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7)_워터루제일한인장로교회 김성은 목사              

[설교단상]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21:15-17)_워터루제일한인장로교회 김성은 목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21:15-17   

워터루제일한인장로교회 김성은 목사 

오늘 본문의 내용을 앞 뒤 문맥을 살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 싸아악…. 철썩…. 싸아악….. 철썩 파도가 해변을 때립니다. 이번엔 이쪽을 던져보자….. 어 오늘 왜 이러지? 한 마리도 안잡히네… 저쪽은 어떨까? 마침 저 너머서 고기가 펄쩍 뛰었다 풍덩하고 떨어집니다. 이번엔 저쪽으로 가보자….. 하나둘 셋…. 휴. 오늘따라 왜 그럴까?  어느덧 저 산너머서 희미하게 동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만 거물을 접자. 리더의 한 마디에 모두 아무말 하지 않고 따릅니다. 오늘은 헛고생만 했습니다.  모두 맥없이 그물을 배에다 집어넣는 7명의 건장한 청년들의 모습이 아침 안개 속으로 희긋희긋 보였습니다. 

그들은 다름아닌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또다른 제자둘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그들은 함께 모여있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이런 저런 말이 오고갔습니다. 참 몇 주 전만해도 좋았는데… 인생살이가 일장춘몽이라더니…… 그나저나 우리 선생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실까? 

그러자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하면서 베드로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과거는 과거야! 과거는 과거로 있도록 내버려 둬…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베드로! 어딜갈려고 그래? 라고 물었습니다.  이제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갈래…. 그러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동료들도 나도 갈래, 나도 갈래 하고는 따라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갈릴리 바다라고 하는 호숫가에 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밤은 이상했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피라미 한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물론 피라미는 그물을 빠져나갔겠습니다만…. 그물을 접고 해변으로 점점 가까이 오자 저 멀리서 한 사람이 크게 소리칩니다. 어이 거기. 여보게들… 고기좀 잡았소… 배에 탄 사람 중에 하나가 대답합니다. 한마리도 없네 그려…. 그러자 해변에 선 사람이 외칩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게. 그리하면 고기를 좀 잡을 수 있을게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돕니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리고는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그물이 바위에 걸렸습니다. 꿈쩍도 안하는 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듭니다. 겨우 배 주위로 그물을 당겼습니다만 너무 많이 잡혀 들어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

갑자기 한 사람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요한입니다. 저… 분은… 주님이시다. 왜냐하면 요한에게 번쩍 스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3년 전에 똑같은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 당시 해변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떤 유명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몰려온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배를 조금 띄워 사람들에게 하늘 이야기를 들려준 후 그 때에도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잡지 못한 자신들에게 그물을 깊은 곳에 던져보아라고 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졌습니다. 그 사건이 뇌리를 스쳤을 때 요한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틀림없이 저분은 예수님이시다 소리쳤던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베드로가 고기를 끌어올린다고 벗어 놓았던 옷을 주섬주섬 주어 입더니 갑자기 아무말도 않고 바다로 뛰어내렸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엄을 쳐서 그분이 서있던 곳을 향해 달렸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채로 100야드 정도되는 거리였기에 그물을 끌고 베드로를 따라 육지에 닿았습니다.  

육지에 올라와보니 벌겋게 숯불이 피어있었습니다. 먼저 온 베드로가 타닥타닥 불통이 튀고 있는 불을 쬐며 아무 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그 맞은편에 예수님도 아무말 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엄청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여러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침뱉고 때릴때 사람들이 불을 쬐던 모습과 비슷한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때와 다른 점은 예수님을 정죄하기 혈안이 된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병정들의 채찍 대신에 숯불 위에 생선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떡도 놓여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때 당시를 생각하는 것이 힘겹게 여겨졌는지 고개를 땅을 향해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처량하게도 베드로는 물이 줄줄 흐르는 그 옷을 벗지도 못하고 입고는 한 번씩 부르르 떨었습니다. 

