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단상]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요한복음 2:1-11 / 밴쿠버넘치는교회 박찬혁 목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요한복음 2:1-11

밴쿠버넘치는교회 박찬혁 목사

오늘 본문 말씀은 갈릴리 가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가나는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나사렛과 지리적으로 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생활 수준에 있어서도 비슷하게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 문화에서 혼인 예식은 가문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기 때문에,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하객들을 위해 최소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따라서 잔치를 준비하는 데 많은 일손이 필요했고, 본문 1-2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가 미리 가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일찍부터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잔치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포도주가 그만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는 흥을 돋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포도주 없이는 잔치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포도주를 구하지 못해 잔치가 중단될 경우, 잔치를 주최한 혼주나 진행을 맡은 연회장이 겪을 수치는 물론이거니와, 자칫하면 분노한 하객들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 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즉시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알렸습니다. 참고로 잔치가 열리기 전부터 가서 일을 돕고, 문제가 생기자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은 마리아가 그 집 주인과 가까운 친척 관계였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했으며, 예수님이 자라시는 동안 하나님의 돌보심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면 이 위기를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을 갖고, 포도주가 떨어진 소식을 혼주나 연회장이 아닌 예수님께 즉시 알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리아의 믿음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2:4) 

여기서 ‘여자여’(헬 ‘귀네’)는 당시에 여인을 높여 부르는 존칭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 어머니의 요청대로 부족한 포도주를 제가 해결하겠습니다”라는 긍정의 대답으로 이어져야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물론 본문 7절에 보면, 예수님은 개당 약 100리터를 담을 수 있는 큰 돌항아리 여섯 개에 담긴 맹물을 모두 값비싼 고급 포도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왜냐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 맹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주었고, 혼주와 연회장의 명예, 그리고 잔치의 기쁨도 지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 속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이 쉬운 일을 왜? 처음부터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을까?’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주실 거면서 왜 처음에 거절하셨을까?’. 이 질문의 답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요한이 먼저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며 장차 행하실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보고 외친 말은 “보라 우리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 줄 은인이시다”, “보라 우리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료해줄 치료자시다”가 아니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1:29)

여기서 ‘어린 양’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임 당하는 희생 제물을 뜻합니다. 즉,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한 죽음, 곧 대속(代贖)에 있음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겸손히 그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20:28).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능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거하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때문에 본문 11절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꿔 주신 사건을 단순한 ‘기적(iracle)’이 아닌 ‘표적(miraculous signs)’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본문 속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기에 적합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그곳의 주인공이 아닌 손님이었고 , 예수님이 만든 포도주는 하객들의 유흥을 위한 것이었지, 복음을 선포하는 기회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9-10)

분명 맹물이 포도주로 변한 일은 엄청난 기적이었지만 , 연회장과 신랑을 비롯해 누구도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더라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항아리에 물을 채워 연회장에게 갖다 준 하인들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맹물이 포도주가 되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기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이 하인들조차 이후에 연회장이나 신랑 또는 혼인잔치에 참여한 누구에게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증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당시 하인들은 예수님보다 세상의 재미와 흥겨움에 더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분의 능력이 사람들의 유흥과 육신의 만족만을 위해 소비되는 것을 경계하셨기에 어머니의 요청을 처음에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인간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더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주지 않는데 굳이 맹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상 요한복음 1장에 소개된 제자들이 당시 예수님과 함께 혼인잔치에 동행했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믿음을 소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께서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 2:11)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랐던 제자들의 믿음은 이 사건을 통해 더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다른 이들이 아니라 그분을 구원자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 기적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에게 더 큰 믿음의 확신과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감격을 맛 보여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혼인 잔치의 하객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보고 믿는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시선을 고정하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인 줄 믿습니다.

육체의 만족과 즐거움보다 또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 자체보다 더 값지고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의지하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에서 인정받거나 박수 받지 못한다 해도 본문 속 제자들처럼 끝까지 예수님 곁에 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 됨이 우리 평생에 자랑이 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감사를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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