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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8회 끝】 칸트는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묻는가? 신학적 평가와 오늘을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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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8회 끝】 칸트는 오늘의 교회에 무엇을 묻는가?

신학적 평가와 오늘을 위한 성찰

8회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오늘의 신학과 교회에 던지는 물음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칸트의 신학적 사유는 분명한 공헌과 동시에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그 둘을 균형 있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에게서 오늘을 위한 진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인간론에 대한 평가

칸트는 제1논고에서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강조하며, 이성이 작동하기도 전에 인간을 죄인으로 낙인찍는 원죄론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가능성을 회복시키는 공헌이다. 그는 인간을 이미 정해진 죄인이 아니라, 선택과 의지에 따라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논리는 한계를 지닌다. 칸트는 자신이 그토록 강조한 ‘실천적 이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추론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가 제시하는 믿음(faith)마저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행위로 보기 때문에, 은혜와 계시가 인간의 삶에 실제로 역사하는 방식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은혜와 계시를 이성의 한계 밖에 둠으로써 기독교만의 본질을 지키려 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한다.

둘째, 기독론에 대한 평가

칸트는 예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한 인간의 원형으로 제시함으로써, 예수를 인류의 중심에 세우는 데 기여했다. 그의 기독론은 예수를 최고의 도덕적 모범으로 제시하여 기독교가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을 갖춘 종교임을 보여주는 공헌이 있다.

그러나 예수를 중보자나 구원자로 보는 전통적 기독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칸트는 예수와 그의 구원을 도덕성의 차원에 국한시켰는데, 예수와 관련된 구원의 문제는 도덕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예수 이해는 기독론이라 부르기엔 협소하다. 다만 그가 믿음의 이름으로 오류와 이율배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자각시킨 것은 분명 그의 공로이다.

셋째, 하나님 나라론에 대한 평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사람들 가운데 실현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통찰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를 오직 저 하늘이나 죽음 이후에만 기다리던 신학에 비해, 현실의 삶 속에서 도덕적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만든다.

그러나 온 인류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친 이상주의다. 아이러니하게도, 칸트가 그토록 비판했던 낭만주의적 이상주의를 그 자신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넷째, 교회론에 대한 평가

칸트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주물숭배(fetish-worship)와 성직 제도의 이율배반을 지적한 것은 통렬하다. 의식(ritual)이 도덕성을 밀어내고 종교를 대체하는 현상, 성직자들이 봉사의 이름으로 지배를 행사하는 현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리하다.

그러나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을 전면적으로 ‘종교적 망상’으로 단정한 것은 한 관점으로 전체를 재단한 오류다. 은혜의 방편은 변질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망상은 아니다. 성찬, 기도, 신앙고백 등이 삶의 변화와 연결될 때 그것이 진정한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칸트의 이분법적 비판은 놓쳤다.

칸트의 역설적 유산

칸트의 영향력은 19세기 유럽 기독교를 소위 ‘칸트식 기독교(Kantian Christianity)’로 만들었다. 율법적 의식이나 신비, 기적에 대한 논의를 피하고 오직 윤리적 기독교를 추구하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도덕법의 수여자로만 인식하고, 예수를 이상적 인물로만 제시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만 국한시킨 것은 결국 기독교의 본질과 복음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기독교의 오류를 가장 예리하게 지적한 신학자가, 자신의 오류 안에서도 그 축소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오늘을 위한 물음

연재를 마치면서 독자들에게 몇 가지 물음을 남기고 싶다. 오늘의 교회는 칸트가 비판한 그 교회와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여전히 삶의 변화 없이 의식의 형식만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성직자들은 봉사의 이름으로 지배를 행사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성의 물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여, 이성을 억압하며 신앙을 지키려 하지는 않는가?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성서신학이 종교는 이성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이성에 대해 선전 포고하고 지속적으로 이성에 대항한다면, 그런 종교는 결국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이 경고는 250년이 지난 오늘, 오히려 더 크게 울린다.

오늘날의 신학자나 설교자들은 칸트의 철학적 신학에 갇힐 필요도, 반드시 동의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가 비판한 문제들이 오늘날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날 때, 그의 목소리는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려야 한다. 철학자 칸트는 우리에게 신학자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얼굴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물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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