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에 쓰신 글씨_요한복음 8:1-11
심포니교회 차정호 목사
간음하다 붙들려 온 여인이 있었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하려고 합니다. ”율법에는 간음한 자를 돌로 쳐 죽게 하라”고 나와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데, 예수님께서는 땅에 무언가를 쓰셨어요. 무엇이라고 쓰셨을까요?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무엇인가를 땅에 쓰셨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떠나갔죠.
앞서 일어난 표적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아주 간교해요. 그동안에 예수님께서 나타내주신 표적들을 봤어요. 그 표적들은 어떤 의미가 있었죠? 기적과 표적이 어떻게 다르죠?
기적은 그냥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러나 표적은 기적과 같이 놀라운 일이지만 그 의미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죠.
요한복음에서 나타난 표적은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나타내죠? 매번의 표적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이 나타나는 표적들이었어요.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겠어요? 누가 38년이나 된 병자를 그 자리에서 낫게 해줄 수 있겠어요? 누가 오병이어로 약 이만여명을 먹일 수 있겠어요? 누가 물 위로 걸을 수 있겠어요? 누가 날 때부터 앞 못 보는 자를 고쳐줄 수 있겠어요? 하나님밖에 없으시죠.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에요!
시험받으시는 예수님
간음하다 그 현장에서 붙잡아서 데리고 왔어요. 간음한 여인을 세워놓고 시험하는 거죠. 율법에는 간음하다 잡힌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고 돼 있는 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예수님께 시험이 되는 거죠?
만약에 예수님께서 돌로 치라고 할 경우, 자신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라는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비난받게 되지요. 게다가 당시에 이렇게 형을 집행하는 것은 로마 제국 총독의 허락이 있어야 했기에, 로마 제국 법률 위반자로 고소당할 위험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만약에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되시지요. 이런 난감한 상황에 놓여 계셨어요. 그런데, 대답 대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어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어요. 성경에는 무엇인가를 쓰셨다고 되어 있지, 무엇을 쓰셨는지 그 내용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이 다그치며 예수님께 물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어요.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떠나가고, 예수님만 남아 계셨어요. 죄 없으신 예수님과 그 여자가 그대로 서 있었어요.
땅에 쓰신 글씨
무엇을 쓰셨을까요? 어떤 고대 사본에는 모인 사람들의 죄목을 쓰셨다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여기에는 문맥상 해석의 어려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여기에 예수님께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을 때, 그들의 죄목을 쓰셨으면 그들이 다그쳐 묻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9절을 보시면, 떠나간 사람들이 땅에 쓰인 글을 보고 도망 갔다고 했나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도망 갔다고 했나요? 예수님께서 쓰신 글씨를 보고 도망간 게 아니었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도망간 거예요. 어떤 말씀이었죠?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에게 돌을 던져라. 그런데 나이 많은 이들이 먼저 시작하여 떠나갔어요.
그렇다면 무엇이라고 쓰셨길래 그들이 떠나갔느냐는 질문보다, 그들이 떠나간 것은 주님께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라는 말씀을 듣고서 떠나갔단 말이에요. 땅에 쓰신 글의 내용이 중요했다면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겠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손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다는 장면은 왜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럼,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요한복음 첫 장에서부터
요한복음은 1장에서부터 요한복음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있으세요. 요한복음 1장 1절에 뭐라고 쓰여 있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14절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그래서 그 말씀이 누구시죠? 예수님이시죠. 그 예수님이 누구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요한복음은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장까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기록된 책이에요.
오병이어와 바다 위의 예수님
요한복음 6장에도 보시면, 오병이어의 기적 때에 그 표적 사건 가운데 주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셨어요. 오병이어의 표적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그랬죠? 구약 때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지요. 광야에서 굶어 죽을 수도 있지만 만나를 내려 주셔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내려주셔서 날마다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는 그 만나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영혼의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어요. 나를 먹으면 영원히 살리라. 만나를 내려주신 의미가 무엇이죠?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 되심을 나타내 주시기 위해서 그런 표적을 나타내 주셨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오병이어의 표적이 나타나고, 이에 관한 설명이 있는 말씀 사이에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시는 표적을 나타내셨어요. 이것은 왜 다른 표적도 나타낼 수 있으시지만, 왜 바다 위를 걸으시는 표적을 나타내 주셨을까요? 바다 위를 걸으신 분은 사람일 수가 없죠. 바다를 완전히 주관하시는 분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홍해를 가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바다를 주관하고 다스리는 자가 바로 나다. 구약에 너희를 택하여 내 백성을 구한 자가 바로 나다. 내가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나타내 주신 거예요.
