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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브런치코칭] 코치 대통령, 링컨

코치 대통령, 링컨

여러분들은 혹시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으며 신실한 기도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미국의 역사에서 코치 대통령으로 기도의 사람이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링컨 대통령을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존경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1809년 2월 12일에 켄터키 주에서 토마스 링컨과 낸시 행크스 링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시절 링컨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 낸시를 통해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던 성경은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닌 기억은 낡은 통나무 집에 앉아서 그에게 십계명을 가르쳤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낸시는 링컨이 9살이 되던 해 우유병으로 34세의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교육을 잘받지 못한 청년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는 주로 가게 점원으로 일했으며, 한때는 선원으로 배를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도 링컨은 늘 책을 가까이하는 성실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고 그들의 권유로 그는 주의회 선거에 입후보했으나 보기 좋게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경험도 재력도 학력도 없던 그가 선거전에서 승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후 그는 변호사 공부에 몰두하여 불과 2년 만인 1836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일리노이 주의 주도(州都)인 스프링필드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윌리엄 H. 헌던과 함께 동업하면서 명성을 쌓게 되었고 주지사나 순회 판사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정직함과 공정성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그는 1834년부터 1840년까지 일리노이 주의 휘그당 의원으로 네 번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850년부터 의회에서는 노예 제도로 많은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상원의원 더글라스는 순회 연설을 하며 노예제도를 지지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맞설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링컨이 더글라스의 연설의 응답자로 나섰습니다. 링컨은 하나님의 공의함에 기초하여 흑인과 백인의 평등함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인에게 자유를 준 것처럼 흑인에게도 자유를 주셨습니다.”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통해 링컨은 자연스럽게 공화당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0년 11월 6일 대통령 선거일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국가적인 선거였습니다. 링컨, 더글라스, 브렉켄리지와 벨 이렇게4명이 후보였습니다. 투표 결과는 링컨의 당선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변호를 맡아주었던 정직한 링컨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취임 몇 주전 링컨의 생일날 그는 연설문의 마지막을 이렇게 썼습니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저는 전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 제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사실만 말했습니다. 몇 마디 안되는 말로 제게 부여된 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취임 다음날부터 링컨은 십자가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10개의 주가 연합에서 이탈을 하고 무기들이 남부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요새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란 중대한 결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무서운 일을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부는 먼저 공격하여 요새를 점령하였습니다.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전쟁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전쟁은 링컨이 취임한 년인 1861년부터 시작하여 1865년 4월 14일까지 5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사상자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링컨은 전쟁 때마다 백악관을 서성이며 밤에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옵서소. 전쟁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을 지켜 주시옵소서!’ 링컨이 수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끝까지 한 것은 흑인에게 자유를 주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노예제도가 하나님앞에서 범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그는 분열된 미합중국을 구하였으며 흑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1865년4월14일, 위싱턴 포드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의 총에 맞고 운명하게 됩니다. 그는 암살자에 의해 최후를 마쳤지만 그의 목자의 심정과 기도로 흑인에겐 자유를 주었고 미국의 분열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링컨이 하나님을 사랑했을 때 하나님은 링컨의 생각과 사상 가운데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뜻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링컨을 통해 흑인에게 자유를 주셨고, 또 분열된 미국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링컨은 흑인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명성이 점점 올라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목자 대통령이었습니다.

링컨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대통령의 직위에 까지 올랐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주인공이었고 권력자로서의 대통령 직위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섬김의 사역자로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재임시절 밤늦은 야경에도 백악관에서는 하나님께 향한, 겸손하고 간절한 기도의 흐느낌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아브라함 링컨 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보석이었기에 우리의 영혼을 감동시킵니다. 실로 인생 최고의 코치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210년이 흘렀지만 링컨은 전 세계인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니, 그는 미국 대통령 역사상 가장 코치에 가까운 정치인이었습니다. 경청하기를 즐기고, 복음이라는 신앙을 코칭적 접근을 통해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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