해 교회가 ‘혈연관계 수준의 애정과 헌신’을 나누는 영적 가족(필라델피아)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는 명령은 대화의 주도권을 쥐려 하거나 나를 드러내려는 본성을 꺾고 상대방을 나보다 가치 있게 여기는 훈련이며, “서로 비판하지 말고 받으라”는 명령은 외적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신 것처럼 환대할 것을 요구한다.
또 말의 문제와 인간관계의 파탄을 매우 정밀하게 다룬다. 엡 4장과 야고보서 말씀을 근거로 ‘악의적 험담과 사실에 기반한 뒷말’ 모두가 지체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비방죄임을 폭로한다. 또한 용서를 다룰 때 “미안합니다”라는 모호한 감정적 사과에 그치지 않고, ‘이 문제를 당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구체적 헌신과 약속으로서의 성경적 용서 모델을 제시한다. 감추어진 내면의 음욕이나 시기는 하나님께만 토설하되, 타인에게 외적으로 상처를 준 죄는 당사자에게 찾아가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는 ‘동심원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공동체적 돌봄과 선교적 환대가 필요한 교회는 소수의 목회자나 장로들만 일하는 곳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각자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청지기이며,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는 말씀처럼 서로의 영적 상태를 돌보고 권면하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특히 벧전 4: 9의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는 명령을 풀며, 고대 교회가 나그네를 환대하고 가정을 개방해 교회의 처소로 삼았듯 현대 성도들 역시 식탁과 삶의 공간을 이웃과 새신자에게 기꺼이 개방해야 한다고 도전한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거대 담론을 “대화할 때 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기”, “퇴원한 성도에게 식사 대접 약속 잡기”, “기도 일기장 작성하기”, “교회 식사 대기줄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서게 하기”와 같은 일상적이고 검증 가능한 행동으로 세분화했다. 성도들이 소그룹이나 가정에서 매일 한 장씩 읽고 체크리스트를 점검하며 제자훈련 교재로 활용하기에 이보다 더 실용적인 지침서는 찾기 어렵다.
이 책이 던지는 ‘31가지 서로_하라’는 타향살이의 고단함과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이민교회 성도들에게 실로 뼈아프고 절실한 치유의 처방전이 된다. 먼저 좁은 이민 사회의 고질병인 ‘비방과 험담(뒷말)’의 단절이 절실하다. 한인 이민 사회는 바닥이 좁고 관계망이 얽혀 있어, 소문과 험담이 빛의 속도로 번진다. 교회 내에서 “기도 제목을 나눈다”는 명목으로 타인의 아픔이나 실수를 무분별하게 퍼뜨리는 소위 ‘은혜로 포장된 뒷말’이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실족시키고 교회를 깨뜨려 왔는가? 저자들은 악의적인 거짓말뿐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이 아닌 상처를 주려는 동기로 등 뒤에서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명백한 비방죄임을 엄히 경고한다. 이민 성도들은 자신의 혀에 파수꾼을 세우고, 불평과 원망 대신 피차 허물을 덮어주는 성경적 침묵과 사랑의 언어를 훈련해야 한다. 또 이민 사회에서 성도들은 이국땅의 언어적·인종적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교회 안에서 세상의 성공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인정받으려 한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라”, “차별 없이 서로를 받으라”는 바울의 음성은, 이민교회가 세상의 계급장을 떼고 오직 십자가의 보혈 아래서 모두가 동등한 형제자매로 다시 마주 서야 함을 일깨운다. 나아가 ‘폐쇄적 동향 모임’을 넘어서는 진정한 손 대접의 회복을 강조한다. 많은 이민교회가 신앙공동체 본연의 모습에 더 집중하길 바란다. 베드로 사도가 명한 손 대접은 내가 편한 익숙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넘어, “나그네를 사랑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 홀로 던져진 유학생, 비자 문제로 신음하는 이주민,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교회의 문턱과 가정의 식탁을 조건 없이 개방할 때, 이민교회는 비로소 세속 사회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피난처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스튜어트 스콧과 앤드류 진의 『31가지 서로_하라』는 머리로만 동의하고 입술로만 외치던 우리의 신앙을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끌어내리는 정직한 거울이다. 31가지 항목 하나하나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다가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먼저 한없이 품으시고 발을 씻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앞으로 다시 나아가게 된다. 내 것을 내어주고, 먼저 존경하며, 기꺼이 짐을 나누어 질 때, 이민교회는 상처와 갈등의 진원지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풍성한 생명과 위로가 흘러넘치는 은혜의 오아시스로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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