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음
데인 오틀런드(Dane Ortlund)의 『예수님의 마음』은 전작인 ‘온유하고 겸손하니’를 간결하게 집약한 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과 고난받는 자들을 향해 어떤 감정과 태도를 지니고 계시는가?”를 심도 있게 규명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마음’을 직접 규정하신 본문은 마11:29 단 한 곳 뿐이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엄격하고 까다롭다’거나 ‘초월적 위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묘사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선언하셨다. 온유함은 비난의 손가락질을 거두고 양팔을 활짝 벌려 포옹하는 태도야말로 그분의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본능이다. 겸손함은 지극히 높은 영광과 거룩함을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죄인도 아무런 장벽 없이 나아올 수 있도록 철저히 자기를 낮추신 상태를 의미한다.
그분은 이를 행동으로 입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고난받는 자들과 도덕적 파탄자들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동정심의 연속이었다. 주께서 ‘불쌍히 여기셨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인간의 창자(내장)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연민을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나병환자의 환부에 주저 없이 손을 얹으셨고, 중풍 병자가 청하기도 전에 죄 사함의 은혜를 먼저 선언하셨으며, 타인의 슬픔과 눈물 앞에서 비통해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동정심이 육신을 입고 이 땅을 거닌다면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토마스 굿윈) 이었다.
성도들은 반복되는 연약함과 실패 앞에서 새로운 용서를 구할 때, 주님을 번거롭게 하거나 지치게 만들 것이라는 염려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너머에 있던 ‘그 앞의 기쁨’을 바라보시며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다. 그 기쁨은 바로 ‘자기 백성이 죄 사함의 은혜와 전인적 회복을 누리는 장면을 목도하는 기쁨’이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성도의 연약함을 ‘함께 아파(동정)’하신다. 또 주님은 항상 살아 계셔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결코 내쫓지 아니하시는 불가항력적 포옹으로 죄인을 받아주신다.“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결단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성도의 안전을 영원히 담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전능한 손길이다.
세상은 언제나 “당신은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 논리가 교회 공동체와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무비판적으로 이식될 때 영적 왜곡이 발생한다. 하지만 주님과의 교제에 요구되는 것은 화려한 신앙의 이력서가 아니라, 지치고 상한 심령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그 자체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결핍, 그리고 번아웃된 실상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태도야말로 참된 안식과 은혜의 출발점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기록한다. 주님께서는 주류 종교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아웃사이더들과 식탁을 마주하시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으셨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가장 신뢰하던 제자들에게 배반당하고 모욕과 수치를 온몸으로 겪으셨기에, 우리의 어려움을 그 누구보다 명확하게 체휼하신다. 실패와 자책의 늪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긍휼’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역사는 흠 없는 자들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인생에서 저지른 가장 뼈아픈 실수와 오점, 파괴된 과거의 흔적까지도 은혜의 도가니 속에서 녹여내어 가장 찬란한 회복의 재료로 사용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이미 낭비해 버린 세월과 은혜를 이유로 주저앉아 숨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낭비한 은혜보다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홍수 같은 긍휼을 준비해 두고 계신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강조하였듯, 부모가 자녀에게 전수해야 할 가장 위대하고 항구적인 유산은 신앙이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가정을 떠나고 세상의 모진 비바람에 직면하여 쓰러질 때, 그들을 궁극적으로 붙들어 주는 힘은 “내가 인생의 밑바닥에 처할지라도 결코 나를 거절하지 않으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복음적 기억이다. 따라서 가정과 교회는 다음 세대를 향해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과 따뜻한 품을 투영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데인 오틀런드가 강조하듯, 본서가 요구하는 궁극적인 반응은 복잡한 영적 행동 강령이 아니다. 무거운 종교적 자기 증명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의 심장 박동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비록 거친 세파 속에서 성도가 주님을 붙드는 손길은 너무나 연약하여 매 순간 흔들릴지라도, 성도를 붙들고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못 박힌 손은 결코 그 악력을 늦추지 않으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현세는 그들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것일 뿐이며, 장차 올 영원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가 지극히 풍성하게 계시될 본향이다. 그러므로 안심하고, 오늘 있는 모습 그대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품으로 나아가 안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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