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t_img
Home 교계뉴스 캐나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밴쿠버밀알러 김예빈 (2025-04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밴쿠버밀알러 김예빈 (2025-04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2025년 10월 1일, 1박 2일간의 밀알러 가을엠티에 참석하기 위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뚫고 겟세마네기도원 (Gethsemane Prayer Garden Society)에 도착했을 때, 물론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 켠에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존재했습니다. 올해 초 밴쿠버밀알선교단 사랑의교실에서 봉사를 시작하며 밀알러가 된 이후로 봉사자들인 밀알러들끼리만 모이는 엠티에 가는 일이 처음이었던 것도 한 몫했지만, 이 감정의 실타래를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시작점은 그보다 훨씬 이전, 저의 어린 시절부터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뇌성마비로 선천적 장애를 가진 장애인입니다. 비장애중심주의 세상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수자들 사이 소수자들이 으레 그렇듯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츠러드는 법을 가장 먼저 체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거슬리지 않게, 방해되지 않고, 뒤쳐지지 않게’, 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살피고, 맞추고, 조절하고, 물러서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다른 사람들과 저 사이에는 벽이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노골적인 배척이나 무시는 아니지만, 상냥함과 호의 속에서도 느껴지는 넘을 수 없는 벽.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고, 저는 괜찮아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신경써야 할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학창시절 반 친구들이 체육활동을 하는 동안 혼자 교실에 남아 그림을 그려도, 대학교 새내기 시절 들어가고 싶었던 연극부에 들어가지 못해도, 입구 앞 계단과 좁은 통로 때문에 관광을 하며 구경해보고 싶은 예쁜 가게를 지나쳐야 할 때도 그러려니 하며 내심 씁쓸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장애인들의 존재와 존엄을 염두에 두고 지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제가 가진 저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누르고, 깎고, 버리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관성이 되어 피부에 달라붙어 있는 듯한 그 곤두선 감각에 지레 피로해져서는, 엠티에 가기 전날 엄마에게 장난 반 진심 반 투덜대기도 했습니다. 

“엄마, 나 그냥… 가지 말까? 눈치 보이고… 불안하고…” 

제 말에 엄마가 답했습니다.

“그래도 다녀와. 하나님이 언제 어떤 길을 어떻게 열어주실 지 모르는 거야.”

어쩌겠습니까?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엠티인데 가야죠. 책임감이 앞서 갔지만, 지금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때 엄마 말 듣길 참 잘했다.’ 라고.

찬양과 기도, 설교가 끝나고 단체 게임 시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밀알러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양쪽 팀이 상대팀 팀원들의 등에 붙은 이름표를 떼어내 득점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저는 워커 (보행기)를 끌고 다니기에 ‘이번에도 역시나 활동에서 빠져야 하나, 게임 준비로 한창 정신없는 듯 보이는 예형, 민형 리더님께 가서 말씀을 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리더님들 중 한 분이 풍선 두 개를 불고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뭐지…? 이름표를 이미 다들 붙였는데?’

의아해서 여쭤보니 미소와 함께 돌아온 대답은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였습니다.

그 풍선들은 각각 저와 신체 장애를 가진 또 한 명의 밀알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풍선을 지키고 있으면 나머지 팀원들이 상대 팀원들이 그것을 터뜨리지 못하게 방어하도록 게임의 규칙을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팀의 일원으로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자들을 서로 기대어 만든 요새에 들어간 채 열정적으로 눈을 빛내며 마치 골키퍼가 골대를 수비하듯 저를 지켜주는 밀알러들의 모습이 퍽 귀엽고 즐거워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이날 밀알러로서 이들과 함께하며 느낀 감정은 꼭 서늘한 겨울 끝에 기분 좋은 봄 햇살 한 자락을 마주했을 때 같았습니다. 기쁨과 희망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밀알러로서의 저는 소외되지 않아서 기뻤습니다. 어쩔 줄 몰라 난감해 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며 나는 괜찮다고 웃어넘기지 않아도 되어서,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움츠러들지 않고 다른 이들과 뒤섞여 무언가를 함께하는 것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이상으로, 아니 어쩌면 더 크게 느낀 것은 희망입니다. 밀알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주신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세상은 장애인을 볼 때 그 사람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한계와, 심지어 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가치까지도 너무나도 쉽게 단정짓고 폄하합니다.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고 혐오하며, 꺼리고 외면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연대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탓이겠지요. 그러한 잔인함이 세상의 이치라며 허물어지기는커녕 더욱 견고해질 때마다 지치고, 서글프고, 분노스럽고 원망스러워 숨이 턱 막혀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만큼 그에 끊임없이 맞서는 선한 이들 역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곤 합니다. 저에게 있어 이번 밀알 엠티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편견 너머를 보지 못하고 꺼리고 외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누구도 소외되는 일이 없게끔 풍선을 준비하고 의자들로 요새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애는 수치스러운 결함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사랑할 것을 격려하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뜻을 따라 만들어졌기에 똑같이 귀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장애를 가진 한 사람으로서, 밀알 엠티에 참석하며 특별히 더 기억에 남고 감사했던 것은 비장애중심주의 (ableism)에 맞서는 기독교적 관점과 더불어 장애학(disability studies)적 관점까지 함께 전달함으로써 교회 내에도 예외없이 뿌리깊게 박힌 비장애중심적 사고를 타파하는 데 힘쓴다는 점이었습니다. 장애의 사회적 모델 (social model of disability)은 현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의학적 모델 (medical model of disability)과는 다른 축을 이루고 있는 개념으로,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혹은 정신적 결함으로만 보고 치유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 구조적 차별과 억압, 배제도 염두에 두고 이를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꼬집는 개념입니다. 

장애인들이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평등과 자유를 알리고, 인식 개선을 위해 힘쓰는 밀알에 속한 사람들을 보며,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이 더욱 아름답듯이, 악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가운데서도 이러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통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밀알러들이 그 이름이 가리키는 성경 구절과 같이, 지금의 작은 노력들 하나하나가 훗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이 세상에 무수히 맺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밴쿠버밀알러 김예빈 (2025-0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