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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주님과 함께(누가복음 10:38-42)_밴쿠버 두드림 교회 안대선 목사  

주님과 함께(누가복음 10:38-42)  

밴쿠버 두드림 교회 안대선 목사

도입: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캐나다에서 20년이다. 20년의 세월동안 우리 가족은 함께 했다. 유은이가 1살 때 이곳에 왔으니 20년의 시간은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20년중에 여러분들과 믿음생활 할 수 있어서 더 감사하다.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있는 다는 것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것 자체가 감사하고 좋을 수 도 있다. 저는 지난 4년과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 저만큼 주님도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으실 줄 믿는다.

믿음 이라는 것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했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막연하기도 하고 실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연결이 되있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믿음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다. 창조하신 분과 피조물중에 창조자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만들어졌으니 소통하고 연결하고 함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죄로 인해서 그 소통이 차단되었다. 그 커다란 벽을 주님이 허무셨다. 죄로인해서 다시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원래 우리를 만드신 주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주님에 대한 마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과 환경을 통해서 주님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을 자연계시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신에 대한 마음과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이 없어도 신에대한 생각과 표현들을 한다.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그냥 생각하고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하려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예배와 경건시간이다. 예배와 경건시간을 하지 않으면 주님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와 경건의 시간은 믿음의 사람들 믿음과 제자의 삶에 필수적이다.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예배하고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주님이 일하시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신다. 왜? 우리를 보고싶어하시기 때문에 왜? 보고 싶어하시나? 주님이 만드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고싶어 하시고 교제하길 원한신다.

그래서 시편 27:8을 보면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다윗에게 내게 와서 예배하라고 했다.  

주님께서 나더러 “내게 와서 예배하여라” 하셨을 때 “주님, 내가 가서 예배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으니,   

(시 27:8)

다윗은 주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다.  왜? 다윗은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나? 주님이 예배하라고 하신 것은 나와 함께 하시기 원함임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길 원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와서 예배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해서 예배하면 주님과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와서 예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마음을 깨달은 다윗은 주님의 마음과 같아졌다.

주님의 사랑의 마음이 다윗에게 전달된 것이다. 당연히 함께하는 사람과 닮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길이다.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면 우리도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점점 그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주님의 사랑과 간절한 마음을 받은 다윗도 주님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시편 63:1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시편 63:1절에서 이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고백한다.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자신도 주님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님과 교제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주님이 그렇게 하시듯 여러분도 주님을 간절히 그리워하시나? 시편기자처럼 우리도 주님을 찾고 간절하게 그리워하길 바란다. 그분이 주님과 함께하시는 것이다.

주님과 모세의 교제도 다윗과 같았다.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진으로 돌아가도, 눈의 아들이며 모세의 젊은 부관인 여호수아는 장막을 떠나지 않았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은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관계가 형성된다. 모세는 주님과 친구같은 관계가 되었다. 여호수아는 장막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웠다.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나?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는 실제로 주님을 좋아했고 교제하고 싶어했고 함께 하길 원했다.  그랬기 때문에 집으로 초대하고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오빠인 나사로를 살려주셨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감사도 있었고 그들이 주님을 메시야로 믿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비하는 향유를 주님께 붇고 머리로 닦는 일을 함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그대로 보여준다.

둘을 비교해 보자.  주님께서는 누구를 왜 칭찬했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예수님은 왜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니? 묻고 있다. 마르다처럼 우리도 여러가지 일로 분주할 수가 있다.  우리와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예배와 경건의 시간은 충분하게 확보되어있나?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 집중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주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주님이 안계신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오히려 주님보다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렇다.

하지만 상황과 세상은 그렇지만 믿음은 간단하고 심플한 것이다.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한 것 바로 그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관심을 갖고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때로 자신을 바라보면 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하는데 우리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격도 그렇게 가족과 학교 직장 주위 사람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만드시고 왜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도록 이끄시는 것일까?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그야말로 금수저다. 

몸에 흠이 없고, 용모가 잘생기고,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으며, 지식이 있고, 통찰력이 있고, 왕궁에서 왕을 모실 능력이 있는 소년들을 데려오게 하여서, 그들에게 바빌로니아의 언어와 문학을 가르치게 하였다. (단 1:4)

다니엘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씀이다.  흠이 없고 잘생기고 지혜와 지식이 있고 게다가 통찰력까지 있고 왕족이다. 이정도면 최고의 금수저아닌가?

