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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칼럼 김영남 목사의 책향 (28)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

[칼럼: 책향] (28)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매일 영적인 전쟁을 한다. 존 파이퍼는 성도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넘어지는 수많은 감정과 태도의 죄(염려, 교만, 수치심, 조급증, 탐심, 원한, 낙심, 정욕)의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장래의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 없음(불신)’이라는 암적인 뿌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죄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죄가 던지는 거짓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불신’이 다. 이를 이기기 위해 ‘불로 불을 끄는 방식’을 제시한다. 곧, 죄의 거짓 약속을 하나님의 ‘더 크고 영광스러운 참된 약속’으로 제압하고 깨부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혹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불안에 떨며 싸우는 노예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원히 ‘의롭다’ 선언된 자로서 확신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핵심 죄악 8가지의 실체와 처방을 살펴보자.

-염려와 싸우다 (그분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 없음):마 6장에 나타난 주님의 일곱 가지 약속을 성령의 검으로 취하라.  

-교만과 싸우다 (그분의 주권에 대한 믿음 없음): ‘자랑’뿐 아니라 ‘자기연민’ 역시 교만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세세한 호흡까지 주관하심(약 4:15)을 인정하고, 자아를 높이는 대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더 큰 기쁨을 누리라 ’  

– 수치심과 싸우다 (그분의 평가에 대한 믿음 없음):하나님을 욕되게 한 일에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할 ‘올바른 수치심’도 회개 후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유를 누려야 하며, 세상의 비난이나 거짓된 잣대가 떠안기는 ‘잘못된 수치심’은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조급증과 싸우다 (그분의 타이밍에 대한 믿음 없음): “계획에 없던 순종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계획에 없던 순종의 속도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주권’을 가지셨음을 믿으라.

-탐심과 싸우다 (그분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 없음): 하나님 한 분만으로 자족하지 못해 세상의 물질과 부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현대판 우상숭배이다. 자족하는 경건의 풍성함을 맛보라.

-원한과 싸우다 (그분의 공의에 대한 믿음 없음): 하나님의 완벽한 공의를 믿으라. 우리는 억울함의 집행관 자리를 주님께 넘겨드리고 긍휼과 사랑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 낙심과 싸우다 (그분의 회복시키심에 대한 믿음 없음): 자아가 속삭이는 어두운 탄식을 듣고만 있지 말고, 내 영혼을 향해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5)  

– 정욕과 싸우다 (참된 만족이신 그분에 대한 믿음 없음): 쾌락은 영원한 하나님의 기쁨과 맞바꾸려는 영적 눈멂을 가져온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충만한 만족으로 정욕에게 승리해야 한다. 

인생은 광야의 여정이다. 매일 메마른 땅에서 ‘어쩌면, 만약에, 혹시나’ 하는 염려에 노출되기 쉽다. 긴장과 불안이 늘 뒤따른다. 우리처럼 저자도 유학 시절 낯선 곳에서 수없이 사 41; 10을 되뇌었었다고 고백한다. 고립과 상처 앞에서 “자기연민을 버리고 공의로운 주님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민자들은 쉽게 ‘자기연민’과 ‘해묵은 원한’이라는 골짜기에 갇히기 쉽다. 억울함은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다. 하나님이 가장 완벽하고 공의로 결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때로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내 인생만 멀리 돌아가고 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인내란 불평이나 환멸에 빠지지 않고 ‘기다리며 견디는 능력’이다. 시계가 멈춘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은 가장 정확하게 일하고 계신다. 

초연결 사회, 무한 비교의 알고리즘, 물질만능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탁류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먼저 “타인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옮겨가야 한다.  “내 감정을 듣지 말고, 내 영혼에게 선포하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번아웃과 감정적 무기력, 만성적 우울감에 취약하다. 이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며 어둠의 동굴 속으로 스스로 숨어버린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말처럼 자아가 자신에게 말하도록 두는 대신, 그는 자아에게 말하기 시작하라는 것을 기억하라. “더 큰 즐거움으로 죄의 입맛을 끊으라” 죄와 싸우기를 포기한 자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싸우라. 저자는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이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광야 같은 삶의 터전에서, 유혹이 넘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장래의 은혜를 향해 담대히 걸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한다.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매일 영적인 전쟁을 한다. 존 파이퍼는 성도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넘어지는 수많은 감정과 태도의 죄(염려, 교만, 수치심, 조급증, 탐심, 원한, 낙심, 정욕)의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장래의 은혜를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 없음(불신)’이라는 암적인 뿌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죄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죄가 던지는 거짓 약속을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신뢰하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불신’이 다. 이를 이기기 위해 ‘불로 불을 끄는 방식’을 제시한다. 곧, 죄의 거짓 약속을 하나님의 ‘더 크고 영광스러운 참된 약속’으로 제압하고 깨부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위해, 혹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불안에 떨며 싸우는 노예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이미 영원히 ‘의롭다’ 선언된 자로서 확신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다. 

