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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인생의 타이밍 (출2:11-15)_토론토 새순교회 송한섭 목사

인생의 타이밍 (출2:11-15)

토론토 새순교회 송한섭 목사

출애굽기 2장의 주제는 타이밍입니다. Timing is everything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이밍을 맞추는 것입니다. 타이밍이란 시간을 조절하고 때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은 할 때 하고 안 할 때 안하는 것을 말합니다. 웃을 때 웃고, 울 때는 울 수 있어야하고,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잘 때 자야 합니다. 

우리가 요리를 해도 때를 잘 맞춰야 됩니다. 저는 라면을 잘 끓입니다. 라면도 물이 팔팔 끓을 때 면을 넣어야 되고, 조금 지나면 스프를 넣어야 되고 계란도 통째로 넣지 말고 풀어서 먹기 직전에 넣어야 맛있게 됩니다. 고기를 구워도 적당한 때 구워야지 너무 빨리 꺼내도 안 되고 너무 두어도 타서 못 먹게 됩니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이 타이밍을 잘 맞춰서, 불조절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병들어 약을 먹을 때도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약 먹을 시간에 맞추어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에도 때를 잘 맞추어서 말을 해야 합니다. 장례식에 가서 “잘 지내시나요?” “사업은 어떤가요?” 이런 말을 한다면, 가족들에게 불편함을 주게 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설교 본문도 때와 정황에 맞게 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평생을 부요하며 믿음으로 살던 장로님의 장례식장에 가서, 성경본문을 누가복음 16장 22절에 “거지는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부자는 지옥에 갔다”라고 설교를 한다면, 상황과 때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11절 말씀에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은쟁반에 금사과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경우에 합당한 말이 이렇게 중요하고 좋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돈 버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이 땅을 살 때인가? 아니면 팔을 때인가? 지금이 투자를 할 때인가? 투자한 것을 거두어야 할 때인가? 한 박자 먼저 하거나, 한 박자 늦게 하면 남들 다 벌 때에 자기는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그렇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정확한 타이밍에 움직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셔도 때를 맞추어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도 우연히 오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매” 오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하나 행하셔도 아무 때나 행하신 것이 아니라 때가 되었을 때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위대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때가 되었을 때 행하신 것입니다.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때에 행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이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나이다.” 라고 했을 때만 해도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하시면서,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고, 그 때에만 일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6절을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인기스타’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하나요? “그렇게 능력이 많으시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고, 인기를 끌어봐요”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혹시 가족 중에 믿음이 없는 분이 계시나요?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의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30절에도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철저하게 ‘때’를 기다리시며, ‘때’를 거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때를 잘 분별하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적극적으로 기도할 때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행동해야 하는지, 순종해야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그 때에 맞게 살기를 축원합니다.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인생에서, 타이밍이 기가막히게 맞는 부분과 타이밍이 전혀 안 맞는 부분이 나옵니다. 1~10절까지는 타이밍이 너무 잘 맞았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낳고 보니까 인물이 얼마나 준수하고 아름다운지 ‘유대인은 아들을 낳거든 하수에 던져 버리라’고 하는 바로왕의 명령을 알면서도 그 아들을 붙들고 품에 안고 3개월 동안 젖을 먹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얼마나 건강한지 3개월이 되니까 울음소리도 우렁차고 도저히 숨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대상자를 만들어서, 역청을 칠하고 물이 새지 않도록 해서 나일강, 갈대숲에 두었죠. 

“하나님이시여 이 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죽지 않고 살아나게 하여 주소서” 기도를 하면서 나일

강으로 떠내려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 타이밍에 누가 등장하나요? 그 때에 바로의 공주가 대낮에 목욕을 하러 나일강에 나왔던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갈대상자를 보고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하고서는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그 갈대 상자를 잡고 거기에 있는 모세를 건져내었습니다. 

“모세”의 뜻이 ‘건저내어졌다’는 뜻입니다.  