손수 쓰신 글씨
그러면 오늘 본문인 8장에 예수님께서 땅에 손으로 글을 쓰신 것도 마찬가지예요. 구약 신명기 9장 10절에 보시면, “그 때에 주 하나님이 돌판을 나에게 주셨는데, 그 돌판에 글은 하나님이 손수 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글씨를 써 주셨는데, 손수 돌판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써 주신 거예요. 땅을 돌판 삼으신 거예요. 지구를 돌판 삼아서 무언가를 쓰신 거예요. 그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구약 때 십계명을 손수 써 주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누구시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는 장면이에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낼 수 있는 표적이 되는 거죠.
예수님은 하나님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시면 계속 이런 게 나와 있죠. 왜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걸까요?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게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요?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기는커녕 도로 죽이려고 해요.
왜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사실은 왜 그렇게 중요하죠? 사람은 구원자일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죄인의 몸에서 난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태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모두 죄의 상태에서 태어나는 거예요.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 곧 죄의 상태, 그러니까 사람 중에 누가 구원자가 될 수 있겠어요? 모두 다 사형수라서 대신 죽어봤자 원래 죽게 되어 있어서 죽는 것뿐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를 대신해서 죽고 다른 사람을 구원해낼 수 있는 구원자의 자격이 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죄와 상관없는 자로, 죄인들의 죄를 덮어쓰시고 제물로서 그 죗값을 갚아주시는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시는 거죠. 그래서 요한복음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면 정말 나의 구원자가 맞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하나님을 죽이려는 죄인
그런데 유대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믿어야지, 왜 도리어 죽이려고 해요? 하나님이신데 죽이려고 해요. 왜 그러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여러 표적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눈으로 봤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지내신 것을 보았으며, 그들의 기대에 메시아는 저렇게 오지 않을 것 같고 구약 다윗보다 더 훌륭하고 찬란하게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실 뿐 아니라 세계를 평정하실 왕을 기대했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나타내 주실 때 그들은 이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왔던 메시아구나라고 착각하고 따르려 했던 것이었죠. 그들의 배를 채워줄,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메시아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들을 거슬리게 했어요. 왜 그들이 거슬려 했죠? 요한복음 7장 7절에 나와 있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목적이 뭐예요?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추고 피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자기 죄를 드러내는 저 거슬리는 자를 죽이려는 거예요. 자기 죄가 해결돼야지 그걸 죽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의사가, “환자분, ‘암’입니다.”라고 할 때, 그 의사를 죽이면 암이 없어지나요?
암이 문제인데, 암이라고 진단한 사람을 죽인다고 암이 해결되나요? 얼마나 무지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사망에 속한 자, 죄에 사로잡힌 자들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가 있죠.
나는 누구에 해당하는가?
자, 여기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이 있는데, 사람들이 돌로 치려고 모여서 돌을 하나씩 들고 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군중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을 때, 저런 여자가 다 있다니 하며 돌로 칠 수 있으신가요?
이 장면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어떤 입장이세요? 돌을 못 던지고 떠나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뭘까요? 이 간음한 여인과 우리가 같은 입장이라는 거죠. 왜 그렇죠?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신랑, 거룩한 신랑, 완벽한 신랑이신데, 우리는 그분의 신부인데 우리가 간음을 하는 거예요. 간음이라는 게 뭐예요? 탐심이지요. 본래의 신랑을 놔두고 나 좋은 대로 다른 사람을 취하는 거예요. 그걸 간음이라고 하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간음한 신부를 깨끗하게 씻어주시려고 죄 없는 자신의 피를, 자기가 살리려는 신부의 손에 죽임당하여 흘리게 된 그 피로, 자기를 죽인 그 신부를 그 죄를 깨끗하게 씻어서 다시 거룩한 내 신부로 맞이하신 거예요. 호세아서의 호세아 선지자가 고멜과 혼인한 이야기가 너무 숨이 막히잖아요. 호세아 선지자는 웬 날벼락인가요? 결혼을 하는데, 창기하고 결혼을 하라고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시키셨는데… 그 여자는 부정하잖아요. 돌로 맞아 죽어야 하는 그 여자 하고 결혼을…? 호세아는 선지자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하셨어요? 하나님이 너무 괴팍하신 것 같잖아요. 그리고 자녀를 낳았는데 이름을 뭐라고 지으라고 하신 거예요? ‘로암미’, 로암미가 뭐예요? ‘로’, 아니다, ‘암’ 백성, ‘미’ 나의,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이름을 지으래요. 자식을 낳으라고 하셔 놓고.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그런데 그 날벼락을 맞으면서 깨닫게 되고 받은 은혜는 뭐죠? 호세아가 하나님께서 처한 상황을 같이 동참해서 그 십자가에 참여한 거예요.
