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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들목 칼럼] 어떻게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노후대책을 넘어 영원대책

어떻게요?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노후대책을 넘어 영원대책

영어단어 중에 frenemy란 신조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friend와 enemy의 합성어입니다. 친구이면서 적인 관계. 이런식의 표현을 영어로는 oxy-moron(예리한-똥멍충이)이라고 하고, 우리는 ‘형용모순’이라 합니다. 몇가지 대표적인 형용모순을 들어보면 가령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소리없는 아우성. 동그란 삼각형. 뜨아(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차가운 핫쵸코, 술은 마신 건 맞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등등..

눅 16장에 나오는 비유 속 청지기는 명백하게 불의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불의한-청지기’, 역시 일종의 형용모순이죠. 청지기에는 선한이 붙거나 충성스러운 등등 이런 긍정 형용사가 붙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은 불의한 청지기라 불립니다. 네, 그는 분명 불의한 자입니다.

하지만 모순되고 불의한 청지기의 삶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의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입니다. 그는 공금횡령을 하다 걸렸습니다. 주인은 내 친히 몇일 후 회계감사를 철저히 하겠노라 공언합니다. 그 청지기는 깊은 고민 속에 빠집니다. 그의 고민은 이제 내가 짤릴텐데 나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미래 혹은 노후 대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비상식적 장면입니다. 공금횡령하다 걸린 그는 당연히 가장 먼저 철컹철컹 수갑찰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이 자비하신 분이심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회계감사일까지는 아직 몇일 남은 어느날 그의 머리속에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얼마전 인상깊게 보았던 TV 속 기업광고 하나가 생각난 것입니다. “사람이 미래다.” 그는 결심합니다. “그래, 결심했어. 사람이 미래지. 사람에게 투자해야겠어.”

그리고 카톡단톡방을 열어 주인의 집에 빚진 사람들을 다 초청해놓고 긴급공지를 띄웁니다. “내일 점심 때까지 다 모일 것. 안 오면 반드시 후회할 만한 엄청난 선물을 줄 것을 약속함.” 다음날 빚진 자들이 오자 그들을 앉혀놓고 그는 그들이 상상도 못했던 기가막힌 호의를 한사람 한사람 모든 이에게 마음껏 베풀었습니다. 사문서 위조 및 회계 장부조작도 마다하지 않으면서까지 말입니다.

그날 그가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탕감해준 돈은 존 맥아더 목사님의 계산법에 따르면(참조 책:하나님나라의비유) 각각 노동자의 대략 1년 반치,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매우 큰 액수였습니다. 주인의 집의 것을 불의한 방법으로 챙기던 탐욕스러운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통큰기부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단 한가지의 이유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자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짜피 자기는 곧 쫓겨나고 그러면 다시는 자기가 만질 수 있는 돈이 아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비유 속 불의한 청지기와 오늘 우리의 공통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도 그 청지기처럼 지금 사는 이 땅이란 집에서 머지않아 쫓겨날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청지기처럼 다음 삶의 스테이지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그의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미래, 아니 영원을 준비하는 영원한 실업대책은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만큼 지혜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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