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하우스의 영성의 집을 세우게 된 배경
저는 토론토 인근 옥빌에서 캐나다동신교회를 개척하여 28년을 목회하고, 무스코카(토론토 북쪽 200Km 숲속)에 ‘영성의 집’인 <로뎀하우스>를 마련했습니다. 작년 여름인 2025년 7월초에 인구 17,000명이 사는 작은 도시 브레이스브릿지(Bracebridge)에서 묵상과 노동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친 자연적인 텃밭을 일꾸고 수도원을 가꾸며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웃의 인적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이곳에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를 묵상합니다. 오래전부터 <로뎀>이라고 이름을 묵상해 왔습니다. 로뎀의 속뜻은 ‘빗자루’ 라는 의미입니다. 빗자루는 천하게 보이지만 매우 요긴합니다. 이는 흩어진 쓰레기를 쓸어담는 도구입니다. 엘리야가 지친 것은 쌓인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입니다. 어느날 제가 사용하던 진공청소기가 밧데리가 남아있는데 멈췄습니다. 신호를 보니까 필터에 먼지가 너무 많이 끼어 공기 순환을 할 수 없다는 표시였습니다. 붓솔로 먼지를 털어내고 물로 씻었더니 강력한 흡수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로뎀하우스>는 상처난 마음을 쓸어담고 위로의 숨결이 흘어나오게 하는 숲입니다. 삶과 사역을 통해 받은 모든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요즘은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들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절대적인 권위가 무너지고 수평적이고 상대적인 가치가 진리로 득세하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점점 독선적인 분으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마치 11-13C 중세 카톨릭 교회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총체적인 위기를 맞는 1,000년 전의 모습과 비슷한 양상을 띕니다. 그때 혜성같이 등장한 구원자가 성프란체스코의 수도원 운동이었습니다. 부요롭고 화려한 교황청에 비해 그의 수도원은 청빈과 겸손, 영적 수련을 통한 하나님과의 일치, 성경 묵상과 나눔을 통한 참된 안식과 평화를 얻는 곳입니다. 그가 지친 영혼과 교회를 만지는 <긍휼>을 통해 중세교회를 살렸고 종교 개혁의 불씨를 일으켰습니다.
1986년 장신대 신대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저의 목회 40년은 줄곧 ‘경건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조용한 곳에 ‘영성의 집’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도시에서만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이주 해보니 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일상의 목회에서 빠져나와 기독교의 본질을 찾는 것입니다. 작금의 기독교가 어쩌면 한쪽으로 기울어저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기독론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신학인 ‘특별 계시’를 강조하다보니 ‘자연 계시’를 다루는 창조신학을 소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오래 할수록 자연스로움을 잃어가며 괴물로 변한 내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뎀하우스>에서 자연과 함께 수개월을 보내면서 조금씩 내 안에 창조의 형상을 닮아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오랫동안 분주한 도시에 갇혀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 세상에 흉흉한 파도에 밀려 균형을 잃고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처럼 되었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외면하고, 교회도 상처받은 이웃과 세상과 분리되어 기독교라는 거대한 함선은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영혼의 쉼터와 자연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로뎀하우스>는 숲 속에 펼쳐진 묵상의 길로 16개의 코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희 <로뎀하우스>는 영적 성찰과 내면의 쉼을 위한 숲속의 안식처입니다. 이곳은 고독이 고요로, 상처가 치유로, 불안이 평안으로 바뀌는 공간입니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남으로, 삶의 여정을 새롭게 이어 갈 수 있도록 돕는 치유의 자리입니다. <로뎀하우스> 에서의 일상은 기도가 노동이요, 노동이 곧 기도라는 뜻을 따라 개인 혹은 공동 기도와 노동, 잔잔한 산책과 묵상, 깊은 영적 독서와 성찰, 작업치료와 인지치료, 예배와 나눔으로 이루어집니다. 나의 거친 숨이 숲의 숨결과 더불어 평안해지며, 16개의 묵상코너를 도는 동안 영혼의 회복과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