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2), “마음의 깨끗함”
구전 형태로 전승된 유대 사회의 윤리와 법을 기록한 미쉬나 (Mishnah)는 정결례에 관하여 매우 상세히 기록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는 종교적 깨끗함을 보장하기 위한 물로 씻는 제도가 사회 전반에 만연했습니다. 그 근간은 미쉬나의 레위기서입니다. “분비물이 있는 자가 손을 씻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 손에 닿은 사람은 물에 몸을 씻어라. 만약 분비물 있는 자가 나무 그릇을 만지면, 그 그릇은 물에 씻어라. 그가 깨끗해지려면, 흐르는 물에 몸을 씻어야 한다. 남자가 정액을 흘렸으면, 그는 물에 몸을 씻어라. 남녀가 함께 눕다가 정액을 흘렸으면, 두 사람 모두 물에 몸을 씻어라. 월경한 여자가 누웠던 침대에 닿은 사람은 누구든지 옷을 물에 빨고 물로 몸을 씻어라.” 분비물이 닿은 손을 씻지 않으면,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은 불결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손을 씻는 행위는 여호와 앞에서 정결의 자격을 얻는 것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 사회는 손을 물로 씻는 때와 방법과 물의 종류 등에 관해서 매우 세세하게 규정해 놓았습니다. 손을 씻어야 하는 때는 잠자고 일어나서, 기도하기 전, 몸의 은밀한 곳을 만졌을 경우, 화장실을 떠날 때, 묘지를 떠날 때, 빵을 자르기 전, 음식을 먹기 전과 후, 그리고 성소에 들어 가기 전입니다. 손을 씻는 데 사용하는 정화수도 다음과 같은 종류로 엄격하게 정해 놓았습니다: 연못과 도랑, 물탱크 또는 구덩이의 물, 샘물, 흐르지 않는 물을 정화한 물, 미네랄이나 따뜻한 샘에서 나오는 물.
제사장의 정결에 관해서는 더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그들이 기도와 제사를 드리기 전, 그리고 백성들을 축복하기 전에 손을 씻었습니다. 만약에 속죄 제사의 희생 제물의 피가 튀겨서 제사장의 옷게 묻게 되면, 그 옷은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속죄제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짐승의 목이나 뿔에서 튀겨진 피가 옷에 묻게 되면 씻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죽이 벗겨진 희생 제물의 피는 부정하지만, 아직 짐승의 가죽이 벗겨지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사장의 피가 성소 밖에서 더러워졌다면, 그 옷을 거룩한 곳에 가져와서 물로 씻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또한 왕을 세울 때 물을 뿌리면서 “나는 너를 생명과 구원으로 정화한다”고 말한 후에 “너는 생명과 구원의 물을 통해 깨끗하고 빛날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이곳에서 씻는 행위의 효과는 생명을 얻고 은혜를 받는 것과 관련됩니다.
손을 씻는 외부적 정확성은 그들의 종교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에 충실해야 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그렇게 할 때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성취되기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를 거절하여 자신들의 세대와 그들의 후대가 천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물로 씻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그분의 자비 아래 살아 가는 축복된 삶을 의미했습니다. 다윗은 그 삶을 소망하며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개 되리이다.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깨끗함의 효과를 위한 유대인들의 열심은 예수님 시대까지 손 씻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손을 씻기 전에는 결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이것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돌아 오면 자신들의 몸을 깨끗이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지켜야 할 일이 많았는데, 컵이나 주전자, 냄비 그릇 그리고 침대를 씻는 것이었습니다.” 손을 씻기 위해 물을 부를 때는 세운 손의 손가락 위에 부어 물이 손가락에서부터 손등을 타고 내려와 손목까지 젖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물뭍은 두 손을 비빕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불결하지 않고,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밖에 보이는 손이 깨끗하고, 그릇들이 반들반들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며,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고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율법의 가르침은 외면이 아닌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요청입니다. 깨끗이 한다는 히브리어 “카다쉬”는 외적인 깨끗함 보다는 내면의 정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밖에 드러나는 깨끗함이 아닌, 마음의 정결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이토록 마음의 깨끗함을 요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시는데, 그 수혜자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백성을 선대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깨끗이하라”고 알려줍니다.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유대인들의 관심은 외적인 깨끗함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마음이 아니라, 사람에게 쉽게 드러나 보이는 밖을 깨끗이 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질책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뽑으실 때, 그 평가 기준을 이렇게 밝힙니다. “ 내가 보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않다. 사람은 겉 모양을 보지만, 나 여호와는 마음을 본다.” 우리가 진정으로 깨끗하게 해야 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면입니다. 마음의 깨끗함이 하나님의 자비를 내 삶에 불러 오기 때문입니다.
이남규 목사