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설교단상 “잘 살고 계십니까?” 엡 5:15-21_토론토한인침례교회 김범 목사

[설교단상] “잘 살고 계십니까?” 엡 5:15-21_토론토한인침례교회 김범 목사

“잘 살고 계십니까?” 엡 5:15-21

토론토한인침례교회 김범 목사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래 전에 한국의 대통령 후보자중 한 사람이 그 이전 정당에 대한 물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살림살이 쫌 나아지셨습니까? ”물론 이 질문은 나아지지 않은 당시 국민의 정서를 담은 질문이었기에, 온 국민이 기억했던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잘~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죄의 권세로 부터 구원을 받았고 세상의 자녀였으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과 과정도 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무엇인지는 분명히 모르겠지만 이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합니다. 나는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간증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집중하고 바라야 할 일은 어떤 과거가 있는가? 가 아니라 지금 어떤가?가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죄악에 살던 나를 주님이 건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감격으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이런 간증이 진짜 간증 아닐까요? 

구원의 감격도 있었고, 예수님도 만난 사람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과거에 묻어두고 현실은 구원도 십자가도 복음도 믿음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과거에 주셨던 과거의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지금 이자리에 여전히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이전에 한번 경험해본 감격적 사건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날마다 우리의 삶 전체에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도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우리를 여전히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오늘도 능력과 영광이 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이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운 방식의 인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17절에는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땅을 사는 많은 세상에 속한 자들과 엄격하게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모습이냐?, 바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나를 주인으로 삼고 내가 아둥바둥 꾸려나가던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나는 죽고 예수님께서 내안에 사는, 복음의 사람으로 그리고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올 때만 믿음있는 척하고 돌아가서 사는 삶에 전혀 주님이 개입 하시지 못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삶의 전반을 주님께 열어 드린, 그리고 그 주님을 신뢰함으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십자가를 가슴에 담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십자가에 걸 맞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간혹 언론을 통해 이런 저런 이유로 넘어진 목회자들을 만납니다. 또 교회의 장로 집사 권사 직분자들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건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대하게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가슴에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의 가치만큼 살았다면 언론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교회의 모습, 성도의 모습을 볼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은 어떤가요? 

어떻게 잘살고 계십니까?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도대체 어떻게 살면 이 세상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 믿음으로 사는 삶, 십자가를 가슴에 가진,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다시금 그 길을 분명하고도 아주 명확하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은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주님이 지금 당장 오셔서 이 땅을 심판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돈의 논리 앞에 도덕과 윤리는 버려 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초등학교 3학년이 지은 동시를 출간한 회사가 아주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이름이 “잔혹동시” 였습니다. 그 내용은 분노와 폭력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주 단편적인 예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성경의 거룩함은 고사하고 세상의 윤리와 도덕으로만 보아도 아주 끝으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동의 하실것입니다. 

이 패역한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은 자명합니다. 자세히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niv 성경으로 보면 그 뜻이 좀 더 분명하고 자명해 집니다. 

본문 15절의 영문 표현은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 … (중략) not as unwise but wise”라고 표한합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아주 조심하라 고 말합니다. 삶의 방법들에 대한 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how you live,  삶의 방법들 우리가 사는 방식들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 이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조심히 살아야 할까요?

첫째  욕망대로 살면 안됩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는 이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욕망은 육에서 나온 것이고 이 욕망은 우리의 주인 되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썩을 자아를 섬기게 만드는 사단의 속임이 된다는 말입니다. 욕망대로 사는 삶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는 것, 방탕 한 것 모두 욕망대로 사는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에 말하기를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욕심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욕심으로 살고 있는 지, 자세히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내 기도 제목이 내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닌지, 내 삶의 목적이 예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는 지, 아니면 내 욕망인지 우리는 날마다 분별하고 주의 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기쁘게 못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6절은 육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2절~14절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육의 욕망, 먹는 것, 입는 것, 육신의 정욕, 방탕함 술취함을 따라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주의 할 것은 술취하고 방탕한 삶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시선과 인정을 바라는 마음도 욕망, 즉 육의 소욕입니다.   

내가 욕망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수가 있을까요? 내가 드러나는 것을 찾아 다니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나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다. 정말 예수님이 함께 사는 사람은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드러나게 하게 됩니다. 

내가 교회에서 봉사하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어? 그분이 열심은 있는데, 좀 지혜롭게 했으면 좋겠어…’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갑자기 자존심 확 상하면서 ‘아 지가 직접해보라지…’ 이런 마음이 든다면 우리는 매우 높은 확율로 아직 나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듣고 ‘아, 그래요, 나도 그게 늘 마음에 걸려서, 아이구 집사님 그런말 해준사람이 없어~ 집사님이 우리랑 같이 해주면 더 좋을 것같아~’  이런 답이 나오는 사람은 매우 높은 확율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둘째 느낌대로 살면 안됩니다. 느낌대로 사는 삶은 나를 의지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우리는 그야 말로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주님을 어떤 부분에만 주인으로 인정하고 다른 부분들은 우리가 주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나의 주관, 나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불신앙과 우상숭배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느낌, 혹은 감각을 의지하고 살아 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지식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험에 의존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믿음의 성도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한번 읽어 봅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 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 각자의 뜻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주님의 뜻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누구뜻대로 살라는 말입니까? 주님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16절에는 세월을 아끼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성경 niv를 보면 15절과 이어진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15절에는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not as unwise but as wise,” 그리고 16절로 이어서

“making the most of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악하고 악하니까 모든 상황에서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회의 상황, 다시 말하면 삶의 모든 순간, 주님의 뜻을 이해 하고 그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17절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어 집니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님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느낌대로는, 지식으로, 경험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나를 더 의지 하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도마가 그렇지 않았습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이 살아 오셨다고 하니까. 도마는 본인의 지식과 느낌을 의지하여 말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게 가능하냐? 

그러나 주님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요한 복음 20장 27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나를 의지하고 나의 느낌 나의 지식을 앞세운 삶에서 벗어나서 이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느낌과 우리의 지식 우리의 기준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아야 하는 것 처럼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살아야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오직 진리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결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을 결론으로 두고 나머지를 맞추어 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를 결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 말씀으로 오신 주님을 결론으로 두고 우리의 삶을 맞추어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느낌대로, 지식으로, 경험으로 살면 안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언제나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 성령과 동행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왜 그러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나요? 욕심으로 사는지, 내 느낌으로 사는지 우리 스스로 자각 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3장의 선포처럼 의인은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은 선포하기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의 의식으로 우리의 느낌으로 우리의 사고로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린 가만히 두면 철저히 스스로를 의지하고 스스로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이 알려 주셔야 알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5-26절에 예수님께서 성령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 내가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두 성령이 가르치시고 알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할때 비로소 나를 버린 삶,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진 않지만 저는 예수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만이 우리를 예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4절은 담대히 선언 하시기를 “무릇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이십니까?  여러분 다시 묻겠습니다.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의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는 것,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것. 이것이 가능하십니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가능하려면 성령이 친히 일 하시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매주 드리는 예배와 모임을 통해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한 주의 삶을 승리하고 모든 순간을 주님이 주시는 기회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가 우리의 욕심으로 살았다면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우리가 우리의 느낌과 경험, 지식으로 살았다면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이제 성령님을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립시다. 나아가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믿어 매일의 삶이 주님께 영광이 되고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spot_img

최신 뉴스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