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본것같은성지순례] 모레산(Hill of Moreh)

모레산(Hill of Moreh)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 7:1)

기드온과 삼백용사가 진을 쳤던 하롯샘 주위에는 텔 이즈르엘이 있고 그곳에 아합 왕의 궁전과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다. 하롯샘, 텔 이즈르엘 궁전터, 나봇의 포도원으로부터 북서쪽으로 30분간 23Km를 차로 달리면 모레산에 도착할 수 있다. 한국같이 장대하고 높은 산을 많이 경험한 사람의 시각으로 모레산을 보았을 때, 이곳은 산이라기 보다는 언덕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사울이 죽었던 길보아 산과 다볼산 사이에 위치한 모레언덕은 생긴 모습이 헐몬산과 쌍둥이처럼 닮았기에, 십자군들에 의해 작은 헐몬(little Hermon)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모레언덕의 북쪽과 서쪽에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나인과 수넴이다. 나인은 신약, 수넴은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신약 시대에서는 예수님이 나인을 방문하셨고, 구약에서는 엘리사 선지자가 잠시 수넴에 머물렀었다. 두 분의 위대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있을 것을 예상한 듯, 이 언덕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모레(מוֹרֶה), 즉 “선생님”이다.

텔 수넴(Tel Shunem)

서기 4세기 교회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세비우스에 따르면, 수넴에 엘리사의 집이라는 곳이 있었고, 성지 순례자들이 그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는 모레 언덕의 서쪽 끝자락에 술람(Sulam)이란 아랍 마을이 성경 시대의 수넴으로 여겨지고 있다. 술람 마을의 중앙에 텔 수넴이 위치해 있고, 현대 무덤을 포함한 그 규모는 2.5 헥타아르에 이른다.

엘리사의 사역무대인 이즈르엘 평야 근방에 위치한 수넴은 그가 쉬어 가던 장소였을 것이다. 남편이 늙은 관계로 자식이 없었던 여인은 엘리사의 사역을 물심양면으로 잘 도왔던 것 같다. 사역으로 지친 엘리사를 위하여 자신의 집에 방을 하나 마련했고, 선지자를 돕던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엘리사의 예언(왕하 4:17)은 그대로 성취되었다. 어느 날 아이의 머리가 아파 수넴 여인은 갈멜산까지 엘리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엘리사가 수넴으로 왔을 땐 이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엘리사가 죽은 아이를 자신의 침상에 눕히고 여호와께 기도하니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게 되었고, 엘리사가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소식은 수넴 동네에 퍼져 오래도록 전해졌던 것이다.

나인(Nain)

나인은 모레언덕(Mt. Moreh)에서 북서쪽 언덕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탁 트인 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지 이즈르엘 평야가 보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랑스러운”이란 뜻의 마을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고 탈무드에서는 말한다. 다볼산에서 3km남쪽에 위치한 나인은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셨던 세명의 사건 중 첫번째 기적의 장소다.

현재 나인을 방문하면 성경의 사건이 일어났던 근방에 세워진 기념교회들 중 가장 가난하고 볼 품 없는 교회가 있다. 이 장소에 대한 첫번째 기록은 서기 380년 에게리아(Egeria)란 로마의 성도에 의해 쓰여진 성지 방문록이다. “나인이란 마을에는 과부의 집이 있었던 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 과부의 아들이 어느 날 죽었는데 장사를 지내러 가는 도중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다. 그리고 그를 묻으려 했던 장소는 아직까지도 존재한다.” 현재 나인교회는 고대 나인교회의 흔적 위에 1880년에 세워졌다. 과부의 집이었던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500미터 거리의 언덕 측면에 고대 무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아마도 장례의 행렬은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게리아의 기록과 같이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인이란 성으로 가까이 가셨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마을 어느 과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례 행렬이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세 부류가 있었는데 그들은 고아, 나그네 그리고 과부였다 (신 10:18).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아들도 죽어버린 과부는 그 사회에서 마지막 보호장치가 사라져버린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다. 즉 나인성 과부는 불쌍한 자들 중에 더욱 불쌍한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 과부의 아들이 담긴 관은 나인성 성문 밖에 장사될 예정이었던 것 같다. 이때 아마도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약 8시간 이상을 걸어 이곳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성문을 통과해 묘지로 향하는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울지 말라 하시고 그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

그러자 그 청년은 일어나서 앉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이렇게 외쳤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눅 7:16).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죽음 가운데 있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게 하셨다.

글,사진_이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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