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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방주의 은혜 (창 6:13-22절)_위니펙 임마누엘 교회 최석원 목사 

방주의 은혜 (창 6:13-22절 )

위니펙 임마누엘 교회 최석원 목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인간을 지으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들을 기뻐하 시는 진실한 하나님의 마음이 성경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빗나가 자기가 자기의 삶의 주인이 된 삶 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의 인간은 마음에는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고 자 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 후 인간에게 남은 자유의지는 타락한 인간의 자 유의지는 불순종과 본성을 따라 악을 행하는 자유의지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께서 보시 기에 좋았던 세상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기에는 세상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고, 점점 살기가 편리해졌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만회할 수 없는 심판의 때가 도래하고 있 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결정은 ‘하나님의 영을 거두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곁에 계셔서 선한 양심을 주시고, 감화 감동을 통하여 죄에서 돌이켜 회개케 하시고, 우리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죄악에서 돌이킬 수 있고,  죄를 깨달을 수 있는 모든 것은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매를 맞고 징계 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성령의 찔림을 받는다면 회개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 그 사람을 심판하시려고 하신다면 성령의 임재를 거두십니다. 더 이상 감화 감동이 없고,  징계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진짜 무서운 것은 성령의 임재를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판 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없이는 은혜 안에 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죄를 짓고 간구했던 기 도는 “주여 내게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죄악에 넘어질 수는 있지만,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돌이 켜야 합니다. 거듭나고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돌이키십니다. 심판 가운데서 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죄악에 빠져 살아가는 그 때에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기록된 것은 오직 성령의 은혜를 입어 주님을 경외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고 경건함을 지킬 수 있게 되었던 것 입니다.

오직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구원입니다. 모두 죄악의 길을 걸어가는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루터기와 같이 남겨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은혜를 입은 자가 바로 노아였던 것입 니다. 사람이 똑똑하거나 자기 절제력이 뛰어나서 죄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 어야 죄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어야 주님을 찾는 것이죠. 노아가 특별해서도, 믿음이 좋 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노아가 받은 첫번째 은혜는 “방주를 만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14절) 

본문 14절을 보시면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 을 그 안팎에 칠하라”는 말씀, 곧 세상을 심판하실 계획 가운데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듣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방주는 영적으로 교회 또는 예수님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영접 한 사람들, 곧 성령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의 심령이 교회이고, 그런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말씀을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심령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라는 것과 이 땅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교 회 공동체를 만들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을 보시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 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21절은 교회의 머릿돌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서로 연결하여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가는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며, 22절은 우리 심령에 하나님이 거하실 처서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것은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거룩한 처소를 만들라는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자기 심령에 하나님의 임재의 처 소를 만드는 사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사람들이 방주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 는 것입니다. 이유는 ‘너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담겨 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시집가고 장 가들며, 먹고 마시는 가운데, 평안하다고 하는 그 때에 주님이 홀연히 임하시기에, 늘 깨어 있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연결해서 본다면, 날마다 깨어서 주님이 거하시는 처소를 만드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인 것이죠. 

노아와 같이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방주를 예비하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아가 입은 두번째 은혜는 주님의 말씀대로 준행한 은혜였습니다.(15,16,22절) 