사람들이 주빗 주빗 불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며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너라. 다른 사람이 일어나려는 순간 벌떡 베드로가 일어나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렸습니다. 생각과 함께 몸이 먼저 움직이는 베드로다운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고기를 세어보니 그물에 가득찬 고기가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찢어지지 않은 그물을 끌어올리면서 생각했습니다. 많은 고기를 잡았던 3년 전에는 그물이 찢어졌는데, 신기하게도 오늘은 왠지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예수님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그물들을 깊은데로 던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아무리 당신이 말씀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어부로 살아온 자신보다 잘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틀렸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내가 보여드리지요 라는 마음으로 그물 하나를 깊은 곳에 던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물이 찢어졌던 것입니다. 당신의 말이 옳은지 내 생각이 옳은지 보여주겠다며 대적했던 그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온전한 순종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으라. 그 곳에 모인 제자들 앞에 자리 잡은 분은 그들이 따라다녔던 주님이심이 너무도 확실했습니다. 며칠 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한 분이 어떻게 여기에 있다는 말인가 의심하여 당신이 누군가 물어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2번이나 그들에게 나타나서 자신이 다시 살아났음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도마도 있었습니다. 눈으로보지 않고는,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노라고 했을때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 도마에게 직접 보이셨습니다. 그때 도마가 당신은 나의 주님이 확실하고 당신은 분명 하나님이십니다고 고백했던 도마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해 주었던 주님이 떠나 보이지 않자 고기잡으러 나섰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그 부탁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주님없이 한단 말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고 떠났던 그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말도 않고 먹었습니다. 밤새도록 육체적인 노동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그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머리는 어떻게 이것을 먹어라고 말하지만 혀와 손이 합작하여 생선을 먹어치웠습니다.   또다시 주님은 떡을 가져다가 떼어 주셨습니다. 그들이 다 먹을때까지 손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떻게 했을까요? 숯불위에 구워진 생선과 떡을?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심 조용하게 아침을 다 먹었습니다. 그러자 가만히 시중을 드시던 주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있었지만 베드로를 조용히 응시하여 말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고개를 들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주를 버릴찌라도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마26:33)고 한 아픈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깊은 고통속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십니다” 전에 같았으면 주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가장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박력있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여 그렇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두번째로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불렀습니다.“요한의 아들 시몬아!”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고개를 들자 또 다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네가 나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가페, 즉 나를 조건 없는 완벽한 사랑으로 사랑하느냐? 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네가 나를 아가페사랑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심플하게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똑 같은 대답을 합니다. “주여 당신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을 하는줄 주께서 아십니다.” 필레오는 친구간에 사용하는 사랑의 용어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저의 사랑은 필레오 사랑입니다. 저는 조건적인 사랑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만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히 아가페사랑을 한다고 말씀드릴 수 없고 필레오 사랑을 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또다시 예수님이 3번째 불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한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아들로 불렀습니다. 혼자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사람의 아들 시몬으로 불렀습니다. 연약한 사람임을 알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자신의 의지나 힘으로 할 수 없음을 베드로는 철저히 깨달아야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과 함께 해야 승리할 수 있음을 알고 과신하지 말아야 함을 절절히 마음에 새겨야 했습니다.  

3번째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째는 조금 다르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필레오 사랑으로 사랑 하느냐?”  부르시자 베드로가 근심하였습니다. “Peter was hurt”(요21:17)


불안해진 베드로는 똑 같은 대답을 합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나의 과거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

이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있기 몇 주 전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마 26장, 막14장, 눅22장, 요18장의 사건입니다.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내살이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라고 했습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팔리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는 구약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러나 내가 살아날 것이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버려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 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너도 나도 질세라 모든 제자들도 동일하게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마26:35) 어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주를 사랑하며 따르겠다고 자신한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결코 흔들리지 않음을 목숨을 걸며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잡히시자, 아니 자신을 포기하자 제자들은 뿔뿔히 나 살려라 하고 도망했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의 행동을 눅22:58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잡히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좇고 있었습니다.  멀찍이 라는 단어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베드로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안에 있는 깊은 갈등을 들어보십시다.  한편의 마음입니다. ‘내가 수제자요, 지금까지 예수님과의 정과 의리를 생각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모른다 하리요’’ ‘나는 할 수 있어!  내 위치를 보더라도 끝까지 주를 따라야 하지 마땅해!’

