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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그런뜻이었구나]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절망에 빠집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 것이라는 그의 희망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과 함께 산산조각 납니다. 그녀의 임신이 혼인 관계 밖에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당황했고 깊은 실망과 배신감을 느낍니다. 만일 그가 부도덕한 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임신 소식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기록한 마태는 “의로운 사람인 약혼자 요셉”이라고 그의 순결성을 밝힙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간음한 여성이나 혼전 임신한 처녀는 돌로 쳐서 사형시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결정으로 마리아는 공개적 수치를 당하고 죽을 수가 있습니다. 심각한 딜레마와 함께 그의 마음 속은 격렬한 갈등이 휘몰아쳤습니다. 마태는 그의 마음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약혼은 결혼 과정의 첫 번째 단계였기 때문에, 약혼을 파기하는 것은 곧 이혼으로 여겼습니다. 

   약혼과 함께 꿈에 부풀었던 그의 삶은 이제 어둠으로 바뀝니다. 그는 절망과 혼란스런 상황에 직면합니다.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잠자리에 들었을 때,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위로가 되는 신비스런 일을 알립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의 임신은 다른 남성이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조상들로부터 후손들에게 내려오던 옛 예언을 덧붙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저하지 않고 천사의 지시에 순종합니다. 요셉이 자신의 생각을 바꿔서 천사의 말에 따라 임신한 마리아를 데려 온 것은 순종의 아름다운 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요셉이 아직 약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마리아를 데려 오는 행동과, 또 천사가 인용한 예언의 내용이 처음 등장한 시기를 살펴보면 순종 그 이상의 암시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분명히 예수님의 정체성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인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낳게 되는 아들이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는 언급은 B.C. 700년,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의 아하스 왕에게 한 말입니다.  아하스가 20살에 왕 위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람과 에브라임 군대가 연합하여 유다를 침략한다는 소식이 그에게 들립니다. 유다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 중 하나에 직면합니다. 상황이 너무나 무서워서 그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바람 앞에 흔들리는 숲의 나무들처럼 흔들렸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아하스 왕은 적들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도시의 물 공급을 점검하러갔습니다. 이 때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를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을 명령합니다. “너는 조심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라. 두려워 말라. 그들이 분을 낸다고 해도 겁먹지 말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켜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셨던 약속이 천사가 요셉에게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히브리어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가 처음에 누구의 아이를 염두에 두었는지에 대해 약간의 논쟁이 있었지만, 어쨌든 태어날 아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어둠과 비관적인 상황을 흩으셨음을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놀라운 확신의 말씀으로 그들은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이 사건은 다음 세대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의 목적을 전했을 때도 오래전 아하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정치적 상황은 깊은 어둠이었습니다. 그 땅은 로마제국 압제자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잔인한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헤롯의 돼지가 되는 것이 헤롯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속담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가족을 죽이는 것에 대해 결코 두 번 생각하지 않을 만큼 잔인했습니다. 종교적인 상황도 말할 수 없이 슬펐습니다.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의 어떤 말씀도 백성들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당에 선지자는 없고, 단지 랍비들의 가르침은 가느다란 속삭임임에 불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그 비참한 상태로 내버려 두신 것같았습니다. 

   예수님 탄생하실 때 신앙은 쇠퇴하여 그 땅에는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과 처절한 억압과 깊은 혼란 가운데 천사는 그 약속을 상기 시켰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헬무트 (Helmut Thielicke)의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의 최전선 참호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버림받은 상태, 인간의 지옥 같은 고통, 굶주림과 목마름의 괴로움을 함께 나누십니다.”  마태는 자신의 글에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 자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귀신들린 자와 함께 하셔서 그들을 해방시키시며, 심령이 가난한 자와 함께하셔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근심에 눌린 자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고, 문둥병자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병든 자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고치며, 배고픈 자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먹이시고, 장애인과 함께하셔서 그들을 회복시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 약속은 우리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변함 없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뜻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 와 계십니다. 우리가 아플 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배고플 때 빵을 공급해 주시며, 눈에 눈물이 흐를 때 위로하시며 닦아 주시며, 어둠에 있을 때 밝은 곳으로 이끌어 내십니다. 다윗의 경험담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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