마침 그 때에 모세의 누이가 그것을 보고 있다가 공주에게 “공주님, 공주님 이 아이가 먹고 살려면 젖을 먹여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히브리 여인 중에 젖먹일 수 있는 유모를 소개해 드릴까요?” 그러니까 바로의 공주가 허락해서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자기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의 젖으로 모세를 키우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타이밍이 딱딱 잘 맞습니까? 만약에 요게벳이 다른 날에 모세를 나일강에 두었다면, 모세는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확한 그 날, 그 시에, 하나님은 요게벳에게 마음을 주셨고, 공주도 그날 목욕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고, 그래서 모세가 건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타이밍을 잘 분별하며 살 때, 복된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믿는 자에게 복된 인생은, 어떤 부분에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가장 복된 자입니다. 

1. 때를 못 맞춘 모세

그런데 11절부터 15절은, 모세가 타이밍을 잘 못 맞췄음을 보여줍니다. 10절로부터 11절 사이에,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고 최고의 교육을 받으면서 나이 40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세를 바라보고 존경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가정을 통해, 히브리민족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웠숩니다. 그래서 그는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습니다. ‘나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히브리 사람이다’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머나 먼 캐나다에 살아도, 우리의 정체성은 한국인입니다. 대한민국이 우리 조상의 나라이이고,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성도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모세 또한 자신이 어느 민족 사람이고, 자신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나이 40쯤 되니까 동족이 고통 받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 것이죠. 

‘내가 어떻게 해야 내 동족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가보니까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때리고 있었고, 모세가 그것을 보고 있다가 히브리 사람이 없어졌을 때에 좌우를 살피고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모래를 파묻어서 그의 시체를 묻어버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처리했습니다. 이런 범죄를 가리켜서 형법용어로 ‘완전범죄’라고 합니다. 모세가 살인을 아무도 모르게 저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또 나가서 보니까, 이번에는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습니다다. 동족끼리 싸우고 있는 것을 본 모세는 그들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면서 잘못된 쪽을 향해서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사람이 뭐라고 하였나요? 14절에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그러자 모세가 “일이 탄로되었도다.” 하며 두려워 하였습니다. 모세는 좋은 애국심과 의협심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다는 생각에,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파묻은 것인데, 자기 동족들이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고 ‘언제 너를 우리의 법관을 삼았느냐’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게다가 바로 왕이 그 소식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공개수배를 내렸습니다. 결국 모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도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얼마나 의협심이 강했습니까? 자기 동족을 괴롭힌다고 애굽사람을 쳐 죽이고 파묻었습니다. 그러고 나가서 또 동족들끼리 싸워도 좋은 편을 들고 나쁜 편을 꾸짖는 의협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협심도 좋고 인품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아직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의 이런 의협심, 의로운 분노, 행동하는 결단은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안중근 의사를 아시죠? 그는 민족을 사랑하였고, 의로운 분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락 폭탄을 이토히로부미에게 던졌던 것입니다. 아무나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도 안중근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그런데,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아직 아니었던 것이죠. 

모세는 나름 괜찮은 생각을 하고 행동했지만, 타이밍을 잘 못 맞춰서 나쁜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 타이밍을 잘, 못 맞춘 예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이 자식을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기다려도 아무것도 생기지 않으니까 드디어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자식 하나를 낳아버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이 이스마엘이 나중에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희롱하고 대대로 원수가 되어서 지금까지도 싸우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때를 잘못 맞춰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 번제를 드린 일이 어찌 나쁜 일인가요? 예배 드린 것이 나쁜가요?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올 때를 기다리지 못하였고, 자기가 번제를 드리다가, 망하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때를 못 맞추었습니다. 의협심을 가진 베드로, 그느 필요할 때는 오히려 도망가더니,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는 말고의 귀를, 칼로 자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그 귀를 다시 붙여 주시고 “검을 가

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열두 영이나 되는 천사를 오게 하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직 이렇게 할 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환경이 답답하고, 뭔가 막히는 것 같을 때, 주로 우리는 성급하게 결단하거나, 행동하게 됩니다. 그럴 때, 겸손히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가지 않고, 실수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2. 때를 못 맞춘 모세의 징표

모세는 그 애굽인을 쳐 죽이면서 어떻게 했습니까? 좌우를 살폈습니다. 12절에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좌우를 살폈다는 것은 뭔가 마음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은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모세는 좌우를 살폈고, 자신의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숨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일까요? 이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가만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기보다는 충동에 의해, 자기의 의분으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잠깐이라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어봤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하는 것들은 결국 후회하게 되는 결과를 만듭니다. 결혼도 그렇고,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것들도 그렇습니다. 급하게 충동적으로 하면 문제가 됩니다. 