또다른 한편은‘네가 지금 나가면 너도 잡혀죽어. 저들의 고함과 채찍과 비방을 어떻게 해…. 네가 죽으면 너의 부모님은 어떻게 해.’‘그럴게 아니라 조금 따라가 보자’ 어느덧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까지 좇아 갔습니다. 산헤드린공의회가 불법으로 열렸습니다.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에게 한 여인이 말합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베드로가 모든 사람앞에서 엉겹결에 부인합니다.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네. 앞 문까지 나갔습니다. 다른 종이 말합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가 틀림없어. 그때 맹세하고 또 부인합니다. 저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틀림없이 너도 예수당이라 네 말소리가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번 엎질러진 물은 거침없이 쏱아졌습니다. 베드로는 부인을 넘어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합니다. 내가 저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3번을 모른다고 예수님을 부인했을 그때 닭이 꼬끼오하고 웁니다. 그때 예수님의 눈과 자신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그 자리에서 울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살아가는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그 부인하던 자리에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고 밖에 나와 통곡하는 그 자신이 죽도록 미웠을 것입니다. 어쩌면 유다처럼 죽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을 것입니다.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습니다. 어쩌면 술에 취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물었던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쩌면 베드로는 속시원하게 야단치시면 좋았을 것입니다.  몽둥이로 엎어놓고 용서하시기에 충분한 만큼 두들겨 맞았으면 좋으련만….내가 그렇게도 기도하라 했건만 이놈들아, 꼴 좋다하고 야단치셨으면 마음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면서 쬐었던 그 불을 피워놓으시고 아무 말없이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먼저 그들의 배고픔을 채워주셨습니다. 식사하는 것에 수종을 드셨습니다. 그들의 연약한 육체를 아셨습니다. 모든 상황을 통해 주께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배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베드로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베드로야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베드로야 네가 어떤 사람인줄 안다.” 그리고 “네 마음을 안다” 이 부르심이 그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연약한 자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예수께서 알고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내가 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주를 버리다니요 죽을지언정 그런일을 없습니다. 단언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스스로 경험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힘으로는 그 사랑을 이루어갈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힘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적 승리의 삶을 산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함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이끌어 내심

그러나 주님은 베드로가 그것을 깨닫는 것에서 그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찾아오셨습니다.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필레오의 사랑이라도 하느냐? 베드로는 떨림으로 고백합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을 3번 배반한 것을 깨끗이 씻기라도 하듯 3번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3번 주님을 부인한 것을 한 번에 하나씩 3번의 물음과 3번의 사랑함을 주께서 아신다는 고백을 통해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자요 비관자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실패자요 비관자로 낙담한 채로 두지 않았습니다. 치유하셔서 다시 세우시려고 찾아왔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평생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 사랑에 감격하여 다시 일어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리기까지 끝없이 그 사랑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내게 찾아온 감격

갈릴리 호숫가에 있었던 이 사건을 묵상할 때 주님의 음성은 제게 매우 감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님께 순종하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을 치며 죄책감을 느낄 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잘 안다” 

주님을 따르고 싶은 데 자꾸만 순종하지 않는 내 모습에 화가났습니다. 주님 정말 주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넘어집니다. 가슴을 치고 자학하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저를 조용히 갈릴리, 디베랴 바닷가로 인도했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는 줄 내가 안다.”  이제 일어나라.이 말씀은 오늘 제가 좌충우돌하면서도 묵묵히 사명을 좇아가는 이유입니다. 

성도여러분!여러분들 중에 주님께 순종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엉뚱하게 다른 길로 빠지는 자신에게 화가 나시는 분이 있습니까? 열심히 주를 따르고자 하는데도 거듭 넘어지는 자신을 보면서 포기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하지만 주님의 뜻과는 다른 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도저히 주님께 다시 나아와 용서를 구할 힘조차 없는사람은 없습니까? 

그런 여러분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내가 네 모습을 안다. 내가 네 눈물을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도 나를 사랑하여라. 네 발로 다시 일어서라 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를 털고 일어나십시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하며 묵묵히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했던 베드로처럼 여러분도 동일하게 고백하십시오. 

마음의 상처와 죄책감을 치유 받지 않고 살면 여러분의 삶은 자유함이 없을 것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는 많은 생채기를 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잘 알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필요를 알고 있음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은 억지가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에서 우러 나온 사랑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이 고백을 통해 풍성한 삶을 시작하십시오.  이 사랑의 고백을 기초할 때 맡기신 사명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번 한주도 주님의 사랑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해보십시오. 그 사랑으로 인해 풍성한 삶이 될 것입니다. 

Advertismentspot_img
- Advertisment -

최신 칼럼

인기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