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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에베소서 1:3~6)_신용규 목사(밴쿠버 한사랑교회)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에베소서 1:3~6)

신용규 목사(밴쿠버 한사랑교회)

들어가는 이야기

제가 살아가면서 참 부럽다고 느끼는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오전 6시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수영장이 부산에서 제일 큰 수영장이었는데요, 오전 6시 수업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매달 등록일이 되면, 오전 6시 수업을 등록하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수영장 앞에 진을 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침에 수영을 하고 직장생활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었겠지요. 

다행히 오전 6시 수업 등록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 날 수업을 갔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영을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요. 또 다른 하나는 수영장에 레인이 정말 많았는데, 초보자부터 시작해서 20년, 30년을 수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영을 아예 모를 때는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과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수영을 시작하면 네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지요. 자유형을 하는 사람, 배영까지 하는 사람, 평형까지 하는 사람, 접영까지 하는 사람으로 등급을 매깁니다. 

저는 접영을 시작하려다 그만두었는데요.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매일 아침 6시에 수영을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한 달 동안 수련회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고요. 하지만 그 때 알게 된 것은 수영을 20, 30년간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분들이 수영에 대한 기쁨과 효능을 가장 깊이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수십 년간 수영을 하면서 더 힘들이지 않고 빠르고 멀리 가게 되고, 작년과는 달라진 자신의 영법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러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아실 겁니다. <상실의 시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과 <1Q84> 등의 소설로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책 중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리기를 꾸준히 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쓰고 있습니다. 아시분 계시겠지만 그는 소설가면서 지독한 러너로 살고 있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킬로를 달리고요, 마라톤은 물론이고 100킬로가 넘는 울트라 마라톤까지 여러번 완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소설을 꾸준히 쓰는 것과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것에서 오는 모종의 연관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꾸준히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들, 그리고 인생의 교훈과 감동과 짜릿함에 대해 말합니다. 제가 그 책을 다 읽었고 제일 크게 다가온 것은 달리는 기쁨이 대단한 것이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풍경과 체험을 하게 되고, 이것이 인생을 엄청난 깊이와 만족감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여러분은 이렇게 한 가지 분야를 깊이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해보신 경험이 있으세요?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한 가지 관심 있는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서 남들이 다 이해하고 느끼지 못한 경지까지 가 본 일이 있으신지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삶의 난관과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려고 하고 삶에서 오는 이런 기쁨과 만족으로 부요한 인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조금 시도하다가 그만두고, 조금 해보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은 늘 고달픈 인생을 살기 마련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교회의 문턱을 밟았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가보지 못한 경지가 있고, 그 풍성함을 모르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믿음생활을 오래 했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죄의 습관을 이겨내지 못하는 무력감과 패배감이 성도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교회 문화와 예배 형식에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영적인 깊이와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의 대다수를 이루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실 때는 이 정도의 신앙 생활만을 바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는 훨씬 더 깊고 풍성함을 누리도록 작정해 놓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전부가 아니란 얘기에요. 비록 죄를 지어 타락하기는 했지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내어 놓으실 때, 그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될 회복과 영광은 가히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의 저자인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비밀을 가장 깊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의 풍성함, 곧 그 깊이와 넓이와 지극히 큰 것을 보았고, 만졌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바울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타고난 종교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충성한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성실했고, 타고난 인격과 재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택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먼저 바울을 부르시고 그 은혜의 깊이를 맛보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빛으로 인해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의 닫힌 눈을 뜨게 해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 때 아나니아는 바울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주저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9 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사람은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먼저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복과 영광을 알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도 바울의 고생길이 시작이 되는데요.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기도 여러번이고, 곤장을 맞고 죽을 뻔 한 일도 있었고,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파선해서 물에 빠져 죽을 뻔도 하고 뱀에 물리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하기 힘든 고생과 핍박을 받고 살다가 끝내 순교하지요. 하지만 바울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발견한 은혜는 보통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성경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영적인 체험을 풍성하게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경험했던 은혜의 깊이와 깨달음은 망각한 체로 바울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이러한 선교적인 삶,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장차 허락하신 신령한 복에 대한 선이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보다 일찍 체험하고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우리가 아는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상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비결은 그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지적인 동의와 함께 그 은혜의 풍성함과 남다른 깊이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는데, 우리는 바울이 경험한 이 은혜의 깊이를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포기하려고 하니 그게 쉽게 되지 않는 것이지요.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이 신령한 복과 깨달음을 그들도 동일하게 누리고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지금 알고 누리고 있는 것에 더해서 더 깊이 있고 부요한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려고 하다보니까 그 하나님의 경륜과 은혜가 너무나도 깊이 다가와서 찬송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3절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하면서 본문 마지막 6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 목적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에베소서를 읽을 때 바울이 이 감격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경험한 그 은혜의 깊이와 부요함을 제발 이 성도들도 알아야 할텐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이 정말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갑자기 찬송이 터져나오는 경험을 지금 우리가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첫 3장이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과 영광스러운 초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의 3장에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의 3장을 충분히 모르고 뒤의 3장의 가르침을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사랑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과 은혜의 비밀을 저와 여러분이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바울이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은혜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으로 살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이런 특별한 은혜와 깨달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부르신 모든 백성이 이와 동일한 은혜와 영광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 뒷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이 모든 풍성함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곳곳에 숨겨진 장소들이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히든 스팟(Hidden Spot)이 있기 마련이지요.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건축 양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귀족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여행객들은 그런 히든 스팟을 잘 모르기 때문에 흔히 알려진 에펠탑 근처나 유명한 성당 앞과 그 내부만 둘러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요. 유럽에 오래 살고, 그 아름다움과 멋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여행객들이 그저 안타까울 것입니다. 

우리 몸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뇌는 정말 신비한 영역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 안에 있는 우주로 비유되곤 하지요. 최근에 우리 사회에는 뇌과학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그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뇌의 비밀 중에서 가장 흔하게 알려진 사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뇌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똑똑한 천재들도 뇌의 전체 기능 중 10% 이하만을 사용하고 있다고들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뇌를 풀로 사용하게 될 경우, 그리고 10%보다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정말 상상도 못하는 발명품을 개발하고 인공지능 컴퓨터를 능가하는 결과물을 가져올 지도 모를 일이지요.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실 때의 기본 설정값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신령한 복을 우리가 이미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복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영광스러움을 보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며 더 높은 가치와 숭고한 신앙을 위해 기꺼이 살아갈 수 있기 될 것입니다. 

나가는 이야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깨닫고 누릴 수 있을까요? 에베소서식으로 말씀드리자면 먼저는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풍성하게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마음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더욱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소망하고 바라고 기대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고 없고는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고 없고처럼 둘로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색으로 표현했을 때, 이 한 가지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수많은 그라데이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믿음을 가지는 것과 가지지 못한 것에 근본적인 차이는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사람과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전혀 다른 상태에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물에만 떠 있는 상태가 아니라 바다 깊은 수심까지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좀 더 힘을 내야 합니다. 더 깊이 오래 기도해야 하고, 더 말씀을 자주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더 많이 예배하고 더 헌신할 수 있는 자리에 자신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하루에 10분 기도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복이 있지요. 하루에 성경 1장씩 읽어서는 보지 못하는 광경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예배해서는 체험하지 못하는 신비가 있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우리 한사랑교회 모든 성도들이 (저를 포함해서) 이러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령한 복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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