이런 결과로, 결국 모세는 자신의 동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였고, 결국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고, 도와주는 자가 아니라, 살인자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잘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타이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데, 우리는 쉬고 있으면 안 되겠죠. 하나님은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앞서서 뭔가 하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때를 잘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때를 잘못 맞춰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인생은 끝난 것인가요? 모세의 인생은 망한 것입니까? 동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바로 왕은 죽이려 하고, 히브리인이지만 히브리인에게 갈 수도 없고, 애굽인에게도 갈 수 없는, 모세. 그러나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볼 때, 모세의 인생은 이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사방이 다 막혀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부터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3. 기회를 또 주시는 하나님

모세의 생애는 끝난 것 같지만 끝났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손 씻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 큰 훈련의 기회를 허락하시고, 미디안 광야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에게 최고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애굽의 왕자가 아닌, 평범하고, 겸손한 모세로 변화되었습니다. 아주 절망하고 위축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모세 안에는 아직, 의로움이 있었습니다. 

도망을 가다가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도망가다 도착한 우물가에,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이 아버지의 양을 끌고 왔던 것입니다. 우물에서 물을 떠서 구유에 담고 구유에 담은 물을 양에게 먹이려고 하니까, 남자 목자들이 나중에 와서는 “어 거기 여자들 비키시오! 우리가 양을 먹인 다음에 먹이시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런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사람입니까? 이런 공정치 못한 일은 두고 보지 못하는 모세 아닙니까. 

모세가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도와서 양무리에게 물을 먹입니다. 이 소식을 미디안 제사장인 르우엘이 듣고, 모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살게 됩니다. 르우엘이 모세와 함께 살면서 가만히 보니까 모세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교육을 받았으니, 예의가 바르고, 성품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 십보라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십보라에게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아들은 게르솜 이라 했는데, 그 이름의 뜻은 ‘잠시 거하는 객’이라는 뜻입니다. 나그네라는 말이죠.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를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모세는 망한 줄 알았는데 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시작된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 동안 왕궁에 살면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인생의 출발이지 완성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이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죽을 고생을 다하고, 여러 가지 훈련을 받고 나이 80이 되니까 그제야 하나님은 “모세야 이제는 네가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만하니라”하고 출애굽을 맡기시게 된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훈련시키시고, 다듬으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잘 모르시나요? 아니면 때를 놓친 것 같으신가요? 그때 이렇게 할 걸, 하면서 후회하고 계십니까? 잘못된 결정을 하지는 않았나요?

염려하지 마세요. 과거에 메여 있지 마세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실수를 한 모세를 훈련시키고 다시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그분의 때에 그분이 이루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도망가려 합니다. 대박을 꿈꾸며 강원랜드로 갔다가 전 재산을 다 날린 어떤 사람이 돈이 떨어지니까 장기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고 아직 덜 아물어서 고름이 나는 몸을 가지고 또 그곳에 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어렵다고 해서 도피하듯이 죄와 악을 향해서 가면, 재앙을 만나게 될 때 엎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길을 따라가겠다.” 라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의의 길을 꾸준히 가게 되면, 일곱 번 넘어져도 주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을 만날 때 주께서 다시 미디안 광야를 예비하시고, 더 큰 기회를 주시고, 더 큰 축복으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단지, 바로의 공주의 아들에서 끝났으면, 모세를 배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받고 변화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떤가요? 답답하신가요? 지치십니까? 광야를 걷고 계십니까? 그럴 때, 우리는 오히려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기도하며,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지금은 미디안 광야와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주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그 일에 우리 모두 동참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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