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자, “주님만 의지하는 자”
“남은 자”는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위를 보여 주는 낱말입니다. 남은 자로 번역되는 희랍어 “레임마”는 “뒤에 남겨 놓다”는 동사 “레이포”에서 파생된 단어로 뒤에 남겨진 자, 남겨진 유산, 정해 놓은 몫, 남겨 놓은 것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는 두 개체의 차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고 남겨 놓은 음식물, 도시의 땅을 점령하고 아직 침략하지 못한 남은 지역,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에 비해서 악을 하지 않는 사람, 핏줄이 같은 친척이 아닌 다른 사람, 같은 종교에 들지 않는 사람, 불에 타는 나무에 비해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나무, 죽은 사람과 비교해서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자, 포도주를 판매하고 남은 술, 전염병에 오염된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 아직 전염되지 않은 자, 등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남은 자”를 뜻하는 언어군은 다음과 같이 네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재앙에서 화를 면하고 남은 자” (창 45:7; 수 10:28, 30, 37, 39, 40), 둘째는 “침략에서 학살 당하지 않고 살아 남은 자” (왕하 19:30-34), 셋째는 “사용하고 남은 것” (출 10:15; 왕상 11:41), 넷째는 “소유에 있어서 남아 있는 것” 입니다 (욥 20:21). 이 낱말이 사람과 관계하여 사용될 때는 언제나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백성이 되며, 여호와께 기억되며, 생명이 보존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의미합니다.
남은 자의 개념은 인물과 사건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노아와 홍수 사건은 남은 자의 개념을 잘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또한 그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하다는 것을 보시고 한탄합니다.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한 것을 후회하신 여호와는 홍수를 통해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멸하십니다. 이 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그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살아 남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을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반복 기록합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이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고, 남은 자의 주도권은 하나님이심을 밝힙니다.
그후 남은 자의 개념은 셈의 자손과 바벨탑 무너짐 사건에 나타납니다. 땅 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시 여기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바벨탑을 쌓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멸망시키는 것 대신에, 그들을 전 세계에 흩어 놓습니다 (창 11장). 이제 남은 자의 이야기는 셈과 그의 후손인 아브람에게 집중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선언합니다.
모세와 출애굽 사건도 남은 자의 개념을 설명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신생아가 죽임을 당할 때 산파의 도움으로 살아 남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살아 남게 되는 근본은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출 1:20), 그리고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출 1:21)고 밝힙니다. 그 결과 애굽의 엄한 학대 속에서 이스라엘은 사라지지 않고 모세의 인솔로 애굽을 벗어 나옵니다. 이 사건에서 발견되는 질서는 남은 자의 구원은 사람인 그의 자질에서 원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서 기원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남은 자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를 일관성 있게 언급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 원칙에 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발을 저는 자는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들이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리라.” 그는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리라”고, 남은 자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행위인 것을 강조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남은 자의 구원에 관해 동일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이제 남은 자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절박한 생명의 위기에서 여호와의 은혜의 행위로 살아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자가 남은 자입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높이시는 곳에 나타납니다. 인간 공로의 의로움과는 전혀 상관없이, 남은 자가 되는 이 신성한 자비의 행위는 참 이스라엘의 운명의 기초가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전에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한 그곳에서 그들에게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라고 남은자의 개념을 확장합니다. 이전에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이 이제 참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은 자가 이루는 새로운 공동체를 설명하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의 글을 인용합니다.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이 백성을 만군의 주께서 남겨 둔 자라고 언급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남은 자에게 속하는 유일한 요건은 그리스도를 통한 의에대한 믿음입니다. 남은 자는 믿음은 으로 존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주님만을 진심으로 의지하라 그러면 남은 자들이 돌아 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 올 것이다”고, 남은 자의 정체성 회복의 길을 알려 줍니다.
이남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