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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단상]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사사기 13장 1~7절)_아보츠포드한인장로교회 이신효 목사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사사기 13장 1~7절)

아보츠포드한인장로교회 이신효 목사

캐나다에 와서 저희 집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A&W 햄버거”입니다. 캐나다에 A&W가 있다면, 미국 서부지역에는 “IN-N-OUT 햄버거”가 있다고 합니다. 미국 3대 버거 프렌차이즈 중의 하나입니다. 햄버거의 맛이 유명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게에서 제공되는 모든 컵과 햄버거 포장지에 성경 구절이 적혀있다는 것입니다. 

탄산음료 컵 밑에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다들 암송하는 말씀이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햄버거 포장지에는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감자튀김이 담긴 종이 용기에는 잠언 24장 16절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려지느니라” 의 말씀이 적혀있습니다. 

올해 초 한국경제신문에 기본에 충실한 특별한 햄버거 가게로 소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설립자를 이어 3대가 이어간 회사입니다.  

“IN-N-OUT”의 이름도 신명기 28장 6절 말씀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 그리고 손자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믿음으로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신앙으로 가업을 이어가는 한 크리스챤 기업의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역사, 사사기를 통해서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13장 1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블레셋의 압제 속에 40년. 오늘 성경을 읽는 우리는 쉽게 읽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40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의 압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1910년 우리는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하여 35년 동안 일제 강점기를 보냈고, 1950년에는 6.25 전쟁의 아픔을 겪으며, 지금까지도 역사적인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질문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사관’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어떻게 알고,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인가? 역사 인식의 문제는 결국 사관의 문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진 역사관은 순환적 역사관입니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그들의 역사는 모든 것을 운명론으로 해석합니다. 17~18세기 계몽주의이후 인본주의 역사학자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을 얻어, 인간이 중심이 되는 역사를 기술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시대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까요?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40년 블레셋 강점기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준 것입니다. 출생과 죽음 사이에 한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40년의 시간 그리고 이방인 블레셋, 누구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었을까요? 블레셋이 워낙 강해져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넘겨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분명하게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그들의 악행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말씀에 “다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동안 하나님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며 잘 살다가 다시 악을 행했다는 뜻의 “다시”가 아닙니다. 이전처럼 하나님 앞에 악을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또 그랬다”는 뜻입니다. 

지난 40년의 블레셋의 압제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저들의 삶의 결과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어떻게 이 세상을 다스리실까요? 

첫 번째는  공의로 하나님은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공의’란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잘 한 일에는 상을 그리고 잘못한 일이 있다면 벌을 받는 것을 보고 우리는 공의롭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수없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누릴 복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반대로 불순종함으로 받게 될 저주도 함께 말씀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In and Out’의 축복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복이 아닙니다. 

신명기 28장 2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내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인앤아웃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앤아웃의 축복만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인앤아웃의 저주”도 말씀합니다.

신명기 28장 19절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공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대로 오늘도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몰랐을까? 이 사실을 알았다면 블레셋의 압제 가운데 그들은 누구의 이름을 불렀어야 할까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사사기에는 총 12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12명의 사사 중에 삼손은 마지막 사사입니다. 첫 번째 사사는 “옷니엘”이었습니다.  

사사기 3장 9절에 옷니엘의 등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부르짖으매…”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웃니엘을 세우심으로 신실하게 반응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사 에훗의 등장 앞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사 기드온의 등장 때도 이스라엘은 7년의 미디안의 압제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방의 압제 가운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어김없이 하나님은 그들을 그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사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사사 삼손의 등장 가운데 그 어디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 누구도 40년 블레셋의 압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해결책도 몰랐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무지해졌을까요? 누군가의 압제를 받고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많은 변화를 가져 올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변화는 결국 의식의 변화까지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40년 즉 한 세대, 두 세대 지나가버렸습니다. 

블레셋은 세 개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물고기 모양의 다곤 신, 풍요와 다산의 신인 아스다롯, 그리고 파리 모양의 우상 바알세붑입니다. 40년이라는 세월은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신 사상으로 형성된 삶의 양식과 문화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심지어 블레셋의 압제 속에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당시 이스라엘의 40대를 이루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까? 자본주의 익숙한 용어입니다. ‘자본주의’란 ‘자본’즉 ‘돈’이 원칙상 사적으로 소유되고 관리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체제가 자본주의입니다. 반대의 개념은 “사회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의 사회적 소유를 기본으로 합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크게 다른 것 같지만, 그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자본 즉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이야기 합니다.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건물주”가 등장한 것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 젊은이들의 이야기. 은행 이자에 원금까지 갚다 젊음을 다 보내겠죠. 정말 마음 아픈 현실입니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요? 지금도 세계열강들은 조금이라도 더 땅을 차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빼앗기지 않기 위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위태로운 국제 정세를 보게 됩니다. 애국 또는 세계 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돈을 사랑하는 인간의 욕심”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어리석은 한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밭에 소출이 많은 것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죠. 그러나 자신을 위해 곳간을 더 크게 짓고 이제 편안히 먹고 마시고 즐기자했던 부자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어리석어 보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에 내 영혼을 하나님께서 도로 찾아가면,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삶을 마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곧 권력이며 힘이 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다음 3가지 삶의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말씀 중심”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교회 중심”입니다. 

블레셋의 압제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인엔아웃의 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공의로 이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저는 담임목사로서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서 무엇을 심고 있을까요? “눈물”을 심고 있습니다. 기도를 심고 있습니다. 목 놓아 성도님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합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불순종의 결과 지금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는 첫 번째 원리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 누구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는 오늘 말씀 속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소라 땅,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에게는 임신을 하지 못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가서 이야기 합니다. 

사사기 13장 3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여호와의 사자를 보낸 분이 누구입니까? 임신하지 못하던 여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하신 분이 누구 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사기 13장 5절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니 

5절 말씀에 아이가 바로 삼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으로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 삼손이죠.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니” 

오늘 말씀 속에 ‘마노아’와 ‘그의 아내’의 특별함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를 찾아 간 사건, 그녀가 아들을 잉태하게 된 사건, 이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이 열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공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부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한치 오차도 없이 공의로 이 땅을 다스리시지만, 구속사역에서의 만큼은 한없는 사랑과 무한한 은혜로 이 땅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는 두 번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없는 사랑과 무한한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하나님은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마노아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사기 13장 4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이것이 마노아의 아내에게 쉬운 일이었을까? 이방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에게 포도주와 독주 그리고 블레셋의 부정한 음식은 이미 그들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시작 된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마노아와 그의 아내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별된 삶을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을 그의 부모의 손에 맡기십니다.

우리가 호흡하고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 땅에서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 역사는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모 된 우리에게도 맡겨주신 자녀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 땅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영혼 구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요?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분별한 삶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없는 사랑과 무한한 은혜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함께 깨어 기도합시다.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 받길 축복합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삶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가정과 교회에 영적 부흥을 꿈꾸며 지금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 때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오늘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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