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칼럼아! 그런뜻이었구나 “정욕,” 죽음에 이르는 죄 (6)

[아, 그런뜻이었어요!] “정욕,” 죽음에 이르는 죄 (6)

“정욕,” 죽음에 이르는 죄 (6)

성적 욕구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는 예로부터 두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성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다”입니다. 졸음이 오면 잠을 자고 싶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싶은 것처럼 성행위는 자연 발생적 욕구라고 생각합니다. 인류가 성장하고 발전하며 쾌락을 얻는 이 자연 욕망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성적 욕구를 느낄 때마다 성관계를 맺는 것은 자연 현상인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음식을 통해 새로운 미각을 추구하듯 변태적 성행위는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성욕을 억압하는 것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부당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성행위는 천박하고 더러운 짓으로 인간 종의 번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필요악이다”입니다. 이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은 개인과 사회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불행을 일으키는 요인이기 때문에 금욕적 생활을 강조합니다. 어떤 신자는 기독교는 육체적 쾌락을 본질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욕은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고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성적 욕망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성은 아름다운 것이며 거룩한 것입니다. 결혼 관계 속에 허락된 성은 개인에게 행복과 성취를 경험하게 합니다.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누리는 성적인 기쁨은 단지 즐거움과 쾌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성행위는 배우자가 자신을 내어 주고 서로를 행복하게 하여 깊은 친밀함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과도한 성적 욕망”으로 정의 되는 정욕은 성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합니다. 고대 히랍 사회에서는 깊은 연함과 친밀함이 없이 단지 쾌락을 목적으로 상대방을 이용하는 성행위를 “포르네이아”라 했습니다. “음행,” “간통,” 혹은 “정욕”으로 번역되는 “프르네이아”는 “매매하다” 특히 “노예를 팔고사다”는 기본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고대 문학에서 “포르네이아”는 성적인 인신매매로 사용되었는데, 매춘은 일반적으로 노예를 대상으로 이뤄졌었습니다. 혼외 성매매의 출처가 노예 제도였던 이유는, 노예들은 단지 부유한 사람들의 물건에 불과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성 노예들은 주인들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정욕은 자신을 내어 주고 헌신적 사랑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을 노예 삼아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성행위입니다. 기독교는 정욕을 “잔인한 죄” 혹은 “죽음에 이르는 죄”라 불렀습니다.   

   탐욕에서 시작된 정욕은 우리 인생을 처절한 고통으로 끝나게 합니다. “네 마음에 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정욕은 활활 타는 불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결국 사람을 태워 재로 만듭니다. 사냥꾼이 화살을 쏘아서 동물의 생명을 죽이는 것처럼 정욕은 우리의 생명을 사냥합니다. 

   야곱의 딸 디나를 본 히위 족의 추장 세겜이 정욕에 빠집니다. 결국 완력으로 그녀를 끌고 가서 강간합니다. 이 사실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 히위 족의 남자들이 할례 받아 아직 몸이 아플 때에 그 성을 공격합니다. 그날 세겜을 포함한 그 성의 모든 남자들이 칼로 죽임을 당하고, 히위 족은 처절하게 짖밟힙니다. 한 사람의 정욕이 족속 전체를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정욕을 느낍니다. 왕의 힘을 이용하여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였던 그녀를 데려와 동침합니다.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는 욕망에 우리아을 전쟁에 나가 죽게 만듭니다. 다윗은 이 사건의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왕자들 사이에 칼부림이 시작되고, 그의 아내들이 이웃 남자들에게 욕을 당하며, 다윗 왕국은 내리막 길에 접어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과 조상에 관해서 대화합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우리는 음란한 데서 나지 않았다”라고 반응합니다. “아브라함은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아비가 누군지를 설명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정욕의 출처가 마귀임이 입증되는 순간입니다.   

   소설 『제인 에어 Jane Eyre』는 정욕을 이기는 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책의 주인공은 처녀 제인입니다. 그녀는 명문가 로체스터씨와 사랑에 빠집니다. 제인은 상대가 유부남이며 정신 질환을 앓는 아내를 다락방에 가둬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로체스터는 굴곡진 인생에 지쳐서 외롭고 비참한 자신의 인생을 위로해 줄 사람은 제인뿐이라며 자기 정부 (情婦)가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는 부자인 데다가 자신까지 사랑하며 도움을 요구합니다. 마음 속에 일어난 엄청난 광풍 속에 제인의 양심은 감정의 아우성에 저항합니다.    

   “나를 잘 지킬 거야. 더 외로워지고, 친구가 줄어들고, 지지해 주는 이가 더 없어질 수록 나를 더 존중할 거야. 하나님이 주시고 인간이 인정한 법칙들을 잘 지키겠어. 법률과 원칙들은 아무런 유혹도 없을 때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야. 몸과 영혼이 그 엄중함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거지. 법과 원칙은 단호해. 어겨서는 안돼. 자기 편리한 대로 깨뜨린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어? 거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 난 늘 그렇게 믿었지. 그런데 이제 와서 신뢰하지 않는 것은 내가 정신이 나간 탓이야. 그래 넋이 나간 탓이고말고. 지금 붙잡아야 할 것은 이미 가지고 있던 의견과 미리 내려 둔 결정뿐이야. 딛고 설 곳은 거기가 전부야.” 주인공 제인은 그렇게 했습니다. 

   명문가의 부유함과 육체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부인이 있는 남자의 정부가 되는 것은 원칙과 법에 정면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질서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그 엄중함에 따라 반기를 들고 일어나 유혹의 시기를 지나가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제인은 인간의 느낌이나 욕정이 아닌 성경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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