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_img
Home 칼럼 설교단상 구원의 목적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4장 1~3절_토론토 제자교회 김성민 목사

[설교단상] 구원의 목적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4장 1~3절_토론토 제자교회 김성민 목사

구원의 목적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4장 1~3절

토론토 제자교회 김성민 목사

서론: 당신은 구원을 ‘티켓’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세상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성도 최고의 축복이자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구원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오늘날 현대 교회가 마주한 가장 뼈아픈 비극 중 하나는, 구원을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 티켓’ 정도로 격하시켜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어 이미 구원받았으니 죽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는 내 성공과 안락을 위해 마음대로 살다가 갈 때 천국에 가면 그만이다”라는 기형적이고 이기적인 구원관이 성도의 영혼과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아도 구원의 목적을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이 땅에서의 세속적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대가가 고작 ‘이 땅에서 남들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불과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단순한 장소적 이동을 위한 통행증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목적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거룩한 초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는가(How to be saved)’라는 방법론에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정작 ‘왜 구원받았는가(Why we are saved)’라는 본질적인 목적에 대해서는 깊이 고뇌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와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신 궁극적인 이유가 단순히 국경을 탈출하는 일 자체였습니까? 아닙니다. 출애굽기 8장 1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구원의 시작에 불과하며, 광야를 지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지는 것이 구원의 참된 목적이었습니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그의 명저 ‘구원이란 무엇인가’에서 참된 구원의 본질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Savior)’로만 받아들이고 삶의 통치자인 ‘주인(Lord)’으로 모시지 않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의 목적은 단순히 죄의 형벌로부터의 면제가 아니라,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삶이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4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갇힌 몸으로 피를 토하듯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거룩한 부르심, 곧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구원의 목적을 말씀의 거울 앞에 바르게 교정하고, 구원받은 성도다운 생명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구원의 첫 번째 본질적인 목적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의 공동체적 연합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면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의 첫 번째 실천 과제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주목해야 할 단어는 ‘힘써 지키라(Eager to maintain)’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하나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 놓으셨으니, 성도는 그것을 생명 걸고 지켜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핵심 목적이라면, 스스로에게 엄중히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믿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내가 어디까지 내 자존심을 꺾고, 기득권을 내려놓으며, 심장을 갈아 넣는 심정으로 인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바로 내가 소유한 구원의 가치와 깊이를 증명합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 하나 꺾지 못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교회를 헐뜯고 형제를 모함한다면, 그는 십자가 구원의 무게와 영광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거룩한 하나 됨을 지켜낼 수 있습니까? 본문 2절은 세 가지 영적 성품을 제시합니다.

1)겸손: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나의 옳음과 인정 욕구보다 공동체의 하나 됨을 더 소중히 여기는 영적 태도입니다.

2)온유: 헬라어 원어로 ‘프라우스(Praus)’는 사나운 야생마가 주인의 손길 아래 완전히 길들여진 상태를 뜻합니다. 힘이 없어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힘과 권리가 있음에도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그 힘을 거룩하게 통제하고 억제하는 능력입니다.