호세아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그 사랑과, 그 아픔과, 그 괴로움과, 그 진노를 같이 느껴보는 거예요. 정말 숨이 막히죠.
저 여자를 우리가 돌로 치면 안 되겠다. 이 정도 처지가 아니에요.
주님을 저버리고, 내 원대로, 내 좋은 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내 신랑을 내버리고, 내 욕망을 채워주는, 내 맘에 쏙 드는 마귀를 내 신랑 삼은 거예요. 이것이 간음이에요. 그런데 그러한 저를 두고 어떻게 하셨지요?
심판자의 심판
10절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정호야,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주님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여기에 보시면, 너희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율법대로 하려면 죄 없는 자만이 심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판단하는 심판자가 될 수 없다. 선악과를 왜 따 먹었어요? 선악과가 어떤 거죠? 왜 선악과라고 그래요?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열매, 왜 선악을 분별하는 열매를 따 먹으면 우리가 죽게 돼요?
선악을 분별하는 분이 누구세요? 오직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면 그게 선인 거고, 악이라고 하면 그게 악인데, 하나님의 판단을 제쳐놓고 누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그럼 누가 되겠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이 되겠다는 거예요. 감히. 최근 이 시대에 인간이 로봇을 많이 만들고 있죠? 로봇이 사람을 이기고 지배해서 로봇의 세상으로 지구를 정복하겠다고 하면, 그 로봇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 네가 더 똑똑하니까. 그래, 우리가 네 종이 되는 게 낫겠다.
그럴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지 하죠? 그딴 배은망덕한 로봇, 그건 심판이 당연한 처사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지옥을 왜 만드셔? 사랑의 하나님이? 공의가 없는 사랑, 거룩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거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죄에 대한 대가가 영원한 심판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고, 자신을 내어주시어 죽기까지 하시면서 택하신 신부를 구원하신 거예요.
율법의 의미
이런 은혜로, 이런 사랑으로, 구원을 베푸신 거죠. 그런데 여기에 율법대로라면 죄 없는 사람이 돌을 쳐야지 되는데, 그러면 죄 없는 분이 누가 남은 거죠? 사실상. 예수님이 남으신 거죠. 예수님은 돌로 치실 수 있으신 분이세요? 맞아요. 우릴 지옥의 심판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이세요.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구약의 돌판에 쓰셨던 십계명은 어떤 거예요?
구약의 율법의 기능이 뭐라고 했죠? 죄를 깨닫게 하는 것.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어요? 없어요. 율법을 주셨지만, 그 누구도 그 율법을 다 지켜서 구원받을 수 없는 거구나. 이걸 깨닫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신 거예요.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맞아요. 절대 선의 기준이에요. 이걸 반드시 다 지켜야 해요. 그런데 표면적으로 행위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뭔가요? 마음 중심, 주님을 사랑함으로 지켜야 하는데, 그건 누구도 못하는 거예요.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내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그게 열 번째 계명이지요. 그냥 행동만 지키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율법을 통해서, 십계명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건 뭐예요? ‘은혜’가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구나. 율법 말씀에 비춰보니, 난 죄인이구나. 이 여자가 “나는 죄인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현장에서 잡혔어요. 우리도 현장에서 안 잡혀서 이렇게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고 있지, 하루 종일 우리의 생활을 24시간 녹화하고, 우리의 속마음까지 다 영상으로, 음성으로 다 공개된다면 우리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새 계명
예수님이 기준이지, 즉 우리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기준이신 예수님이 어떻게 하신 거예요? 내가 너희에게 지금 새 계명을 준다. 이거예요. 구약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수에게 받은 만큼 마땅히 그대로 갚아라. 더 갚지도 말고, 받은 그대로 죄를 지은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마땅히 그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제 너희는 원수 갚지 말고,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라.
