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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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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이야기] 욥기의 희년과 하나님 나라(4)

욥의 고통 가운데서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하나님의 침묵이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부르짖음에 대답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호소하는 자신을 하나님이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괴로워한다(욥 30:20). 

그런데 욥은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울었고, 빈궁한 사람들을 위해 근심했다고 말한다(욥 30:25). 이것은 욥이 얼마나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욥은 자기 종들이 자신과 더불어 쟁론할 때 그 종들의 권리를 지켜주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욥이 자기 종들이 자신과 더불어 쟁론하는 것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쟁론하는 그 종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희년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욥 31:13-15, “13.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그런데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욥의 시선이 하나님의 법정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욥은 장차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법정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정의로운 재판을 받을 것을 생각하면서, 이 지상에서 종들이 자신과 더불어 쟁론할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 종들의 권리를 지켜 준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욥이 자신과 종들을 모두 한 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고백한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모태에서 만드신 것처럼 종들도 만드셨기 때문에 종들도 존귀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평등 의식이다. 욥은 종들을 볼 때 그냥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본 것이다. 이것은 욥이 매우 깊은 신앙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욥은 자기 눈에 보이는 종들 바로 앞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시고 자기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면서 그 하나님을 통해 종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욥의 영혼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눈으로 종들을 보니, 그 종들은 그저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로 보이는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존귀한 존재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들을 존중하여 그들이 자신과 더불어 쟁론할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들의 권리를 지켜 준 것이다. 

이어서 욥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대할 때에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했다고 말한다(욥 31:16-23). 이것은 종들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욥은 금이나 순금 같은 재물을 소망하거나 의지하며 기뻐하는 것은 재판에 회부될 죄악으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한다(욥 31:24-28).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욥이 소망하고 의지하고 기뻐한 대상은 재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의미이다. 

 또 욥은 자기 장막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주어 배부르게 했고, 나그네들이 노숙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한다(욥 31:31-32). 이 역시 희년 정신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세 친구와의 논쟁에서, 욥은 자신이 토지 불의를 행했다는 엘리바스의 정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하면서 그의 항변을 마무리한다. 

욥 31:38-40, “38.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 39.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40.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고 욥의 말이 그치니라.”

38절, “만일 내 밭이 나를 향하여 부르짖고 밭이랑이 함께 울었다면”에서, 밭이 부르짖고 밭이랑이 운다는 것은, 땅을 빼앗긴 힘없는 사람들이 부르짖고 울 때 그 땅도 함께 부르짖고 운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39절,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에서,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 땅을 빼앗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땅을 빼앗았을 때 값없이 그 땅의 소출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한다는 것은 문맥에 의하면, 타인의 땅을 빼앗을 때 그 땅의 임자를 죽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짓은 “밀 대신에 가시나무가 나고 보리 대신에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욥 31:40)한 저주받을 악행이다. 다시 말해서 욥은 자신이 타인의 땅을 빼앗지도 않았고 그 땅의 임자를 죽이지도 않았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 8; 2:3)라고 욥에 대해 세 번이나 반복되는 욥기 기자와 하나님의 평가를 생각할 때, 그리고 하나님이 세 친구에게 노하시면서 그들이 우매했고 욥을 비판할 때 말한 것은 옳지 못했다는 하나님의 판결을 고려할 때(욥 42:7-9), 욥이 토지불의를 비롯한 악을 자행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는 엘리바스의 정죄가 잘못되었음을 확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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