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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절아둘람 굴로 도망하매(사무엘상 22장 1-5)_나무십자가교회 정병완 목사

사무엘상 22장 1-5절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나무십자가교회 정병완 목사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쫓고 쫓기는 장면은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스릴을 느끼게 합니다. 삶이 영화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뭔가를 쫓으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무엇에 또는 누군가에게 쫓기며 삽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쫓고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어릴 때 옆집 수탉에게 쫓겨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습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한 번 부리에 쪼여 보십시오. 하루는 닭에게 쫓기다 넘어져 무릎이 깨졌습니다. 울며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사내 녀석이 닭을 무서워한다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길로 옆집으로 달려가서는 “그놈의 닭 좀 어떻게 해봐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렇게 저를 쪼고 쫓던 녀석은 그해 여름 복날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쫓고 쫓기는 영화의 한 장면과 수탉에게 쫓기는 일은 웃고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리며 뒤를 쫓는다면 달라집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겠다고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라마에서 사무엘 선지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브아에서 요나단과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군대를 동원해 쫓기 시작하자 다윗의 본격적인 도피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다윗이 제일 먼저 도망쳐 도착한 곳은 ‘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놉은 사울 왕이 있는 기브아에서 4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더 멀리 더 빨리 그리고 더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놉에서 35km 정도 떨어진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를 찾아갔습니다. 신분을 속이고 망명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이 한눈에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 골리앗을 죽인 다윗, 사울 왕의 사위,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 다윗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신분이 들통나면 죽겠다 싶어 미친 것 처럼 행동해 간신히 위기를 넘깁니다.  

다윗이 가드를 벗어나 도망친 곳이 오늘 본문의 아둘람 굴 입니다. ‘아둘람’은 ‘막혀 있는 곳’ closed-in place란 뜻입니다. 다윗이 동굴에 숨었습니다. 혼자 깊은 동굴로 도망친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뭔가 잘못한 것이라도 있으면 그러려니 할 테지만 사울 왕의 시기심과 질투 때문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만 쫓기는 게 아닙니다. 사울 왕이 가족들까지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을까요? 차라리 내가 아프고 힘든 것은 괜찮은데, 나 때문에 식구들이 힘든 것 참기 힘듭니다. 언제 사울 왕에게 발각될 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 기록한 시편 142편 4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시편 142:4)


다윗은 하나님께 답답한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 그는 아둘람 굴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둘람은 “막혀 있는 곳” 이란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둘람은 ‘안식처’와 ‘피난처’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둘람 굴에 숨어있는 다윗을 위로하시고 힘과 용기를 주셔서 장차 왕의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잘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비록 캄캄한 아둘람 굴에 숨어 있지만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시편 142편 5절의 다윗의 고백입니다.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시 1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돌아 주신다는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고백이 되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아둘람 굴에 숨어 있는 다윗에게 사람들을 보내어 격려하십니다. 앞으로 그가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 주십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삼상 22:2)

가족뿐 아니라 400명가량의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 왔습니다.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은 환난 당한 사람과 빚을 진 사람 그리고 마음이 억울한 자들이 이었습니다. 모두 사울 왕의 폭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세금을 낼 수 없어 빚을 진 사람들과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자 있는 다윗에게 뜻을 함께할 수 있는 400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다윗은 이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세워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사울 왕은 다윗이 민병대를 조직해 전쟁준비를 한다 생각합니다. 더 이상 다윗과 사울 왕 사이에 화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 아둘람 굴로 모여들어 더 이상 안전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킵니다. 

본문 3절입니다.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삼상 22:3)

다윗은 증조할머니 룻의 고향인 모압 왕을 찾아가 그의 가족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숨기 위해 모압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까지 모압에서 머물게 됩니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쳤을 때와는 다릅니다. 그때는 두려움에 휩싸여 무작정 도망치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립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자로 변화되어 갑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뜻이 갓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전달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삼상 22:5)

다윗은 즉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유다 땅으로 돌아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사울 왕의 칼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이런 변화는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 기록한 또 다른 시편인 시편 57편 6절부터 11절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 57:6-11)

다윗은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비록 사울의 군대가 강하다 할지라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앞으로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믿고 담대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보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라….” 이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요새는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피하십시오. 그래야 안전합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에 참된 평화와 안식이 회복될 것입니다. 

다윗을 찾아온 400여 명의 사람은 환난 당하고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 서로를 돌보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교회가  아둘람 공동체를 닮길 소망합니다.

아픔과 상처가 있고, 원통함과 억울함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아래 함께 모여 서로에게 안식처와 피난처가 되는 교회가 되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격려로 회복되고,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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