‘새 계명’을 땅바닥에 써주시는 거예요. 지구를 돌판 삼아. 새 계명은 뭐예요? 이제 죄지은 자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새 계명을 내가 너희에게 준다. 그러니까 뭐라고 쓰셨는지는 몰라도 되는 것이죠. 구약의 십계명을 주신 그 하나님과 같은 분이 누구시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죠. 그런데 그 새 계명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죄인을 용서하시는 은혜의 새 계명을 주시겠다는 거죠. 그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심으로써 바로 그 새 계명의 은혜를 나타내 보이신 거죠. 이 은혜는 마침내 십자가와 부활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는 것이죠. 십자가에서 뭐라고 하셨어요? 다, 이루었다. 뭘 다 이루신 거예요? 십계명과 그 모든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로 다 이루신 거예요. 완전히 죄 없으신 분이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들은 율법을 지키려 해도 지킬 수 없는 그 율법을 깨끗하게 다 씻어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구원자이심을 나타내주신 거죠.
마음 판에 써주신 새 계명
그래서 성령께서 또 글씨를 써주시는 거예요. 어디에다 글씨를 써주시죠? 성령께서 우리의 심비에…. 계명을 어디에 쓰라고 말씀하셨어요? 고린도 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우리 가슴에, 우리 마음에 성령님께서 새 계명을 써 주시니까 부인할 수 없게 되는 것이에요! 주님이 써 주셨는데 누가 지울 수 있겠어요? 심지어 나 자신도 지울 수 없어요.
부인할 수 없는 믿음을 주시는 성령님
그러니까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은 절대 부인하지 않아요. 베드로는 성령으로 믿기 전에는 몇 번이고 부인했어요. 미리 경고도 했어요.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첫 번째 부인하고, 두 번째 부인했으면서도 전혀 자각조차 하질 못해요. 오직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거예요. 자신도 저렇게 잡혀가서 죽을까 봐. 미리 예고해 주셨는데도,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닭이 울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니까 그제야 통곡하는 거죠. 그런데도 아직 증인은 될 수 없어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내가 약속한 것을 너희가 받을 때까지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께서 약속한 것을 제자들에게 보내실 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된다는 거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직 성령으로 너희를 내 증인 삼겠다.’ 하신 거예요.
성령을 받아야 예수님의 참 증인이 된다는 거예요.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면 이전처럼 부인하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증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거예요. 왜 그래요? 성령께서 우리 심비에 그리스도를 새겨 주셨기 때문에.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봤나요? 들었나요? 증인인데 봐야 증인이고, 들어야 증인이지 못 봤는데,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나요? “그렇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해서는 증인이 될 수 없어요. 그런 정도로 목숨을 걸 수 없어요. 그런데 제자들,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목숨을 걸죠? 봤으니까! 들었으니까! 성령께서 내 심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새겨 주신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게 돼요.
종교인과 참 신자
그래서 성령으로 믿어야지, 성령으로 믿지 않으면 종교인이에요. 나를 위해서 믿는 것일 뿐인 거예요. 기도하면 나를 잘해주신다고 하니까, 낫게 해주시고, 잘살게 해주시고, 문제 해결해주신다고 하니까 믿으면 종교인이에요. 그럼, 나를 위해서 믿는 게 왜 문제가 되나요? 나를 좀 위하며 안되나요? 나쁜 걸 위한 것도 아닌데. 병도 낫고 좀 편안하게 사고 싶은 게 왜 그게 문제가 돼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것을 우선으로 삼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이죠? 내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을 제쳐놓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죠. 주님께서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시는 상태, 곧 내 중심의 자리에 주님이 자리하시고 다스리시는 상태가 주님이 뜻하시고 원하시는 상태인 것이죠. 주님과 연합되고 주님이 전부인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게 오직 주님 자체가 되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기가 자신만을 챙기느라 인생을 소비하지 않아요.
주님만을 원하게 되고, 주님으로 가득 차게 된 그 상태를 가장 기뻐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네가 나와 함께하면 죄를 이길 수 있다.
그래서 이 새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나타내 주셨고, 그 새 계명이 심비에 새겨지는 성령으로 믿는 사람은 이제부터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거예요. 더 이상 죄짓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거나 정당화하거나 하지 않고, 주님과 연합되지 못해 짓게 된 죄를 회개하고, 다시금 주님과 연합을 이루고 죄를 이길 뿐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선을 순종하며 사는 은혜를 누리게 되죠.
흙에 새겨주신 글씨
간음한 여인에게 새 계명의 은혜를 땅에 써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흙으로 지으신 우리를 위해 못 박히신 손으로 친히 우리의 심장에 새 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러 가자, 나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가자!”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