본문 15,16절과 22절의 말씀을 보시면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과 더불어 방주의 사이즈를 아주 상세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만 일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에 자기 생각대로 방주를 만들었다면, 대 홍수에도 침몰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주는 하나님께서 설계해주신대로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15절을 보시면 “길이는 300규빗, 너비는 50규빗, 높이는 30규빗으로 지으라”고 했습니다. 비율을 따지면, 10대 1.6대 1의 비율입니다. 오늘날 노아의 방주의 설계도를 보고 가장 놀라는 사람들은 선박 공학자들입니다. 이 방주의 비율이 오늘날 가장 안전한 선박 비율과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우리를 괴롭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 니다. 우리를 위하여 말씀대로 온전히 준행하는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 상에 침몰하지 않고 세상에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방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 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 고 있는 생각과 성격과 세상 스타일로 교회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교회를 거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 다.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증명됩니까? 서로 사랑할 때 입니다. 사랑하라는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를 위해서 주 신 계명’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삽니다. 그런데 내 가 미워하면 모든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서로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요한일서 4장 7-8절을 보시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 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3장 15절에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젊었을 때에 교회를 개척하고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일으키는 집사님 한 분이 있어서 목회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끝장을 봐야 하겠구나’라는 생각하고 밤새 철야하면서 “하나님 그 사람을 내보내시던지, 나를 내보내시던지, 둘 중에 하나 를 택하세요.”라고 했답니다. 도저히 그분과는 함께 있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밤새 씨름하며 기도하는데, 새벽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네가 문제다.” 너무 놀라서, “주님 용서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더니, “나는 너를 붙들고 교회를 세워가는 거지, 그 집사를 붙들고 세워가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 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과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으로 내가 변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타인의 변화가 아니라, 나의 변화라는 것입니다. 노아에게 보여준 설계도대로 정확하게 방주를 지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실 처 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면의 성전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부분적 순종이 아 니라 온전한 순종을 통하여 내면에 주님의 임재로 가득 채워서 이 시대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명 품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방주의 특징은 동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를 만들거나 돛을 만들라는 명령 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방주의 방향을 돌리는 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배를 만드는데 그냥 물 위에 떠있는 배를 만들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선장이 되어서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방주 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는 방주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구원의 방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방주 안에서 있는 삶과 같습니다. 방주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에 평안이 생기고, 근심과 걱정이 내려놓아집니다.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께 주권을 맡 기고 나아가면 우리 주님은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노아가 입은 세번째 은혜는 언약하시고 방주에 들어가게 하시는 은혜였습니다.(18-20절) 

본문 18절을 보시면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 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 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지만,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자 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절에는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중요 한 것은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라는 말입니다. 동물들도 우연히 방주에 탑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아오게 하는 동물들만 방주에 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으로 우리 안에 성 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신 것입니다. 방주의 문은 열려 있으나 하나님의 언약 이 없는 자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는 자들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의 때를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7-39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 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 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방주의 문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 홍수가 나기 전까지 계속 열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육신의 것들만 채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도둑같이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방주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안으로 들어 가는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이 있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 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죄값을 지불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구 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 청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나 이 구원의 초청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입은 자들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만 듭니까? 왜 이런 일을 합니까? 이렇게 묻지 않았겠습니까? 120년 동안 산에서 방주를 짓고 있었 으니, 당시 노아는 유명한 미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노아는 자신에게 묻는 이들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방주 안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고, 노아를 조롱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주를 눈 앞에 보고도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그 방주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히 심판이 온다는 것만 아는 지식적 믿음 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7장 4절에는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 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칠 일 후면 심판이 임한다는 말 씀을 듣고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욕심을 미련없이 내려 놓고 순종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은혜였던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그토록 원하던 영생을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아갔지만, 자신이 가진 재물을 내려놓지 못함으로 영생이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말씀을 아는 지식적인 믿음으로는 방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나의 생각 이든, 지식이든, 이성이든, 소유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순종의 믿음이 있어야 방주 안에 들어 가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주를 지으라”는 주님의 말씀이 들렸다면 우리는 너무 쉽게 방주를 만들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을 합니다. “칠 일 후면 땅에 비를 내려 모든 생명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라”는 말씀을 들 었다면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주를 짓는 일에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인내하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는 나의 욕심을 내려 놓아야만이 가능한 일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내려놓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 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려놓는 인내의 믿음을 가질 때 에 더 깊은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경제적 어려움과 세상 염려가 더욱 심해지는 이 때에,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땅의 일만 생 각하는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방주를 만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노아와 같이 인내로 심령 에 성령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며 살 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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