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랑속에서 배우는 교훈 / 눅8 :22-27
나나이모한인장로교회 김경대 목사
살아가다보면 원치도 않는 큰 바람이 와서 우리의 일상을 뒤집어 놓고 힘이들게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은 적쟎게 당황해서 어찌할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현실 앞에서는 오직 문제에 휩싸여 있지만, 지나고 나면 그런 풍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가려다가, 호수 가운데서 돌풍을 만나서 제자들이 불어오는 돌풍 때문에 혼이 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래서 안돼겠다!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님, 주님 일어나보세요! 폭풍이 부는데 어떻게 좀 해보세요!’ 그러자 주님께서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명령하신 바다가 잠잠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면 몇가지로 말씀 드릴수 있습니다.
첫째는, 풍랑을 만나면 고통스럽지만, 풍랑에도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제자들이 풍랑이는 바다속에서 알게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가? 그냥 선생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이심 뿐만 아니라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 이심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매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여기는 좀 괜챦은데 한국은 아주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태풍이 몰고오면 농작물이나 많은 피해를 입히지만, 태풍이 가져오는 유익을 돈으로 환산하면 천문학적인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니, 태풍이 불 때 바다가 뒤집어 질 때, 바다를 정화하고 바다가 죽지않고 다시 회복되는데 그 가치는 이루 말로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이런 풍랑이 올 때도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모든 사람은 풍랑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기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알수 없었지만, 어떤 어려움을 겪고나면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2주전 화요일 수요일 광역 밴쿠버에 돌풍으로 여러곳에 전기가 나가고 나무가 부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타운에도 전기가 나갔습니다. 좀처럼 그런일이 없는데 이번 바람이 유난히 센바람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어떠셨습니까?
저도 지난 몇일동안 노회를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전기가 나가서, 밥도 가스버너에서 해 먹고 정말 샤워도 안돼서 씻지도 못하고, 좀 실내도 온도가 내려가서 참 불편함을 경험했습니다. , 정말 ‘있을 때 잘해!’ 이말이 절실히 생각이 났습니다. 정말, 일상의 평범이 이렇게 감사한지 깊이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목사님이 지금 대도시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고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평안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해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평안을 깨는 일은 안한다고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그교회가 오랫동안 교회가 둘로 나눠져서 분쟁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속되게 코피 터지게 싸우고 나서 얻은 결론은, 다른 어떤 것보다 평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풍을 통해서만 알수 있는 교훈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인생에 풍랑이 오면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풍랑을 지날 때 참으로 나자신을 바로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23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본문에 ‘죽겠나이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 불과 얼마전까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고 병자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폭풍을 만나니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대한 믿음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태풍의 위협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 드라마 최민수가 모래시계에서 했던 유명한 대사 ‘나 떨고 있니?’ 라고 했던 것처럼 제자들이 떨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의 신앙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상시에는 어떻습니까? 다들 좀 오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믿음이 좀 좋은 것 같고, 그래도 내 인격이 ‘제보다는 좀 나아보이고’ 그리고 내가 돈도 잘버니 실력이 있어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 깨집니까? 바로, 인생의 풍랑을 만날때,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때 다깨진다는 것입니다.
저가 이번 돌풍, 바람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달나라에 우주선을 쏘아올린다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작은 돌풍하나에도 모든 것이 마비가 되는 것을 보면서 아! 아직도 멀었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의 위대한 힘에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풍랑을 만나니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물을 퍼내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잘안됍니다. 그제서야 어떻게 합니까? 잠자고 계신 주님을 깨웁니다. 왜입니까? 내힘 내능력으로 해도 안돼거든요.
그때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야 잠잠하라!’ 잠재우셨습니다. 여러분, 이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인생의 주도권이, 이 세상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인생의 어려움에서 진짜 우리를 살리고 죽게 하는 문제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우리의 노력입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혼란속에 문제를 잠재우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힘들고 어려울때일수록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둬야하나? 오직 예수님께 둬야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나면, 우리의 신앙의 태도도 많이 바뀝니다. 어떤 때보다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더 주님께 절실히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고, 더 깊어지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인생의 풍랑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유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셋째, 풍랑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풍랑이 고통스럽고 힘이 들지만, 그러나 그 풍랑에도 하나님에 알지 못하는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이건 개인의 인생의 문제, 고통, 풍랑만 아닙니다. 때로는 공동체에서도 이 풍랑이 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풍랑을 만날때 그 순간은 힘이 들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숨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성령임재를 경험하고 놀라운 은혜로 교회가 부흥성장하게 됩니다. 서로가 자기것을 자기것이라하지 않고 나누어 주고, 함께 모이기를 힘씁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광풍이 몰아칩니다. 스데반 집사가 말씀을 전하다 순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됍니다. 그리고 그결과, 제자들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든 것이 끝이났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 순간만을 보면 교회가 끝이난 것 같아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고,,,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안디옥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안디옥을 통해서 전세계로 복음이 전해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게 하리라’ 그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모두가 끝이났다고 하는 시점에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일을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아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도 저렇게 되도 결국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결국은 선한 것으로 귀결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환난중에도 우리가 잊지말아야할 것은, 하나님은 이 풍랑속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됀다는 것이다. 풍랑중에도 우리와 함께 그 배에 타고 계신 주님을 기억해야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저버리지 않고 순종하며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끝으로,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26-27절입니다.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니라
바로, 아무리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 풍랑 가운데 있을지라도, 가정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 한영혼 한영혼을 귀하게 생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통 ‘풍랑이라는 엄청난 놀라운 사건’때문에 사람들이 압도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오직 풍랑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우리가 조금만 그 풍랑에서 눈을 떼서 본문을 읽으면, 이 풍랑이는 사건을 통해서 주님이 주시는 또 다른 메세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게 뭔가? 바로 한영혼 사랑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피곤한 중에도 제자들을 데리고 왜 풍랑이는 바다를 지나려고 했을까요? 그리고 제자들을 그 풍랑속에서 고생을 시켜가면서도 그 갈릴리 호수를 지나려고 했을까요? 오늘 본문 뒤에 어떤 사건이 있습니까? 바로, 건너편 거라사 지방에 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는 사건이 있습니다. 심하게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님이 고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폭풍을 뚫고서 수고하며 애쓰서 그 거라사에 힘들게 수고하고 가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겨우 한사람 치유하신 사건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말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은 그 거라사의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곳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한 영혼의 생명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우리 가운데도 남들 모르게 힘든 가운데 기도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로, 영주권의 문제로, 재정의 문제로, 또 어떤 분들은 건강의 문제, 신앙적인 문제로 기도하는 분이 있을것입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요! 오늘 본문에 거라사 귀신들린 한사람에 어려움을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처럼, 지금도 주님을 찾는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실 때 이 믿음으로 기도하시고 우리에게 찾아와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