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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당신이 바로 복입니다(창12:1-4)_밴쿠버 평안교회 김대섭 목사

당신이 바로 복입니다(창12:1-4) 

밴쿠버 평안교회 김대섭 목사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복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복을 받기를 싫어하겠습니까? 여러분도 아마 다 복 받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중국인들만큼 복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자 ”복”(福)자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글자입니다. 생활 용품 어디서나 ”복”(福)자가 두루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상점과 일반 가정집 어디를 가든 ”복”(福)자가 붙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에 붙어 있는 ”복”(福)자를 자세히 보시면 글자가 거꾸로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럼 왜 중국인들은 ”복”(福)자를 거꾸로 붙일까? 

그것은 중국어로 “거꾸로”의 의미인 “따오(倒)”와 “도착하다”의 의미인 “따오(到)”의 발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福)을 거꾸로 붙이면 ”복”(福)이 도착한다. 즉 “복이 온다.”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국인들은 숫자 “8(八, bā)”을 좋아 합니다. 

왜냐면 중국어로 “로또 맞다”, “잭팟이 터지다”의 의미가 중국어로 “发财(facai)”라고 발음하는데, 여기서 “돈을 벌다”라는 의미인 “발(發, fā)”과 숫자 8의 발음 “ba”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중국의 자동차번호 경매에서 “粤B8888R” 번호가 한국 돈으로 약 3억, 10억 이렇게 웬만한 찻값보다 훨씬 비싸게 낙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2008년에 베이징에서 열렸던 올림픽이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에 열린 이유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인들은 정말 복을 사랑하고, 복 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만 그럴까요? 아닐 겁니다. 여러분도 복을 받길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복을 소원하는 걸까요? 답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복을 찾아다니며 간구하고 소원하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복을 찾아, 쫓아다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서 복을 좇는 신앙과 복 그 자체로서의 신앙을 분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또한 무엇이 참 복인가? 무엇이 참 복된 삶이고,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인가를 함께 생각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2장을 보면 복을 받기 위해 우상을 만들고 섬겼던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75세가 될 때까지 땅도, 자식도, 아무 복도 얻지 못했던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 

아브람 자신에게는 별반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아 온 지난 75년의 세월은 빈껍데기, 마른 우물과도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물이 다 말라버린 그래서 흘려보낼 물이 하나도 없는, 바닥이 다 드러난 호수와 같은 그였습니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것이 중요할까요? 성경에서 복을 대표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인간은 날 때부터 복 받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던 곳,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던 인간은 복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복으로 가득 찼던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모든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끊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고 그저 눈에 보이는 복만을 쫓아 살게 만들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복을 구하며, 갈망하며 복을 쫓아 살아가던 한 사람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던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2) 

2절 말씀에서 복의 근원, 그 주체가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라고 말씀합니다. 복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복의 내용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복의 내용은 다름 아닌 아브라함을 복 자체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이 나온 것처럼 아브라함을 통해 복이 흘러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복의 근원이 되는 그 사람을 지켜주실 것이라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창12:4)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갔다.”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람과 롯이 따라 가고 있는 대상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아브람이 롯과 함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는데 아브람은 롯과 함께 함으로 친척을 완전히는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친척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육신과 세상을 쫓아 살아가던 자신의 과거의 습관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롯과 함께 함으로 과거에 우상을 섬기던 습관과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말씀을 따라가는 자라면 롯은 철저히 복을 따라가는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궁극적인 복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구원인 것입니다. 영생입니다. 그런데 롯은 아닙니다. 그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필요한 복만 있으면 됩니다. 그의 관심은 그 복에만 가 있습니다. 롯에게 있어서의 말씀은 ‘목적’이 아니라 그저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복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목적이었습니다. 

아브람과 그 가족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 땅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나안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죽음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로 말미암아 아브람이 오히려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낙타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아브람과 롯이 얻은 부요함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유가 많아지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창13:6) 

그래서 아브람이 먼저 제안합니다. “네가 살 곳을 네가 먼저 선택해라” 말합니다. 그때 롯이 선택한 곳은 이랬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말씀합니다. 그가 취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는 말은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니라는 겁니다. 진짜와 비슷한 짝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복인 것 같지만 정말 참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는 복을 위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말씀, 곧 예수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가 한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 할 때는 구분이 안 됩니다. 잘 티가 안 납니다. 그런데 언제 구분이 되는지 아십니까? 바로 눈에 보이는 복이 사라졌을 때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복을 위해 그 복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은 그 복이 사라졌을 때, 말씀을 버립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나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섭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닌 말씀이신 예수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내게 세상의 복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복의 근원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소유한 바로 자신이 ‘복’ 그 자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는데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데 기근이라니요. 말이 됩니까?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애굽은 기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이 복의 땅입니까, 아니면 가나안이 복의 땅입니까? 복의 땅, 약속의 땅은 어디에 있는 땅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는 땅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인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곳이 바로 복의 땅, 약속의 땅인 것입니다.

모세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아론과 함께 금 신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출33:3)

그런데 하나님은 목이 곧은 그 백성과 나는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출33:3)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33:15) 모세의 말은 이런 말일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땅에 들어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풍요롭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복의 땅이라고 해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그저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그저 메마른 광야에 불과 하다는 사실을 모세는 알았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광야라고 할지라도 그곳이 바로 ‘복의 땅’이라는 사실을 모세는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바꿔보면 이런 고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아무리 이 땅에서 부와 명예를 얻고, 하는 일마다 잘되고, 자녀들이 잘되고, 아무리 많은 복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 땅에서 그러한 복을 누리지 못 할지라도 눈물과 한숨, 고난의 광야 같은 인생의 여정일지라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디든 그곳이 바로 약속의 땅, 복의 땅임을 믿습니다.” 바로 이런 고백이 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복을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삶입니다. 복을 얻기 위해 안달이 난 삶을 살며, 심지어 그 복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고 서로 죽이고, 다투고, 시기하고, 저주하고,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복을 달라고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더 큰 복을 소원하며 ”복”(福)자를 거꾸로 붙이고 숫자 8자로 된 번호판을 수억을 들여 낙찰을 받고 그렇게 세상 복을 위해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는 모습이 과연 중국인들만의 모습일까요? 우리 또한 눈에 보이는 더 큰 복을 얻기 위해 오늘도 시간과 물질을 들여 최선을 다해 그 복을 좇아 열과 성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그 복을 좇아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 반에 참 복이시며,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쏟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참 복을 소유하며, 그리고 그 복을 지킬 수 있는 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복을 좋아하고, 복을 받길 원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죄일까요? 당연히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히려 그런 재물의 복, 장수의 복 등 이 땅에 살면서 필요한 많은 복들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속 아브라함도 그랬고, 요셉, 다윗, 솔로몬 등 수많은 성경 속 인물들이 그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복을 좇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그것에 두고 살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복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복되게 살아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복되게 살라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복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복의 근원, 복 그 자체인데 왜 복을 좇아 살아가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살아가는 내가 아직도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복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께서 주신 말씀 안에 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세상 복을 좇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복되면 내가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 되고, 내가 속한 직장이 복된 직장이 되고, 내가 속한 교회가 복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된 나를 부모로 둔 나의 자녀들이 복된 것이고, 나를 아내로, 남편으로 둔 나의 남편과 나의 아내가 복된 것이고, 나를 자녀로 둔 나의 부모가 복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복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해서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아직 복이 아니라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복을 좇지 마시고 복이 되십시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그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십시오. 그때 여러분이 속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여러분을 통해 복이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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