하지만 문제가 있다. 이런 금수저가 한순간에 나라가 없어지고 남의 나라에 노예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했겠나? 하나님께 원망도 하고 하나님을 부인할 만하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과 함께 했다. 여러분 그당시 바벨론에 식민지에 예배할 장소가 있었나? 오히려 예배는커녕 기도만해도 죽음의 위기가 있던 곳이다. 그곳에서 다니엘은 하루 세 번 꼭 하나님께 기도 했다.

다니엘만의 경건의 시간이다.

그가 하루에 세 번씩 했던 습관적인 기도의 특징은 이것이다. 즉 다니엘의 기도는 첫째, 예루살렘을 향하여, 둘째, 창문을 열어놓고, 셋째, 하루 세 번씩, 넷째, 무릎을 꿇고, 다섯째, 예전부터 해오던 그대로, 여섯째,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기도였다. 

식민지에 잡혀와서 무슨 감사기도인가? 기도하면 죽는줄 알면서도 기도한다. 상황이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해도 주님과 함께 하기를 택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니엘의 저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건의 시간의 저력은 다니엘을 위대한 지도자로 세상에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다니엘이 주님을 택하였기 때문에 그 저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택하면 주님도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이다.  칭찬하시고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듣고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분 경건의 시간이 이렇게 중요하다. 예전에 믿던 분들은 어떻게 보면 무식하게 하나님을 믿었다.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가정예배를 드리고 금요일에는 철야예배를 하고 수요일에도 저녁예배를 드리고 주일날에도 두 번씩 예배를 드렸다.

전 어릴 때 기억이 아버지가 항상 기도하는 기억이 있다. 바쁘셔서 잘 보지 못했지만 볼 때는 항상 무언가 준비를 하시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날 그 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경건의 시간 기도의 시간이 없어지고 있다. 주님과 함께하지 않으면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 대부분이 마음에 한구석에 하나님이 있다고 말을 한다. 그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과 함께 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 나오고 예배하고 경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이런 약속을 주셨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14:21

간단하다.  J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J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과 함께 하면  주님을 드러내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신다.   23절에도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믿음이 거창한 것 같지만 단순히 주님을 사랑해서 그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다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된다.

그러면 주님을 만날 뿐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이 마리아에게 보는 것은 바로 이런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는 압니다.“ 요일3:24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과 교제하며 친밀해지는 것이다.  친밀해지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친밀하게 되려면 더 깊이 사귀는 것이 필요하다.󰡓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만남에 목말라있기 때문에 항상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스케줄이 분명하게 있다. 잠시의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식어가면 제일 먼저 스케줄이 없어진다.

만나도 별로 할게 없다. 사랑이 불타오를 때는 그냥 만나도 좋았는데 식으니 뭘해도 별로 좋지 않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나와의 만남 그리고 계획이 있어야 한다.

새벽예배 가정예배 주중에 큐티 그리고 기도의 시간들과 공간들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어떤 분들은 영성일기를 쓰기도 한다. 목장 모임도 그중의 한 방법이다.

요즘 목장모임을 못하니 주일예배하고 식사같이하고 교제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위해 나의 시간을 드리고 그 귀한 시간에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나의 삶에 있는가 없는가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예수님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분을 초대했고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뒤로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줄곧 주님의 발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10:42

예수님이 주목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나와 함께 하려고 다른 것을 뒤로 한 것 주님과 함께 함이 제일좋고 우선이 되었던 것을 주목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사실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나?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려고 그렇게 애를 쓰시고 우리를 그리워하지 않았나?

주님께 우리는 가장 우선순위이다. 그 주님의 마음을 똑같이 마리아가 보여주니 얼마나 기쁘시고 좋으시겠나? 당연히 마리아에게 좋은 말씀들을 부어주셔서 그 심령이 은혜로 가득찼을 것이다.

마리아에겐 예수님이 모든 것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다.  그분의 말씀 단 한개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여러분 그랬기 때문에 마리아의 마음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메시야로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단순하게 주님께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서 주님께 집중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은 그것을 방해하고 있고 마리아는 그 방해를 뛰어 넘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과의 교제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체험과 관계없이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자. 다른 일은 못하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지는 말자.   -오스왈스쳄버스- 

여러분 이것이 마리아가 칭찬을 받았던 이유이다.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주님과 함께 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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