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본것 같은 성지순례] 가버나움(Capernaum)

가버나움(Capernaum)

갈릴리 바다 근방의 도시들 중 신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를 선택하라면 가버나움일 것이다. 가버나움은 영어로 Caper-nahum, 히브리어로는 ‘크파르 나훔’이다. 크파르(כּפר)는 마을이란 뜻이고, 나훔(נחוּם)은 자비, 위로의 뜻이 있기 때문에, 가버나움이란 자비의 마을, 위로의 마을, 혹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이다. 여기서 나훔이란 이름이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선지자 나훔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버나움 유적지에 도착하면, 큰 글짜로 표지판이 있다. “Capernaum, The Town of Jesus.” 가버나움이란 도시의 뜻이 나훔의 마을에서 이제 “예수님의 본 동네(마 9:1) 가버나움”으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그가 3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이곳을 선교본부로 택하시고 이곳에서 사셨기 때문이다. 가버나움 유적지에 입장권을 발매하는 곳 좌측 화단에 어느 한 사람이 의자에 누워있다. 캐나다 조각가인 디모디 슈말츠(Timothy Schmalz)가 ‘집 없는 예수님 (Homeless, Jesus)’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곳에 3년을 사셨지만, 뚜렷한 거처가 없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 8:20)

가버나움에 들어서면 좌측편에 현무암으로 되어 있는 1세기 집터들, 1세기 회당 위에 건축한 4세기 회당, 그리고 그 앞에 시몬 베드로의 집터 위에 지은 팔각형으로 된 교회 건물을 볼 수 있다. 가버나움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3천년 전 초기 청동기시대부터였으며, 이 지역은 서쪽 해변 3km에 위치한 “긴네렛” 사람들에 의해서 통치를 받았다.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인구 증가를 가져오는데, 그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로 바벨론으로부터의 유대인들의 귀환에 영향을 받는다.  가버나움은 기원전 4세기부터 3세기, 그리스가 팔레스타인 땅을 통치하던 시기에 점차적으로 “긴네렛”도시를 대체해 나가게 된다. 로마황제 옥타비아누스의 도시 사업 계획 속에서 시리아와 데가볼리로 나아갈 수 있는 고속도로가 놓이게 되었고, 그 교차로에 해당되는 도시가 가버나움이었던 것이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4:13)

성경에도 기록된 것과 같이,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따르면, 갈릴지 해변 주변의 항구도시에는 100척 이상의 어선뿐만 아니라, 관광 보트도 있었다고 한다. 가버나움에는 시몬 베드로의 집 근방으로 2천년 전의 항구가 있다. 이 곳에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인근의 마을들을 다니시면서 전도와 말씀 사역에 힘을 쏟으셨다.

가버나움은 메소포타미아​와 다마스쿠스, 갈릴리 지역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지나 이집트​까지 뻗어 있는 큰 무역로​와 연결​되어 있는 국제 교통망에 놓여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던 이방인들의 도시 가버나움을 복음을 전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그의 선교 전초기지로 삼으셨던 것이다.

가버나움은 호수를 바라보는 수려한 경관과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시원한 휴양지이면서, 또한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시리아로 가기 위한 8개의 도시 중 하나였고, 그 외 7개 의 도시들은 욥바, 가자, 가이샤라, 여리고, 두라, 팔미라 그리고 바대국 접경이었다. 가버나움은 상인들과, 무역상들, 로마로부터 온 수많은 군인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사막으로부터 온 대상들이 지나가는 곳이기에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도시였다.  이곳에는 비아 마리스(Via Maris), 즉 해변길(사9:1)이 지나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이 있었고, 로마 백부장이 통솔하는 로마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얼굴에 자부심이 넘치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태복음 4장 15절 말씀에 갈릴리 지역을 이방인의 땅으로 표시하고 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유대인들이 수천년간 기다리던 메시아였던 예수님께서 이방 갈릴리의 핵심인 가버나움을 그의 사역본부로 정하셨다. 그가 이곳을 통해서 동서남북으로 다니셨고, 또한 동서남북 사방에서 복음의 소식을 듣고 수 많은 사람들이 가버나움을 찾았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장 빨리 그리고 멀리까지 알릴 수 있는 지역, 많은 언어가 교차되는 지역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면서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셨던 것이다. 

그는 병든자, 귀신들린자와 자녀를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셨고, 혈루증으로 따돌림 당하던 여인을 딸이라 칭하면서 자비를 베푸시고, 군대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셨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시는 동안 가장 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지만 경제적 부흥과 이방의 문물에 도취되어 있던 가버나움 도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저주받은 마을이 되어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마 11:23).  

글, 사진_ 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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