3)오래 참음: 지체의 연약함과 허물을 보았을 때 정죄하지 않고 사랑으로 덮어주며,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주는 인내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의인들이 모인 전시장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배경, 결핍된 인격, 씻기지 않은 상처를 가진 죄인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 한 몸을 이루어가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마음의 벽을 쌓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주님의 몸을 찢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남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내가 먼저 넓어지고 내가 먼저 용납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골방에서 홀로 거룩한 척하는 이기적인 신자로 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상처받고 깎이는 현장 속에서도 지체들의 발을 씻기며 성령의 연합을 지켜내는 참된 성도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2. 구원의 두 번째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자기 자아를 온전히 비워내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은 엄히 선포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어지는 6~8절은 기독교 신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비하(Kenosis, 자아 비움)의 기독론’을 장엄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자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한 분이셨지만, 그 당연한 기득권과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철저히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셨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을 ‘자아 팽창(Self-inflation)’과 ‘자아 중심성(Self-centeredness)’으로 진단하며 복음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역설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하고 자기를 높이며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오면 비대해진 자아는 급격히 축소된다. 참된 구원은 세상이 외치는 자아실현(Self-realization)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아를 비워내는(Self-emptying) 거룩한 신비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예배의 자리에 나와 요구하는 기도의 제목들이 무엇입니까? “내 이름을 높여주옵소서. 내 자존심을 채워주옵소서. 내 야망을 성공시켜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이 걸어가신 구원의 길은 세상의 성공 방식과 완벽히 반대 방향입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길, 스스로 종이 되는 길, 자기를 비워 이웃을 살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하고 침 뱉는 무리를 향해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를 불러 즉각 심판하실 수 있는 권능이 있으셨습니다. 할 말이 없어서 침묵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마땅한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시고, 사랑의 침묵 가운데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참으로 구원받은 자는 내게 반박할 힘이 있고 정당한 권리가 있을지라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말을 삼켜내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내 권리를 기꺼이 양보하고 끝까지 낮아져 지체의 눈물을 닦아주는 십자가의 심장입니다.

예))1948년 여순사건 당시 사랑하는 두 아들(동인, 동신)을 한날한시에 잃었던 손양원 목사의 삶을 기억해 보십시오. 두 아들을 잔인하게 쏜 청년 안재선을 향해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피눈물 나는 분노를 쏟아낼 권리가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는 사형을 앞둔 원수를 살려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청년을 자신의 양아들로 품었습니다. 자신의 인간적 권리와 분노를 십자가 밑에 온전히 파묻고 원수를 아들로 껴안은 것입니다. 

훗날 안재선 씨의 아들 안용준 씨는 목회자가 되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포기하신 당연한 권리와 그 눈물의 사랑이 원수의 집안을 살려냈고, 우리 가문에 작은 예수들이 태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내 자존심이 상해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계십니까? 누군가가 내 영역과 권리를 침해했다고 원망하고 계십니까? 십자가 위에서 모든 권리를 쏟아내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내 거친 자아를 깨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비우는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위대한 목적입니다.

3. 구원의 세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숙하여 우리 삶 전체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는’하나님을 기뻐하라(Desiring God)’를 통해 구원의 궁극적 종착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최고의 목적은 인간의 주관적 행복 그 자체가 아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이다(엡 1:6, 12, 14).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최고로 즐거워하고 찬양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적인 영적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3~15절은 성도가 갓난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자라지 않고 여전히 젖병만 물고 누워있다면 부모에게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은 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영적 미성숙에 머물러 여전히 혈기를 부리고, 시기하며, 분쟁을 일으킨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일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사역의 외적 은사와 구원의 내적 열매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셨다. 사역적 은사는 공동체를 위해 잠시 맡겨진 도구일 뿐 구원의 본질적 증거가 아니다. 구원의 진짜 목적은 사역의 화려함이 아니라 삶에서 맺어지는 그리스도의 성품, 즉 거룩함과 순종의 열매다.”

성경이 계시하는 온전한 구원은 단순히 지옥 형벌을 면하는 영적 신분의 변화인 ‘칭의(Justification)’로 출발하여, 매일의 삶 속에서 거룩하게 다듬어지는 ‘성화(Sanctification)’를 거쳐, 마침내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완성되는 ‘영화(Glorification)’를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여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의 모나고 거친 인격이 주님의 손길에 의해 깎이고 빚어져,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참된 성도의 삶은 세상과 다르구나!”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론: 

구원은 단순히 “예수 믿고 죽어서 천국 가자”는 안일한 표어로 요약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신 거룩한 사건이며, 그분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도록 부르신 위대한 소명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밝혀진 세 가지 구원의 목적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1)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믿음의 공동체를 내 자존심을 꺾어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

2)십자가에서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3)영적 어린아이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 거룩한 삶의 열매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숭고한 목적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속적 안락과 자아실현을 구원의 열매로 착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까?

값싼 구원관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며 이 어두운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맑은 향기를 발하는 참된 구원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