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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헌 박사의 일산 홀트장애인복지 센터 방문기, ‘우리는 늘 빚진 자’ 한 미국인 가족의 대를 이은 기독교적 헌신

이규헌 박사의 일산 홀트장애인복지 센터 방문기

‘우리는 늘 빚진 자’ 한 미국인 가족의 대를 이은 기독교적 헌신

2024년 캐나다 혁신적 제품으로 선정된 마라네츄럴 칼슘제를 개발한 이규헌 박사가 한국을 방문하며, 이국땅에서 고아와 장애우들을 보살폈던 말리홀트 묘소를 찾은 추억을 나누었다. 아래의 글은 이규헌 박사의 기행문 형태의 소감문으로 전문을 나눈다.  

60, 70년대를 거쳐간 이들은 가난과 굶주림, 보리고개란 단어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이전의 6.25 전쟁으로 잿더미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의 가난과 배고픔은 이루다 말로 표현을 못할것 입니다. 여기에  남겨진 고아들을 대를 이어 보살핀 한 미국인 가족이 있습니다. 바로 홀트 가족이지요.

중국황사의 뿌연 하늘이 일상화되어 잇는 서울을 오랫만에  방문하여 일산에 잇는 말리홀트 묘소에 갔었습니다. 거긴에 말리 아버지 해리홀트 어머니 버다 홀트도 함께 묻쳐 있었습니다. 2013년 말리홀트가 다발성골수암으로 투병 하실때 인연이 되어 건강히 회복해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한국어로 “지난번 혈액검사 정상으로 나왔어요”하며 밴쿠버 방문하셨을 때 반갑게 뵙던 기억과 2019년 다시 독한 항암 부작용으로 안타깝게 소천 하신 후 뵙지 못해 묘소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미혼의 젊은 나이에 낫선 먼 이국땅에서 고아와 장애우들을 보살피는 말리홀트를 지켜보며 빚진자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소아과병원을 은퇴하시고 이 일에 함께 하신 조병국 원장님(91세)도 오랫만에 너무도 반갑게 만났습니다. 조 원장님은 평생을 헤어파마 한번 안하시고 쪽머리만 하신 세상과 타협을 모르고 올곧은 삶을 사신 기독교인이십니다. 

말리홀트 전 이사장님에 대해 지난 얘기들을 나누며 중단 할수 없는 얘기거리로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연로하시어 오랫동안 의자에 앉아 계시기조차 힘드셨지만 시간을 함께 해주셨고 사진도 함께 찍고 언제 또 만날수 없는 기약을 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사회로 좀 늦으신 말리홀트의 막내동생인 올해 81세로 린다홀트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한 가족이 한 평생을 전쟁의 잿더미위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던 한국에서 평생을 고아와 장애우를 위해 미국 오레곤에서 가족을 떠나 이곳 일산 홀트 복지관의 말리홀트가 사시던 작고 소박한 집에서 잠시 담소를 나눴습니다. 다정한 우리 시골 할머니처럼 느껴졌습니다. 동생 린다홀트를 뵈니 오래 전 만난 말리홀트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홀트 가족 묘소까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가며 이런저런  대화도 나눴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딸이 묻친 묘소 앞에서 큰 빚진자의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주님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제 그 긴 세월들이 너무 짧게만 느껴지는 나이가 됐습니다. 

나는 그 짧은 몇시간동안 이 땅에서 그 사랑을 실천한 이 헌신자들의 길고도 짧은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시간을 이곳 일산에서 잠시 보냈습니다. 이창신 홀트장애인복지원 원장과 장애인 병동을 돌아보면서 이 땅에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들을 지켜보며 가슴 한편의 구석에서 슬프고 아린 응어리가 내 입안의 마른 침을 삼키게 했습니다. “눈 먼 소경은 누구의 죄로 인함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함이라”

이들을 위해 헌신한 홀트가족에 우리는 마음 빚을 진 빚진 자들이 되었음을 또 한번 느끼게 했습니다. 일산, 서울의 높이 올려진 무수한 콘크리트 숲(?)을 지나치며 그 전쟁의 잿더니를 이런 빌딩숲으로 만든 한국이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 대국이 되었지만 부익부 빈익빈의 격차는 커지고 사랑은 메말라 가는중에 여기에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시어 주님께 감사헸습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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