핵심 죄악 8가지의 실체와 처방을 살펴보자.

-염려와 싸우다 (그분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 없음):마 6장에 나타난 주님의 일곱 가지 약속을 성령의 검으로 취하라.  

-교만과 싸우다 (그분의 주권에 대한 믿음 없음): ‘자랑’뿐 아니라 ‘자기연민’ 역시 교만의 또 다른 얼굴이다. 하나님께서 삶의 모든 세세한 호흡까지 주관하심(약 4:15)을 인정하고, 자아를 높이는 대신 ‘하나님을 자랑하는 더 큰 기쁨을 누리라 ’  

– 수치심과 싸우다 (그분의 평가에 대한 믿음 없음):하나님을 욕되게 한 일에 대해 마땅히 느껴야 할 ‘올바른 수치심’도 회개 후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유를 누려야 하며, 세상의 비난이나 거짓된 잣대가 떠안기는 ‘잘못된 수치심’은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조급증과 싸우다 (그분의 타이밍에 대한 믿음 없음): “계획에 없던 순종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며, 계획에 없던 순종의 속도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주권’을 가지셨음을 믿으라.

-탐심과 싸우다 (그분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 없음): 하나님 한 분만으로 자족하지 못해 세상의 물질과 부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현대판 우상숭배이다. 자족하는 경건의 풍성함을 맛보라.

-원한과 싸우다 (그분의 공의에 대한 믿음 없음): 하나님의 완벽한 공의를 믿으라. 우리는 억울함의 집행관 자리를 주님께 넘겨드리고 긍휼과 사랑의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 낙심과 싸우다 (그분의 회복시키심에 대한 믿음 없음): 자아가 속삭이는 어두운 탄식을 듣고만 있지 말고, 내 영혼을 향해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5)  

– 정욕과 싸우다 (참된 만족이신 그분에 대한 믿음 없음): 쾌락은 영원한 하나님의 기쁨과 맞바꾸려는 영적 눈멂을 가져온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충만한 만족으로 정욕에게 승리해야 한다. 

인생은 광야의 여정이다. 매일 메마른 땅에서 ‘어쩌면, 만약에, 혹시나’ 하는 염려에 노출되기 쉽다. 긴장과 불안이 늘 뒤따른다. 우리처럼 저자도 유학 시절 낯선 곳에서 수없이 사 41; 10을 되뇌었었다고 고백한다. 고립과 상처 앞에서 “자기연민을 버리고 공의로운 주님을 바라보라”고 권한다. 이민자들은 쉽게 ‘자기연민’과 ‘해묵은 원한’이라는 골짜기에 갇히기 쉽다. 억울함은 영혼을 갉아먹는 독이다. 하나님이 가장 완벽하고 공의로 결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때로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  “내 인생만 멀리 돌아가고 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인내란 불평이나 환멸에 빠지지 않고 ‘기다리며 견디는 능력’이다. 시계가 멈춘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은 가장 정확하게 일하고 계신다. 

초연결 사회, 무한 비교의 알고리즘, 물질만능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탁류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먼저 “타인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옮겨가야 한다.  “내 감정을 듣지 말고, 내 영혼에게 선포하라”고 강조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번아웃과 감정적 무기력, 만성적 우울감에 취약하다. 이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며 어둠의 동굴 속으로 스스로 숨어버린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말처럼 자아가 자신에게 말하도록 두는 대신, 그는 자아에게 말하기 시작하라는 것을 기억하라. “더 큰 즐거움으로 죄의 입맛을 끊으라” 죄와 싸우기를 포기한 자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싸우라. 저자는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이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광야 같은 삶의 터전에서, 유혹이 넘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장래의 은혜를 향해 담대히 걸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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