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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힘숨찐, 그리스도인” 사도행전 16장 35~40절_에드먼튼 임마누엘교회 임재택 목사

“힘숨찐, 그리스도인”사도행전 16장 35~40절

에드먼튼 임마누엘교회 임재택 목사

여러분, 혹시 젊은 세대나 인터넷 공간에서 자주 쓰이는 ‘힘숨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힘을 숨긴 찐따’의 줄임말로, 겉보기에는 어수룩하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능력과 무시무시한 힘을 숨기고 있는 판타지 소설이나 웹툰의 주인공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평소에는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조용히 살아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압도적인 힘을 드러내며 악당들을 소탕할 때 독자들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순신 장군이 그러했습니다. 오랜 기간 백의종군하며 무시당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말했을수 도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더구먼 별거 아니네… “, “장군 옷을 벗고 나니 우리나 별반 차이가 없구먼…”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가 되어서 다시 장군으로 임명되었을 때 임진왜란에서 연전연승을 한 불세출의 명장으로 그 실력을 드러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과 실라가 바로 영적, 사회적 의미의 영웅적인 ‘힘숨찐’이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 감옥에서 억울하게 옷이 찢기고, 수없이 매를 맞고, 깊은 지하 감옥에 차꼬에 채인 채 갇혔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힘도 없고 무기력하게 당하는 죄수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던 대제국 로마의 최고의 특권이자 치트키인 ‘로마 시민권’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히든 카드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매를 맞기 전에 당당하게 꺼내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엄청난 카드였습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왜 진작 그 힘을 쓰지 않고 매를 다 맞은 후에야, 그것도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시민권을 밝혔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힘을 가졌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힘을 거룩하게 다스릴 줄 알았던 진짜 실력자, ‘힘숨찐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영적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힘보다 타이밍이다/35-37

바울이 고난의 현장에서 즉시 로마 시민권을 밝히지 않은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금만 힘이나 권위가 생기면 즉시 휘두르고 자랑하려 하지만, 진짜 실력자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며 힘을 숨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내 감정과 혈기가 앞서는 타이밍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힘을 드러내는 것이 진짜 권세입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이순신 장군의 ‘기다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불패의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배가 강하거나 무기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물 때(조류)와 타이밍’을 완벽하게 읽고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선조 임금과 조정의 대신들은 당장 나아가 싸우라고 압박했고, 적들은 끊임없이 도발했습니다. 만약 조급하게 나아갔다면 조선 수군은 전멸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과 판옥선, 화포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힘이 극대화될 수 있는 바다의 흐름이 찾아올 때까지 모든 비난과 오해를 견디며 힘을 숨기고 기다렸습니다. 결국 명량해전에서 단 13척의 배로 울돌목의 좁은 지형과 조류가 뒤바뀌는 ‘단 한 번의 결정적 타이밍’을 포착하여 133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바울이 억울한 매질과 고초 속에서도 침묵하다가 ‘다음 날 아침’이라는 가장 극적인 타이밍에 시민권을 꺼내어 빌립보 관료들을 떨게 만든 것처럼, 우리도 내 혈기와 힘을 즉시 증명하고 싶은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인내가진짜 영적 실력입니다.

2. 힘보다 목적이다/38,39

다음 날 아침, 빌립보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 가만히 나가라고 했을 때 바울은 거부합니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비밀리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37절)고 당당히 요구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자존심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범죄자처럼 쫓겨나듯 도망치면, 빌립보에 이제 막 개척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이 ‘죄인이 전한 이단 사상’이라는 치명적인 오명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 힘은 내 자존심을 세우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유익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훗날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언급하며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였습니다.

백신을 개발하고 특허를 포기한 ‘조너스 소크’ 박사

1950년대 전 세계는 어린이들을 불구로 만드는 소아마비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의학자 조너스 소크(Jonas Salk) 박사가 마침내 인류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이 백신의 특허를 등록했다면 당시 돈으로 약 70억 달러, 현재 가치로 수십 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평생을 뵤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송 앵커가 “이 백신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라고 묻자, 소크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 건가요?” 그는 백신을 전 세계에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제약회사와 자본의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의 목적은 ‘개인의 부’가 아니라 ‘인류의 소아마비 종식’이라는 명확한 목적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힘숨찐 그리스도인’은 힘을 가졌을 때 그것으로 자신의 사욕을 채우거나 자존심을 세우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명예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시민권을 사용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세상의 직분, 지식, 물질, 달란트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아낌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3. 대지: 힘보다 공동체이다/40절

바울의 당당한 요구에 빌립보 상관들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며 직접 찾아와 사과하고 성에서 떠나기를 청합니다.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때 바울과 실라의 행보가 놀랍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분위기에 취해 당장 성을 떠나 탈출한 것이 아니라, 곧장 ‘루디아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환난 중에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있을 ‘형제들(빌립보 교회 공동체)’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후에야 비로소 떠납니다(40절). 하늘의 힘을 가진 자의 시선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연약한 ‘공동체의 지체들’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훗날 이런 마음을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도 썻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인류 공동체를 위해 힘을 숨기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마26:51-54)

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공동체 중에 가장 큰 공동체인 인류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힘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공동체를 우선 생각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비밀 하나 알려 드릴까요?…ㅎㅎㅎ

우리 임마누엘 교회 가족 가운데… 200억대 부자가 있는데 공동체를 위해서 드러내지 않고 있으신 분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ㅎㅎㅎㅎㅎ

그 분이 방금, 저한테 제발 드러내지 마세요…라는 의미로 눈을 동그랗게 뜨셨는데…ㅋㅋㅋ

공동체와 허물없이 어울리며 소박한 삶을 함께 누리고 있는, 전혀 예상 못한 분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로 인해 서로 겸손하게 대하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ㅎㅎ

바울은 로마 시민권이라는 강력한 카드로 고위 관료들을 무릎 꿇렸습니다. 그러나 승리의 권세를 개인의 유익으로 바꾸지 않고, 곧장 상처받고 떨고 있는 교회 공동체 성도들에게 달려가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진짜 강한 그리스도인은 내 승리를 과시하는 자가 아니라, 그 힘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공동체를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맺음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힘을 가지면 즉시 과시하고, 남을 짓밟고, 내 타이밍에 내 유익만을 위해 쓰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는 이 시대의 거룩한 ‘힘숨찐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자원과 권리를 내 혈기나 욕망대로 쓰지 않고 

  • 하나님의 때에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 사랑하는 공동체를 위해 절제하며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내가 가진 모든 힘은 주님 주신 것이라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공동체의 약한 지체들을 위로하고 세우는 데 전력을 다하는 그런 진짜 실력 있고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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